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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50도에 레고같은 건물···'지구최대 가스왕국' 시베리아

중앙일보 2019.11.10 05:00
 액화천연가스(LNG) 기지가 들어선 러시아 야말반도 사베타항에 LNG 수송선이 정박해있다. [TASS=연합]

액화천연가스(LNG) 기지가 들어선 러시아 야말반도 사베타항에 LNG 수송선이 정박해있다. [TASS=연합]

김종덕의 북극비사 ⑤ 북극의 새로운 불꽃 천연가스

 
모스크바에서 출발한 투폴레프-214 여객기가 시베리아 영구 동토층 지대를 가로질렀다. 구릉지는 물론, 나무조차 찾아볼 수 없는 삭막한 툰드라 지역을 끝없이 날던 비행기는 3시간여 만에 북극해를 마주한 야말반도에 들어섰다. 멀리서 샛노란 불꽃이 타오르는 인공 구조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각종 파이프와 시추장비가 가득한 액화천연가스(LNG) 기지였다.  ‘세상의 끝’이란 뜻을 가진 야말은 가을ㆍ겨울ㆍ봄, 세 계절은 최저 영하 50도까지 얼어붙은 눈 세상이었다가, 여름 한철 지표면이 녹아 습지로 변하는 곳이다. 네네츠족 등 유목 원주민이 순록을 키우고 물고기를 잡아 근근이 살아가던 곳이었지만, 21세기 들어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세계 최대 천연가스 매장지 겸 생산지로 탈바꿈한 곳이다.  
 
여객기는 ‘사베타’라는 이름의 낯선 공항에 착륙했다. 200인승 여객기가 활주로를 미끄러져 내리는 느낌이 매끄럽지 못했다. 아뿔싸…. 창밖으로 보이는 활주로가 마치 지하철 복공판처럼 콘크리트 패널을 이어붙인 형태였다. 사베타는 시베리아 야말반도의 동쪽, 북위 71도에 위치한 항구 마을이다. 8월 말 한낮이었지만 수은주는 영상 10도를 가리켰다. 싸늘한 북극바람이 목덜미 옷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야말반도 사베타 공항의 활주로. 고립된 지역이라 현지에서 활주로 공사를 하기어렵다. 대신 외부에서 만들어온 콘크리트 패널을 이어붙여 활주로를 깔았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야말반도 사베타 공항의 활주로. 고립된 지역이라 현지에서 활주로 공사를 하기어렵다. 대신 외부에서 만들어온 콘크리트 패널을 이어붙여 활주로를 깔았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30조원 투자, 야말 LNG 프로젝트  

 
2017년 7월, 나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초청장을 받았다. 사베타항에서 첫 LNG 선적을 앞두고 러시아 정부가 북극이사회와 옵서버 국가들에 그 시설과 운영계획을 알리는 차원에서 국제회의를 열었다. LNG 생산시설이 가득한 야말단지 내 삭막한 체육관에서 회의를 했다. 백야가 막 끝난 8월 말이라 오후 11시가 되어야 어스름 밤이 찾아왔다. 호텔 창 너머로 보이는 가스전 여기저기서 축제처럼 불꽃이 환하게 타올랐다.  
 
야말은 인류가 석유경제를 넘어 본격적인 가스경제의 시대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야말반도가 위치한 야말네네츠 자치구는 서시베리아 북쪽 끝에 위치해 있으며, 한반도의 약 3.8배 면적에 달한다. 전세계 천연가스 생산의 약 20%, 러시아 천연가스의 85%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의 천연가스 생산지역 중의 하나이다. 이제껏 총매장량 15조㎥의 12% 정도만이 생산되었다고 하니 그 잠재규모가 놀라울 뿐이다. 이름 그대로  ‘지구 북쪽 땅끝의 가스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말LNG 개발사업은 2009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2017년에 1차 완성되어 생산에 들어갔으며, 총 투자비는 무려 미화 270억 달러, 한화로 약 30조원에 이르는 초대형 북극에너지개발 프로젝트이다. 이미 세계 최대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가진 러시아를 북극 가스왕국으로 이끌어갈 선도사업인 셈이다.  
 
러시아 최대 천연가스 지역인 야말반도의 액화천연가스(LNG) 기지가 구축된 사베타항에서 러시아 정부 초청 국제회의가 열렸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러시아 최대 천연가스 지역인 야말반도의 액화천연가스(LNG) 기지가 구축된 사베타항에서 러시아 정부 초청 국제회의가 열렸다. [사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야말은 세계 열강의 가스 프로젝트 현장 

 
내가 방문했던 당시, 야말지역에서 확인된 총 234개의 가스전 중에서 73개소는 상업생산 중이고 19개소는 생산준비를 마쳤고, 142개소는 지질탐사 중에 있다고 한다. 이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업이 야말LNG 개발사업이다. 총 매장량이 약 1조㎥로 추정되는 현재까지 러시아 최대의 LNG 프로젝트이다. 3개의 LNG생산설비에서 연간 1650만t의 LNG를 생산하게 된다. 이 양은 한국이 연간 소비하는 4200만t의 약 40%에 이르는 것이다.  
 
야말은 러시아 영토이지만, 세계 주요국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든 현장이기도 하다. 야말프로젝트 운영사인 JSC 야말 LNG의 지분구조는 러시아 노바텍이 50.1%, 프랑스 토탈이 20%를 가지고 있다. 중국도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가 20%, 실크로드기금이 9.9%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일대일로(一帶一路) 투자를 위해 설립된 실크로드 기금이 이 사업에 약 14억 달러를 투자한 것은 중국의 북극 확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중국은 2018년 발표한 북극백서에서 ‘빙상 실크로드’라는 이름으로 북극항로를 일대일로에 편입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올 3월 동시 명명한 '쇄빙LNG 운반선 4척. 쇄빙 능력을 갖춘 LNG선은 대우조선이 세계 최초로 건조한 선박이다. 대우조선은 지난 2014년 러시아 야말지역에서 생산한 LNG를 수출하기 위해 계획된 '야말 LNG 프로젝트'를 위해 발주된 쇄빙LNG선 15척(48억 달러, 한화 약 5조원)을 모두 수주했다. [사진 대우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이 올 3월 동시 명명한 '쇄빙LNG 운반선 4척. 쇄빙 능력을 갖춘 LNG선은 대우조선이 세계 최초로 건조한 선박이다. 대우조선은 지난 2014년 러시아 야말지역에서 생산한 LNG를 수출하기 위해 계획된 '야말 LNG 프로젝트'를 위해 발주된 쇄빙LNG선 15척(48억 달러, 한화 약 5조원)을 모두 수주했다. [사진 대우조선해양]

난관을 극복한 개발과 새로운 위협

 
이밖에도 사베타 항만을 포함한 가스설비는 프랑스 테크닙과 일본 JGC와 치요다, 발전설비는 러시아 테크노프롬엑스포트와 독일 지멘스, 선박은 우리나라의 대우조선해양, 장비운송은 중국 ZPMC와 네덜란드에서 맡아 참여했다. 현지 설명에 따르면 미국을 포함한 15개국 260여 기업이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고, 상주 근로자만 최대 3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미국과 EU의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조금 의아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야말은 습지에 가까운 지형적 특성 때문에 지반 안정화 작업이 필수적이다. 전체 부지에 박혀 있는 파일만 54000개에 이른다고 한다. 또 고립된 지역이라 건설에 필요한 자재는 현지에서 조달이 불가능하다. 모두 외부에서 모듈형태로 제작해 선박으로 공급하고 현지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예를 들어 도로와 공항 활주로는 콘크리트 패널을 이어 붙여 활용하고 있고, 항만이나 LNG설비가 집중된 곳은 중량화물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강철패널을 이용하고 있다. 건물도 예외가 아니어서 표준화된 조립식 자재로 거의 같은 모양으로 레고세트처럼 건설되어 있다.  
 러시아 북극권 야말반도 사베타에는 액화천연가스(LNG) 기지만 있는 게 아니다. 거주 시설과 호텔ㆍ교회 등이 들어서 있어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TASS=연합]

러시아 북극권 야말반도 사베타에는 액화천연가스(LNG) 기지만 있는 게 아니다. 거주 시설과 호텔ㆍ교회 등이 들어서 있어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TASS=연합]

러시아 가스 패권, 미국과 경쟁 불가피  

 
러시아는 새로운 가스 패권국으로 자리잡은 미국과 가스와 북극이 섞여있는 이슈에서 대결과 경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야말LNG사업은 러시아에는 북극개발에 대한 자신감과 경험을, 이 사업에 참여한 많은 다국적 기업들에게는 북극개발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내가 사베타항을 방문했던 2017년은 옛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1987년 무르만스크 선언을 통해 당시 연중 얼음에 덮인 북극항로의 개방을 선언하고 북극에 묻혀 있는 에너지 자원의 개발을 위한 협력을 주장한 지 30년이 되는 해였다. 그리고 이제 야말LNG사업보다 더 규모가 큰 북극의 두 번째 LNG개발사업인 아크틱LNG2(Arctic LNG2) 사업이 내년부터 본격화된다.  
 
야말은 그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에너지 자원 확보라는 측면과 개발된 자원의 운송, 그리고 운송에 필요한 선박과 장비시장까지 염두에 둔 해운-조선-자원이 세트로 구성되어 있는 절호의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야말LNG 불꽃이 밝힌 북극의 신호를 이해하는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미래는 꿈꾸고 만들어가는 국민과 국가의 것이다.  
 
⑥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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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최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