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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닦아주고 놀아주고…은지 엄마된 학교 밖 청소년 둘째

중앙일보 2019.11.11 15:00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11)

우리 집 두 아이는 홈스쿨링을 했다. 첫째 아이는 중학교 1학년 때 학교 밖으로 나왔다. 아이는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과 학교 밖에서 배울 수 있는 것, 둘의 장단점을 비교해가며 내게 조곤조곤 설명했다. 나는 절절한 심정으로 아이를 설득하고, 고민하고, 바짝 엎드려 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둘째 아이는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밖으로 나왔다. 친구 관계도 좋았고 성적도 좋았는데 ‘오빠처럼 집에서 자유롭게 공부하겠다’, ‘위탁가족이 된 은지를 키우는 것도 공부가 아니냐?’며 오히려 반문했다. 다시 설득하고, 고민하고, 바짝 엎드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두 아이 모두 ‘학교 밖 청소년’이 됐다.
 
오랜만에 모인 세 남매 휘성, 어진, 은지가 제주 명월국민학교에서. [사진 배은희]

오랜만에 모인 세 남매 휘성, 어진, 은지가 제주 명월국민학교에서. [사진 배은희]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학교를’
 
속에선 별별 잔소리를 다 퍼붓고 싶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허락 아닌 허락을 했다. 그리고 한참을 속앓이하며 지냈다.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 학생들만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고, 방에 콕 박혀 있는 아이를 보면 ‘내가 더 강력하게 반대할 걸’ 후회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나도 아이들도 학교 밖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졌다. 둘째 어진이는 정말 ‘육아수업’을 열심히 했다. 은지 머리를 묶어주고, 책을 읽어주고, 내가 외출할 땐 은지랑 같이 놀아주면서 점점 언니가 돼 갔다.
 
은지가 두 살 때였다. 나는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을 나가야 하는데 은지가 구내염에 걸려 어린이집에 보낼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어진이한테 은지를 맡기고 출근을 했다. 그날따라 제주 외곽지에 있는 학교로 가는 날이었다. 한참을 달려서 겨우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그때, 어진이가 다급하게 전화했다. “엄마! 애기 똥 쌌어요.”
 
분유 먹이는 거, 기저귀 가는 건 할 수 있는데 똥은 못 치우겠다는 말이었다. 울상이 된 아이와 통화를 하며 비닐장갑을 끼고, 물티슈로 닦아주라고 부탁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은지 머리 묶어주는 어진. 어진이는 등원 준비로 정신없는 아침마다 은지 옷 입히고, 머리 묶어주는 역할을 자처한다. [사진 배은희]

은지 머리 묶어주는 어진. 어진이는 등원 준비로 정신없는 아침마다 은지 옷 입히고, 머리 묶어주는 역할을 자처한다. [사진 배은희]

 
그날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끝나자마자 정신없이 집으로 갔더니 은지는 온 집안을 어질러놓고, 마냥 신이 나 있었다. 반대로 어진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육아가 이렇게 힘든 거냐고 투덜거렸다.
 
“엄마, 나도 이렇게 키웠어요?” 어진이가 자주 물어본 말이다. 은지를 키우면서 철이 빨리 들었는지 어느새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의 심정까지 헤아리는 딸이 됐다. 한창 외모에 신경 쓸 나이인데 옷은 대학 가서 사면된다고 대신 엄마 옷, 은지 옷을 사라고 한다.
 
5일장에서 산 바지를 무릎이 나오도록 입고 다니고, 긴 머리는 은지가 안 쓰는 머리끈으로 질끈 묶고 다닌다. 기초 화장품도 필요 없다고 하고, 신발도 필요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용돈을 아껴 은지 옷을 사 오고, 간식을 사 온다.
 
“언니, 나 콩순이 냉장고 사줘!” 은지도 엄마가 안 사줄 것 같은 장난감은 언니한테 사달라고 한다. 어진이는 자기 용돈을 모아서 사주고, 비싸서 사줄 수 없는 것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면’ 사주겠다고 약속한다. 은지는 지금도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중이다.
 
“언니가 어른 되면, 은지 좋아하는 거 많이 사 줄게!” 어진이는 또래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다. 굳이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가족이 될 수 있고, 한 아이를 잘 키우면 그게 애국자라는 말도 서슴없이 한다. 은지처럼 친부모와 떨어져서 자라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면서.
 
분유 먹는 은지. [사진 배은희]

분유 먹는 은지. [사진 배은희]

어진이 사진 찍어주는 은지. 여섯 살이 된 은지는 이제 언니 사진도 찍어주고 도와주기도 잘한다. [사진 배은희]

어진이 사진 찍어주는 은지. 여섯 살이 된 은지는 이제 언니 사진도 찍어주고 도와주기도 잘한다. [사진 배은희]

 
처음 은지를 데려왔을 땐, 밤새 울기만 한다고 다시 데려다주면 안 되냐고 물었던 아이다. 이젠 은지 없이 어떻게 사냐고, 은지 때문에라도 계속 제주도에 살아야겠다고 한다.
 
상황이 아이를 바꾼 걸까? 어진이를 보고 있으면, 얘가 청소년인지 주부인지 헷갈릴 정도다. 은지한테 폭풍 잔소리를 하면서도 외출하면 은지부터 챙긴다. 바람이 불 땐 옷을 여며주고, 머리가 흐트러지면 다시 묶어주고, 길을 건널 땐 왼쪽 오른쪽 살피는 것까지 가르친다.
 
요즘은 동네 간판을 누가 먼저 읽나 내기하면서 다니는데, 은지도 한글을 빨리 배워서 어진이를 앞질러 읽어버린다. 둘이 깔깔대며 글씨를 읽는 걸 보면 흐뭇한 웃음이 난다. ‘은지를 키우는 동안 어진이가 참 많이 변했구나’ 싶어서 고마운 마음이 든다.
 
우린 오늘도 변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은지를 키우며 변하고 있고, 상황이 변하니까 또 그에 맞춰 변하고 있다. 이게 인생일까? 매일 거기서 거기처럼 보이지만 어느새 변화된 우리 모습처럼 말이다.
 
바라기는, 이런 변화가 나비효과가 되길.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위탁가족’이 되길…. 한 생명을 키운다는 건, 곧 ‘내가 성장하는 기회’이라는 걸 뼛속 깊이 경험하는 요즘이다. 나도 변해가는 중일까? 붉게 물어가는 저 단풍잎처럼.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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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은희 배은희 위탁부모·시인 필진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 제주도에 사는 시인. 낮엔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에서 일하고, 밤엔 대학원에서 공부한다. 색다른 동거를 시작한 건 5년 전이다. 매너 있고 돈 많은 남자와 사는 게 아니라, 작고 여린 아기와 하는 동거다. 우린 동거인이면서 가족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위탁가족’이다. 우리의 색다른 동거가 ‘사랑’으로 전해지길 기도한다. 동거는 오늘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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