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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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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베를린장벽 붕괴 30년' 감동도 끝…통일 대박은 없었다

중앙일보 2019.11.09 05:55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9일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수치로 본 통일경제
옛 동독지역, 서독보다 1인당 GDP, 91년 42.9%
2000년 67.2%, 2008년 70.9%, 2018년 75%로
실업 늘자 동유럽·무슬림 탓하며 극우정치 득세
켐니츠의 마르크스 두상 앞 반이민·반이슬람 시위
경제력, 옛 서독 지역보단 작아도 유럽전체 상위권
동유럽보다 높고 프랑스·영국·이탈리아 수준 유지
연대세 거둬 과학기술 R&D 투자해 동서 격차 해소

 
11월 9일로 1989년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년을 맞았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동서로 분단됐던 독일의 재통일과 동유럽 공산체제의 종식을 상징하는역사적인 사건으로 자리잡았다. 1871년 프로이센 왕국 주도로 오스트리아를 뺀 나머지 독일어 사용지역이 하나의 나라로 통일됐던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됐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듬해인 1990년 동독은 각 주들이 독일연방공화국(서독)에 각각 가입하면서 해체됐다. 공산체제를 유지하던 동독이 사라지면서 독일은 1990년 10월 3일 역사적인 재통일을 이뤘다.  

독일의 옛 동독지역인 켐니츠 시내에 있는 공산주의 창시자 카를 마르크스의 두상. 동독 시절 그의 이름을 따서 카를마르크스슈타트로 불렸던 이 지역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원래 이름으로 바뀌었다. 베를린 방벽으로 공산체제가 무너진 지 30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극우파들의 단골 시위 현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통일의 감격이 현실의 무게로 바뀐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로이터=연합뉴스]

독일의 옛 동독지역인 켐니츠 시내에 있는 공산주의 창시자 카를 마르크스의 두상. 동독 시절 그의 이름을 따서 카를마르크스슈타트로 불렸던 이 지역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원래 이름으로 바뀌었다. 베를린 방벽으로 공산체제가 무너진 지 30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극우파들의 단골 시위 현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통일의 감격이 현실의 무게로 바뀐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우리가 인민이다’ ‘우리는 하나의 국민’ 구호

1989년 9월 25일 동독 라이프치히에서 시민들이 시작한 반정부 시위는 10월 9일 이후 매주 열리는 월요시위로 이어졌다. 결국 10월 18일 동독의 최고지도자 에리히 호네커가 물러났지만 시위는 그치지 않았다. 월요 시위에선 ‘우리가 인민이다(Wir sind das Volk)’라는 구호가 등장했으며 베를린에선 통일을 요구하는 ‘우리는 하나의 국민이다(Wir sind ein Volk)’라는 외침도 나왔다. 11월 3일 베를린에서 100만 명이 시위를 벌인 데 이어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독일인들은 자유롭게 동독과 서독을 넘나들게 됐다. 결국 동독은 1990년 3월 18일 처음으로 자유선거를 실시했으며 집권당인 독일사회주의통일당(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은 공산주의 일당독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개방되자 기쁨에 넘친 베를린 시민들이 베를린 장벽 위에 올라 환호하고 있다.[중앙포토]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개방되자 기쁨에 넘친 베를린 시민들이 베를린 장벽 위에 올라 환호하고 있다.[중앙포토]

 

옛 동독지역 정치, 극우와 옛 공산 세력이 득세  

이렇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년이 지난 지금 통일의 감동은 현실의 무게감으로 바뀌었다. 옛 동독 지역에선 정치적으로 특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옛 동독 지역에서 극우와 옛 공산 세력이 세력을 떨치고 있다. 10월 27일 옛 동독지역인 튀링겐 주에서 치러진 지방 선거에선 옛 공산당 계열의 좌파당이 득표율 29.7%로 1위,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23.8%로 2위를 각각 차지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소속한 정당으로 연방의회에선 집권당인 기독민주당(CDU)은 이 지역에선 22.5%의 득표율로 3위에 머물렀다. CDU가 2위를 차지했던 지난 2014년 지역 선거보다 11%포인트 떨어진 득표율이다.  
 

실업을 이민자 탓으로 돌리는 극우정치 만연

반이민을 외치는 AfD는 지난 9월 옛 동독지역인 작센 주와 브란덴부르크 주 선거에 이어 튀링겐 주에서 2위를 차지하며 확장세를 이어갔다. AfD의 확산에 배경에는 독일 전체를 휩쓸어온 반난민·반이슬람 정서와 함께 옛 동독지역이 독일 내에서 ‘2등 시민’으로 대접 받는다는 불만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옛 동독 지역에 속한 공업도시 켐니츠에 있는 공산주의 창시자 마르크스의 동상 앞에서 극우 세력이 이민과 이슬람에 반대하며 벌이는 시위는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동독 시절 공산주의 창시자 카를 마르크스의 이름을 따서 카를마르크스슈타트로 불렸던 도시가 극우정치의 온상으로 자리 잡았다. 유럽연합(EU) 내부에서 국경이 사라지면서 동유럽 출신과 무슬림(이슬람 신자) 이민자가 옛 동독 지역으로 이주해 일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실업자가 늘자 이를 이민자 탓으로 돌리는 극우정치가 만연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8월 25일 독일의 옛 동독지역인 작센주 켐니츠에서 벌어진 극우파 사위에서 참가자들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당시 등장햇던 구호인 '우리가 국민이다'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8월 25일 독일의 옛 동독지역인 작센주 켐니츠에서 벌어진 극우파 사위에서 참가자들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당시 등장햇던 구호인 '우리가 국민이다'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인당 GDP 옛 서독 지역은 3~4만 유로대  

문제는 경제적인 격차였다. 사실 옛 동독 지역은 베를린장벽 붕괴 30년 뒤인 현재 옛 서독 지역과 비교해 생산성과 임금이 75~84% 수준에 머물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착시효과라는 주장이다. 옛 동독지역의 생산성은 유럽 최고 수준인 옛 서독 지역보다는 낮지만 유럽 전체로 보면 상위권이기 때문이다.  
EU의 통계청인 유로스타가 지난 2월 26일 발표한 2017년 유럽 각국의 지역별 1인당 GDP 통계가 이를 잘 말해준다. 이에 따르면 EU 평균 1인당 GDP는 3만 유로인데 독일은 3만9000유도다. 지역별로 보면 옛 서독지역인 함부르크(6만4700유로), 브레멘(4만9700유로), 바이에른(4만6100유로), 바덴뷔르템베르크(4만5200유로), 헤센(4만5000유로)이 4만 유로를 넘으면서 상위권을 형성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10년이 지난 지난 1999년 10월 7일 동베를린의 카를마르크스 거리의 거불 벽면에 '우리는 인민이었다'는 구호가 걸려있다.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1600만 명이던 동독 주민은 통일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그 뒤 동서독 격차가 상당히 줄었지만 여전하다는 현실에 실망하고 분노한다. 그 결과는 극우파의 세력 확대로 나타나고 있다.[AP=연합뉴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10년이 지난 지난 1999년 10월 7일 동베를린의 카를마르크스 거리의 거불 벽면에 '우리는 인민이었다'는 구호가 걸려있다.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1600만 명이던 동독 주민은 통일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그 뒤 동서독 격차가 상당히 줄었지만 여전하다는 현실에 실망하고 분노한다. 그 결과는 극우파의 세력 확대로 나타나고 있다.[AP=연합뉴스]

 

옛 동독 지역, 1인당 GDP 2만 유로대  

반면 옛 동독지역인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2만6700유로), 작센안할트(2만7400유로), 브란덴부르크(2만7800유로), 튀링겐(2만8900유로), 작센(2만9900유로)로 2만 유로 대를 유지하면서 독일에서 경제적 낙후지역을 형성했다. 과거 동·서 베를린이 합쳐진 베를린은 3만7900유로로 중간 수준이었다. 나머지 옛 서독지역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3만8700유로), 자를란트(3만8600유로), 니더작센(3만6500유로), 라인란트팔츠(3만5700유로), 슐레스비히홀슈타인(3만2400유로)은 1인당 GDP가 모두 3만 유로 대를 유지했다. 옛 동·서독의 지역별 경제 양극화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통계다.  
1989년 10월 23일 라이프치히에서 있었던 대규모 시위. 이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붕괴됐다. [사진 독일연방기록청]

1989년 10월 23일 라이프치히에서 있었던 대규모 시위. 이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붕괴됐다. [사진 독일연방기록청]

 

이탈리아·스페인 수준, 동유럽보다 높아

하지만 옛 동독지역의 1인당 GDP는 옛 서독 지역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적어 보이지만 유럽 전체에서 보면 그리 나쁘지 않다. 이탈리아(2만8500유로), 스페인(2만5100유로)과 비슷하고 옛 동유럽 체제전환국인 체코(1만8100유로), 헝가리(1만2700유로), 폴란드(1만2200유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심지어 프랑스도 지역별로 따지면 파리 중심의 수도권인 일드 프랑스와 독일과 국경을 접한 동부 알자스 등 몇 군데를 제외하면 옛 동독 지역보다 경제적으로 비슷하다. 주목할 점은 통일대박은 아닐지 몰라도 옛 동독 지역은 유럽 전체 수준에선 상당히 높은 경제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프랑스나 영국, 이탈리아 중부와 비슷하다. 동유럽 옛 공산권의 어느 나라보다 높은 경제 수준이다. 공산주의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체제전환을 한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지난 5월 1일 독일 서북부 함부르크에서 열린 노동절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메르켈보다 마르크스가 낫다'는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독일의 실업난은 정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5월 1일 독일 서북부 함부르크에서 열린 노동절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메르켈보다 마르크스가 낫다'는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독일의 실업난은 정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인당 GDP, 옛 서독 대비 42.9%→75%로

지난 9월 25일 독일의 연방경제에너지부가 발표한 ‘독일 통일 현황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옛 동독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옛 서독지역의 75%, 평균임금은 84%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것만 떼놓고 보면 옛 동독 지역이 경제성장에서 소외된 것처럼 착각할 수 있지만 사실 옛 동독 지역은 통독 이후 경제성장을 유지해왔다. 통일 이후 옛 동독지역의 옛 서독지역 대비 1인당 GDP는 1991년 42.9%에서 2000년 67.2%, 2008년 70.9%로 꾸준히 격차를 좁혀왔다.  

게다가 옛 동독지역은 부동산 비용과 생활물가가 낮아 옛 서독 지역의 80% 정도면 동일금액 아니지만 동일 생활수준은 유지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옛 동독 지역 예나에 위치한 프리드리히 실러 대학 경제·경영학과의 비즈니스 동력·혁신 및 경제변화 담당 교수인 미카엘 프리치 박사의 주장이다.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베를린장벽에 벽화를 그려 놓은 이스트사이드갤러리에서 국내외 관광객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한경환 기자]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베를린장벽에 벽화를 그려 놓은 이스트사이드갤러리에서 국내외 관광객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한경환 기자]

연대세 거둬 R&D 옛 동독지역에 투자

독일 연방정부는 옛 서독지역에서 연대세를 받아 옛 동독지역의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투자해 장기적으로 격차를 줄이는 정책을 꾸준히 펴고 있다. 그 효과가 나타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도 많다.  

일부에선 체제전환 뒤 30년이 지나도 옛 동독 지역에 옛 서독지역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과거 공산체제의 부작용이 지금도 장기적인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라는 주장도 편다. 프리치 박사는 이를 공산주의 시절에 겪었던 트라우마에 따른 강박증세로 표현한다. 예로 과거 동독 시절 공장이나 사업소들은 중앙에서 배정하는 원료만으로 가동해야 했기 때문에 부품과 원자재를 일단 필요 이상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 전통과 강박 관념이 남아있기 때문에 지금도 옛 동독 지역의 기업은 옛 서독지역의 기업보다 원료를 충분히 확보하려는 경향이 보인다는 지적이다.  

 

옛 동·서독간 경제격차 해소, 정치 과제로

문제는 독일 주가지수인 DAX에 들어가는 30대 기업 중 옛 동독지역에 본사를 둔 기업은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더욱 문제는 주민들의 심리다. 보고서의 설문조사에선 옛 동독지역 주민의 57%가 자신을 ‘2등 시민’으로 느낀다고 응답했다. 옛 동독 지역 주민의 박탈감을 잘 보여주는 조사 결과다. 
옛 동·서독 지역 간 경제적 격차 해소는 독일 국내정치의 핵심 과제로 자리 잡았다. 메르켈 총리도 지난달 28일 주례 팟캐스트에서 “1990년 옛 서독 지역의 43%였던 옛 동독 지역의 경제력이 현재 75%까지 올라온 것은 대단한 성공이지만 한편으론 아직 갈 길이 멀다”라고 지적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은 독일의 깊은 고민이다. 통일은 현실이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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