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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년의 썸타는 경제]'성장 없는 고용' 시대…정부가 부추겼다

중앙일보 2019.11.10 05:50
행사장을 찾은 시니어들이 참가 업체 부스에서 직원의 도움을 받아 일자리 체험을 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행사장을 찾은 시니어들이 참가 업체 부스에서 직원의 도움을 받아 일자리 체험을 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고용 없는 성장'에서 '성장 없는 고용'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 2017년. 어수선한 정국에서도 경제는 올해만큼 나쁘지 않았다. 경제성장률은 직전년도 2.9%에서 3.2%로 올라섰다. 그러나 고용은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 경제학자들은 경제는 성장하는 데 일자리는 늘지 않는 현상을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신(新) 한국병'으로 부르기도 했다.  
 
올해부터는 '한국병' 양상이 사뭇 달라졌다. 연말까지 2%대 성장률을 장담 못 하는 판국인데도 9월 15~64세 고용률(67.1%)은 1989년 이래 ‘최대’를 기록했다. 전례 없던 '성장 없는 고용' 현상이다. "올바른 방향"이라는 문 대통령 판단과 달리, 전문가들은 성장과 고용이 반대 방향을 띄는 현상을 심상찮게 보고 있다. 식사·운동을 규칙적으로 하지 않고도 살이 찌는 것처럼 경제의 비효율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중앙일보는 7일 올해 일자리가 늘거나 줄어든 산업의 수익성과 취업유발계수(재화를 10억원어치 생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직·간접적 취업자 수) 등 거시 통계를 활용해 '성장 없는 고용' 현상의 원인을 추적했다.
 

최근 제조업 일자리 줄고 음식·숙박, 사회복지 일자리 증가 

우선 통계청 '고용동향'에서 지난해부터 취업자 감소가 뚜렷한 업종은 제조업과 도·소매업이었다.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인 제조업은 지난해 8월 이후 올해 9월까지 18개월 연속 취업자가 줄었다. 핵심 유통 산업인 도·소매업도 2017년 11월부터 취업자가 줄기 시작, 올해 5월을 제외하고 계속해서 감소했다. 올해 1월부터는 금융·보험업도 취업자 감소 행진에 동참했다. 올해 들어 취업자가 꾸준히 늘었던 업종은 음식·숙박업과 보건·사회복지, 전문·과학·기술서비스, 부동산업 정도다.  
주요 산업별 취업자 증감.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주요 산업별 취업자 증감.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과거엔 수익성 좋아도 고용 효과 낮은 반도체·석화 위주 성장   

과거 '고용 없는 성장' 현상은 수익성 높은 반도체·석유화학·석유제품 등 대표 수출 제조업 위주로 성장이 이뤄진 탓이 컸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2018년 기준)로 따지면 반도체는 38.6%, 석유화학은 9.5%로 전체 산업 영업이익률(7.3%)보다 높다. 2017년 경제성장률이 올라선 배경에도 전년 대비 15.8% 늘어난 주력 산업 제품군의 수출액 증가 덕분이었다. 늘어난 수출액 782억 달러 중 반도체·석유화학·석유제품이 68%를 차지했다. 이들 산업은 한번 설비를 투자하면 사람보다는 기계가 일하는 '장치 산업'으로 수익성은 높지만, 취업 유발 효과가 낮다. 2015년을 기준으로 10억원어치 제품 생산에 반도체는 3.47명, 석유화학은 3.32명의 직·간접 고용이 생겨날 뿐이다. 이는 제조업 전체의 취업유발계수(7.49명)나 서비스업(14.73명)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현 정부 초기 '기업은 살찌는 데 일자리는 부족하다'는 아우성이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온 까닭이다.
 

저수익 일자리 늘린 '성장 없는 고용'…'고용의 질' 좋아졌다?

노인 단기 일자리 사업 등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본격화한 올해부터는 성장률은 저조한 가운데, 고용률·실업률·취업자 수 등 고용 지표만 좋아지는 모습을 띤다. 청와대·정부·여당은 이를 두고 "고용의 질이 좋아졌다",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는 '수익성은 낮지만, 고용 유발 효과는 좋은' 업종에 정책 예산 등이 집중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영역이 사회복지다. 이 분야는 영업이익률이 -4.3%인 '적자 업종'이다. 애당초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복지를 강화하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수익성은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복지 부문의 취업 유발 계수는 36.97명으로 모든 산업을 통틀어 가장 고용 효과가 크다. 외국인 관광객 증가, 초단기 아르바이트 증가로 취업자가 늘고 있는 음식·숙박업도 영업이익률은 2.7%로 낮지만, 취업 유발 계수는 24.15명에 이른다. 최근 11개월째 설비투자·수출 감소 행진에도 고용의 '양'이 증가하는 것, 고용의 '양'은 늘어도 성장률 제고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수익 산업 위주로 고용이 몰리는 현상을 두고 고용의 질이 좋아졌다고 보긴 어렵다"며 "고부가가치 산업이 전체 국가 경제를 이끌어가는 구조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주요 산업 영업이익률과 생산 10억원 당 취업유발계수.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주요 산업 영업이익률과 생산 10억원 당 취업유발계수.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정부 의존 경제' 비효율 키워…"손주가 조부모 일자리 만드는 격"

전문가들은 저수익·저숙련 단기 업종에 '일자리 예산'을 투입하는 '정부 의존형 경제'는 경제 전반의 비효율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경제성장률 기여도는 올해 1분기를 기점으로 정부 부문이 민간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올해 3분기 정부의 성장 기여도는 1.6%포인트, 민간은 0.3%포인트로 벌어진 상태다. 산업 부문별 성장 기여도에서도 보건·사회복지, 공공행정 산업 등 정부 부문의 전년 대비 성장 기여도는 올해 1월부터 지속해서 증가했다. 반면 광공업과 건설업, 사회복지를 제외한 서비스업 등 민간 부문은 감소 추세를 보인다.
민간과 정부, 국내총생산 성장 기여도.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민간과 정부, 국내총생산 성장 기여도.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 재정 일자리가 늘고 있다"며 "노인 단기 일자리 사업으로 예산을 쓰고 나서 30년 후 손주들이 이를 부담하는 식의 고용 정책은 시장의 역동성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김도년의 썸타는 경제
액수ㆍ합계를 뜻하는 썸(SUM)에서 따온 ‘썸타는 경제’는 회계ㆍ통계 분석을 통해 한국 경제를 파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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