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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구글도 멸종한 맘모스처럼 되지 말라는 법 없다

중앙선데이 2019.11.09 00:21 660호 15면 지면보기

서광원의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일러스트=전유리 jeon.yuri1@joins.com

일러스트=전유리 jeon.yuri1@joins.com

전성시대는 전멸시대를 예고한다.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런 일은 흔하다.
 

코끼리보다 두세 배 큰 맘모스
기후변화에 적응 못 해 사라져

4차 산업혁명 대전환의 시대
일하고 살아가는 방식 바꿔야

지금의 중동 지역은 1만3000여 년 전까지 성경에 나오는 표현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사막과 황무지뿐인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야생 동물이 가득한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덕분에 아프리카에서 나온 인류가 이곳을 기반으로 전 세계로 진출할 수 있었다.
  
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 가지 않는 법, 마지막 빙하시대가 끝나고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초원이 숲으로 변하자 동물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화석으로만 남아있는, 코끼리보다 두세 배나 큰 맘모스, 역시 지금의 들소보다 훨씬 컸던 들소, 지금의 들소만큼 컸던 사슴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몸집이 작은 사슴과 가젤들은 뿔뿔이 흩어져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들을 사냥하고 살았던 인류에게도 그 여파가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살기 좋았던 시대를 거치며 인구가 급증한 탓에 더 그랬다. 인류는 이 위기를 어떻게 이겨냈을까?
 
아마 다들 더 열심히 사냥하고 채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대형 동물은 보기 힘들어졌고 채집도 시원찮아졌다. 왜 더 열심히 노력했는데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했을까? 그렇지 않아도 줄어들고 있는 자원을 ‘더 열심히’로 더 빨리 고갈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선이라는 걸 항상 좋은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사실 최선을 다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는데 하지 말아야 할 최선을 하는 바람에 상황을 악화시켜버린 것이다.
 
행히 인류는 절치부심 끝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들판에 자생하던 풀 중에서 생산성이 좋은 걸 직접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밀과 보리 같은 농업의 시작이었다. 동물도 그렇게 가축화시켰다. 잡으러 다니지 않고 키웠다. 탁월한 해결책이었다. 자, 이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으니 다시 번성을 만끽할 일만 남았을까? 그렇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이 새로운 생산양식은 인류에게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을 요구했다. 사시사철 이동하던 생활에서 한 곳에 정주해야 하는 생활이 그것이다. 넓은 세상을 달리던 생활 대신 땅에 매여 살아야 했고, 사냥 도구 대신 농기구를 잡아야 했으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밀집해서 살아야 했다. 뭐 당연한 게 아닌가 싶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기 영역을 가져야 했기에 더 좋은 영역을 갖기 위한 다툼이 생겨났고, 모여 살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 갈등과 마찰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전염병 또한 창궐하기 시작했다. 드문드문 살 때에는 없었던 일이다.
 
이뿐인가? 우리는 곡물을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는 농업의 장점이 문명의 바탕이 된 것만 알지 이 때문에 생긴 부작용이 얼마나 큰지는 모른다. 남들이 애써 일군 걸 빼앗고 탈취하는 전문 싸움꾼(전사)들의 등장도 그중 하나였다. 이 싸움꾼들이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며 나타나 곡물과 가축을 빼앗는데 그치지 않고, 지배층이라는 이름으로 눌러 살게 되면서 상층과 하층이 생겼고, 부족과 부족,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언제 전쟁이 벌어질지 모르는 세상이 됐다.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지만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간 게 아니었다. 어찌됐든 이 대전환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생존 방식과 능력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이들은 기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동물들처럼 사라졌다. 이런 우여곡절을 통해 나타난 게 문명이고 지금의 세상이다.
  
마 전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장병규 위원장이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4차산업 시대는 “생산 수단을 본인이 갖고 있다는 게 (이전 시대와) 큰 차이”라고 말이다. 그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근로자는 컨베이어 벨트를 소유하지 못하지만 4차산업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머리에 들어있는 지식과 역량, 경험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단순한 말 같지만 여기엔 큰 의미가 들어있다. 인류가 농업으로 전환하던 때와 같은 새로운 대전환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생산 수단과 양식이 바뀌는 대전환의 시대에는 앞에서 봤듯 지금까지 해오던 걸 더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 하는 것으로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일하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기반으로 생겨난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핵심 경쟁력이 이전 기업들과는 완전히 다른 기업문화인 게 대표적인 증거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인류가 농업을 시작했을 때 멸종한 맘모스 같은 동물들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고 했다. 덩치가 크고 번식이 느렸다.  
 
덩치가 크니 갈수록 줄어드는 먹이로 생존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번식이 느리니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새로운 유전자를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요즘 시대로 치면 규모가 크고 신제품 출시가 느린 기업이나 새로운 능력 개발이 더딘 개인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는 이미 시작됐다.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역량을 갖추어 살아남느냐, 그렇지 않고 사라지느냐 하는 기로에 우리가 서 있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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