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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현실의 비현실성인가, 비현실의 현실성인가

중앙선데이 2019.11.11 20:12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는 일종의 판타지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공(可恐)할 내용의 학원 폭력 얘기를 다루면서도, 그 톤 앤 매너가 서정적이고 그것도 매우 일관되다는 면에서 남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언뜻 일본 이와이 슌지의 2001년작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닮아 있다. 
 

오동진의 라스트 필름7. (오동진 평론가의 영화 에세이)

삽화 임진순

삽화 임진순

 
<러브 레터>와 <4월 이야기>로 대표되던 슌지의 영화세계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기점으로 그가 사실은 매우 어두운 정신세계의 소유자임을 드러내게 했다. ‘이와이 월드’는 사실상 ‘다크 월드’였던 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서정의 순도가 너무 높아서 어둠도 터널을 지나고 나면 밝아질 수 있음을 강조해 냈다.  
 
<바람>의 감독 이성한의 신작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역시 <릴리 슈슈>만큼의 서정주의로 감정을 정제시키려 애쓴다. 영화 속 아이들의 이야기들로는 보는 사람들을 결코 흥분시키지 않겠다는 태도다. 주인공 아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인생의 통과 의례에 불과한 일이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는 선악의 이분법적 판단이나 혹은 더 나아가 사회적 판결같은 것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순진할 수 있는 그 같은 ‘정치적’ 태도가 역설적으로 현실의 아이들 문제, 이른바 청소년 문제의 해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영화 속 주인공 선생, 일명 ‘밤의 선생(밤마다 거리를 다니며 배회하는 청소년들 만나 선도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은 아이들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들의 얘기를 들어준다. 무엇보다 그들과 같이 있어 준다. 이성한의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도 시종일관 같은 주조(主潮)를 지키려 애쓴다.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그래서 영화는 어둠과 밝음, 비관과 희망,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되 종국적으로는좋은 일이 늘 나쁜 일을 교대하고 대체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이 영화 속 아이들 - 본드를 불어 대고, 성인들을 상대로 여중생 성매매의 포주 노릇을 하고, 남의 것을 훔치고, 때리고 맞고 싸우고, 학교를 밥 먹듯이 늦게 가고 등등 하는 아이들 - 은 사실 선한 본성을 갖고 있으며 또 그걸 자주 드러내서 보는 이들을 오히려 놀라게 만든다. 이런 아이들이 착한 구석이 있다니. 
근데 그게 아주 새로운 발견처럼 느껴진다. 원래 아이들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래서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 아이들은 원래 착한 법이라고 믿는 감독 이성한의 고집스러운 세계관 때문에 그렇게 표현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영화는 그의 주장에 살짝 동의되는 듯, 동의가 되지 않는 듯 기이한 경계선을 달린다. 영화는 두 가지 이물질 사이에서 충돌하듯 섞이며 물과 기름처럼 부유하듯 전혀 다른 액화 가스로 증발해 간다.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영화는 두 가지 층위, 곧 현실과 비현실의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데, 그 ‘비현실성의 현실성’ 혹은 ‘현실의 비현실성’이 영화를 기묘한 궤도에 올려 놓는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단지 아이들의 세계만이 아니라 성인들의 세상살이까지 확대시켜 음미하게 만든다. 이건 아이들 얘기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풀어서 얘기하자면 이런 것이다. 요즘 아이들을 이 영화 속에서처럼 순하고 착하다고만 한다면 감독이 이들을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묘사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처음부터 훔치고 때리고 강간하고 찌르고 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표현은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현실적이라는 얘기다. 이른바 ‘비현실성의 현실성’이다.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반면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아이들 간의 폭력 사태는 과연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그것 역시 가만히 생각해 보면 거꾸로 좀 모자란 감이 있다. 그래서 감독이 표현을 자제하고 왜곡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현실은 더 끔찍한 법이다. 근데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저건 영화일 뿐이라고 자위(自慰)하고 싶어 한다. 현실이지만 비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싶어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현실의 비현실성’이다. 이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는, 그 리얼리티는, 두 층위의 교차점에서 찾아진다. 현실을 그리는 것 같지만 이상적인 얘기인 것도 같고 이상적인 얘기를 그리는 척 사실은 잔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이성한 감독 혼자서 제작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고 촬영을 하고 음악까지 맡아서 한 것, 곧 1인 몇 역을 한 것은 단순하게 ‘1인 시네마’의 방식이나 시스템을 고집한 결과로만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를 통해 드러내려는 자기의 생각이 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은 이래야 한다는, 아이들의 세계를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거나 지켜내지 않으면 세상은 금새 균열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을 표현하려 한 것일 수 있다. 
 
이런 식의 ‘요한계시록 같은 작업’은 주변에서 쉽게 동의와 동참을 구하기 어려운 법이다. 예언자가 홀로 광야에서 외치듯, 그렇게 주장을 하듯, 오로지 혼자서 영화를 찍어야만 했을 것이다.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전작이 그렇듯, 이성한은 이번 작품에서도 신인과 무명에 가까운 배우를 모아 영화 속에 녹여내는 데 일가견의 능력을 선보인다. 선생 역의 김재철을 비롯해 주연급의 윤찬영, 손상연, 김민주 등은 새로운 기대주들로서의 가능성을 엿보이게 한다. 일본 원작을 무리하게 한국화 하지 않고 다소 무국적화 한 것도 연출의 의도로 느껴진다. 이건 그 어느 세상에서든 보편적인 얘기라는 것이다. 중간중간에 흘러 나오는 ‘밤의 선생’의 나레이션과 거기에 곁들여지는 도시의 밤, 그 풍경 쇼트가 매우 인상적이다. 영화가 정적(靜的)인 척, 사실은 그 안에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은유 해 내는데 적격이다. 
 
다만 관객들이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얼마 만큼 알아채고 공감할 것인가는 다소 미지수다. 이성한의 영화는 ‘발견’되고 ‘발굴’되어지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린다. 그 숙성의 과정이 결코 녹록치는 않다. 이번 작품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이성한의 영화는 기다릴 가치가 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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