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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편리미엄 시대’ 연 자판기·편의점의 변신

중앙일보 2019.11.12 00:02 2면 지면보기
편리성이 곧 프리미엄이 되는 ‘편리미엄 시대’를 맞아 서비스의 진화도 계속되고 있다. 판매만을 목적으로 했던 자판기는 인공지능(AI)·정보통신기술(ICT) 등 첨단 기술과의 접목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다양한 생활용품을 끝없이 추가하고 있는 편의점은 만렙(게임에서의 최대 레벨) 수준까지 이르렀다. ‘편세권’(편의점과 가까운 입지)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을 정도다. 스마트한 자판기와 편의점이 바꾸고 있는 초간편 생활 패턴을 들여다봤다.
 

Easy Life
편리한 생활백서

 

인공지능 자판기

서울어린이대공원 정문 숲박스에 설치된 재활용 회수로봇 자판기에 페트병을 넣고 있다.

서울어린이대공원 정문 숲박스에 설치된 재활용 회수로봇 자판기에 페트병을 넣고 있다.

“쓰레기를 모아서 엄마 선물 사줄 거야.”
 
TV 인기 프로그램인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윌리엄이 쓰레기를 직접 모아서 재활용 분리수거 자판기에 넣는 장면이 화제였다. 특히 페트병·캔 등 재활용 쓰레기를 넣으면 바로 현금 보상으로 연결되는 ‘순환자원 회수로봇’ 네프론에 시청자의 눈이 쏠렸다.
 
네프론은 AI를 통해 재활용 폐기물을 인식하고 분류하는 똑똑한 자판기다. 1개당 페트병 5원, 캔 7원의 보상을 제공해 이를 꾸준히 모은다면 자신의 힘으로 엄마의 선물도 충분히 사줄 수 있다.
 
자원순환 촉진, 기부문화 확산 기여
네프론은 회수와 분류, 압축, 보상 지급까지 30초 내로 마무리되는 처리 과정을 갖추고 있다. 2000포인트 이상 적립하면 등록한 계좌로 송금받을 수 있다. 심건우 수퍼빈 브랜드전략팀장은 “보상으로 리어카를 구입했다는 어르신도 계셨다”며 “방송 후 엄마·아빠와 오는 어린이 이용자가 늘어나 재활용 문화 정착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기존 쓰레기 처리 과정은 배출·수집·저장·선별·운반에 이어 재활용을 위한 후처리 순으로 이뤄진다. 가정에서 배출하면 수집·저장·선별 과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이 방식은 재사용이 가능한 폐품을 가려내는 데 한정적이어서 효율성이 떨어졌다. 하지만 AI 자판기가 재사용이 가능한 쓰레기들만 선별하는 수집·저장·선별 과정을 대신 처리해 주면서 재활용률이 올라갔다. 심 팀장은 “쓰레기로 놀이를 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한 아이디어가 분리수거 문화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 기반의 중고폰 무인 매입 자판기도 있다. 민팃이라는 자판기는 통신사 대리점까지 가지 않아도 약 10분 내로 검수를 통한 시세 평가와 입금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한다. 홈플러스·이마트 등 전국 대형 마트에 300여 대가 설치됐다. 개인정보 노출을 걱정해 중고폰 판매를 꺼리는 사람들을 위해 민팃은 수거 뒤 기기의 데이터를 모두 삭제했다는 확인서를 보내고 있다.
 
민팃 개발사인 금강시스템즈의 김은경 경영기획실장은 “시세는 시장가를 기준으로 하고 대리점이나 중고폰 구입 전문회사보단 5~10% 후하게 책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고폰·페트병·캔 등 초간편 매입
민팃은 건전한 리사이클 거래와 문화 구축을 추구하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과 손잡고 중고폰 기부문화 형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자판기를 통해 한우 구입도 가능하다. 이 자판기를 이용하면 농협의 안전성 검증을 받은 1등급 한우와 한돈을 저렴한 가격에 24시간 언제 어디서든 구입할 수 있다. 1등급 한우 등심 100g이 8900원대다. 이 자판기는 ICT를 접목한 앱을 통해 품질·재고 관리 등도 가능하다.
 
24시간 이용 가능한 편리성과 ‘언택트’(대인 접촉 없음)의 강점이 부각되면서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무인 자판기가 새로운 유통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식사대용 간편식을 비롯해 샐러드·유제품·아이스크림 등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취급 품목은 식품뿐 아니라 화장품·의류 등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열일 하는 편의점

서울 강남구 파르나스몰의 편의점 GS25에서 직장인 김영호(28)씨가 세탁물을 맡기고 있다.

서울 강남구 파르나스몰의 편의점 GS25에서 직장인 김영호(28)씨가 세탁물을 맡기고 있다.

“세탁물 3개 맡길게요. 언제 찾으러 오면 되죠?”
 
여느 세탁소 풍경이 아니다. 한 편의점 계산대에서 일어난 대화다. 최근 ‘없는 게 없는’ 편의점이 ‘안 되는 게 없는’ 곳으로 무한변신 중이다. 생활용품·식료품 판매를 넘어 카페·음식점·은행·우체국·세탁소 등의 역할을 대신하는 각종 편의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편의점 하나가 웬만한 상업시설을 대체하니 ‘편의점이 인근에 있어 살기 좋은 동네’라는 뜻의 ‘편세권’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빨랫감 24시간 받아 세탁소에 전달
편의점에서 선보이는 신종 서비스는 ‘24시간 영업’ ‘뛰어난 접근성’ 등 편의점만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 서비스다. 올해부터 본격 시행하고 있는 편의점 GS25와 CU의 세탁 대행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GS25는 세탁소 네트워크 플랫폼인 ‘리:화이트’와, CU는 ‘오드리세탁소’와 각각 협업해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세탁소가 운영되는 시간에 방문하기 힘든 사람을 위해 만들었다. 손님이 리:화이트나 오드리세탁소의 앱에 접속해 세탁물 정보를 등록한 뒤 인근 편의점을 찾아 세탁물을 맡기면 주변 세탁소가 수거해 가는 시스템이다. 완료된 세탁물 또한 편의점에서 찾아가면 된다.
 
문성필 GS리테일 서비스상품팀 차장은 “지난달 세탁 대행 서비스 이용률은 7월 대비 126.4% 늘었다”고 설명했다.
 
편의점의 배송·유통망을 활용한 서비스도 다수다. GS25는 올해 3월 ‘반값 택배’ 서비스를 시작했다. 다만 GS25에 상품을 공급하는 물류배송 차량과 물류센터를 이용하기 때문에 택배 접수부터 수령까지 소요 기간이 약 4일로 다소 길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지난 5월 국제 특송 물류기업인 페덱스와 손잡고 해외 서류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페덱스 홈페이지에서 배송 접수를 마친 뒤 서류를 편의점에 접수하는 간단한 방식이다. 해외로 발송 가능한 서류의 허용 중량은 최대 0.5㎏이며 어떤 국가로 발송하더라도 같은 요금(건당 2만750원)이 책정된다. 이 밖에도 세븐일레븐은 지난달부터 서울 홍대·종로 등에서 무인 물품보관 서비스 ‘세븐락커’를 운영하는데 이곳을 택배 수령·반품의 거점지로 삼을 예정이다.
 
대형 가전 카탈로그 보고 주문·결제
물론 편의점의 기본 기능인 판매 서비스도 강화하는 추세다. GS25는 지난해부터 전자 제품을 대거 판매 중이다. 휴대용 선풍기 같은 작은 기기도 있지만 건조기·에어프라이어·안마의자처럼 덩치 큰 가전제품도 있다. 주로 설날, 가정의 달, 추석 등에 깜짝 행사로 진행하며 매년 인기 있는 제품 500~700종을 선별해 판매한다. 전자 제품 구매는 편의점에 전시된 카탈로그에서 제품을 고른 후 주문·결제하는 방식이다.
 
GS25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올해 모두 안마의자가 가장 많은 판매율을 기록했다. 문 차장은 “지난 9월엔 모빌리티 공유 플랫폼 ‘고고씽’과 함께 전동 킥보드 배터리 충전·주차 스테이션을 운영하기 시작했다”며 “이처럼 새로운 편의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단순한 소매점 기능을 하던 편의점을 산업·사람을 끌어모으는 동네 사랑방으로 만들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글=김두용·신윤애 기자 kim.duyong@joongang.co.kr, 사진=김동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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