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당신이 잠든 사이에…지하철역은 다시 태어난다

중앙선데이 2019.11.09 00:20 660호 17면 지면보기
서울메트로환경 직원들이 10월 11일 새벽 서울 2호선 시청역 승강장 청소를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서울메트로환경 직원들이 10월 11일 새벽 서울 2호선 시청역 승강장 청소를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오늘 열차 운행은 모두 종료됐습니다.”
지난달 11일 오전 0시 58분 서울 2호선 시청역. 운행 종료 안내 방송이 나온 뒤 모든 승강장이 폐쇄됐다. 셔터가 내려왔고 엘리베이터는 멈췄다. 하지만 고요함은 5분을 버티지 못했다. 이 지하철역은 다시 술렁이고 있었다. 역무실 CCTV(폐쇄회로 텔레비전)로 보니 여자 6명, 남자 2명이 안내 방송에 아랑곳하지 않고 승강장에 진입했다.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고무장갑을 낀 채로. 어깨, 손으로는 각종 ‘중무기’를 끌고 밀거나 메고 든 채로.

■ 서울 2호선 시청역 청소 현장 가보니
승강장 200m, 계단 등 3시간 걸려
오후 9시 출근, 새벽 첫 열차 뒤 퇴근

화장실 낙서, 주말 집회 직전에 급증
“독한 약으로 지우느라 병 걸릴 판”

선선한 날씨에도 온몸에 땀 흠뻑
“땀 냄새 나 퇴근 때 승객에게 죄송”

 
당신이 잠든 사이에, 지하철역은 다시 태어난다. 지난달 9일·10일 새벽, 이미 이들은 2호선 시청역 지하 1·2층을 ‘싹쓸이’했다. 한 달 2회 실시되는 역사 내 물청소 작업이다. 서울교통공사의 자회사인 서울메트로환경은 1~4호선 120개 역사 물청소 외에 왁스·방역 작업도 한다. 전동차, 차량기지도 청소하고 기지 경비 작업도 병행한다. 5~8호선은 그린환경이 맡는다. 서울메트로환경은 직원이 1799명(8월 기준)이다. 미화 인력이 1547명으로 가장 많다. 이 중 8명을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만나 새벽을 함께 보냈다. 밤을 잊은 이들이다.
지난 10월 11일 새벽 서울 2호선 시청역에서 서울메트로환경 직원들이 승강장을 청소하고 있다. 승강장 안내판에 역사 청소 계획 문구가 떠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 10월 11일 새벽 서울 2호선 시청역에서 서울메트로환경 직원들이 승강장을 청소하고 있다. 승강장 안내판에 역사 청소 계획 문구가 떠있다. 김홍준 기자

# 오전 1시, 화장실

“글씨체로 보면 같은 사람인데, 화장실 안에 CCTV를 설치할 수도 없고….”
약품을 이용해 남자 화장실의 낙서를 지우던 김태선(60)씨가 혼잣말을 내뱉었다. 화장실 변기 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가장 은밀한 공간이다. ‘애인 구함’ ‘회춘시켜 드립니다’ 등의 짧은 문장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날 시청역 화장실의 낙서는 200자 원고지 2매 분량의 장문이었다. 김씨는 “광화문·시청 일대 집회가 늘면서 이런 정치적 메시지의 낙서도 급증했다”며 “주말 집회를 앞둔 목·금요일에 많이 등장한다”고 말했다. 그는 “독한 약품을 써야 지워지는데, 큰 병이라도 걸릴까 봐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메트로환경 직원이 11일 새벽 서울 2호선 시청역 화장실 낙서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서울메트로환경 직원이 11일 새벽 서울 2호선 시청역 화장실 낙서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실제로 좁고 폐쇄된 공간에서 약품에 노출된 기자는 금세 눈이 따끔거렸고 기침을 쏟아냈다. 공공장소에 낙서하면 경범죄처벌법에 의해 10만원 이하의 범칙금을 물게 돼 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화장실 문을 열며 일일이 단속할 수 없는 노릇이고, 지하철 보안관들은 처벌 권한도 없다”고 말했다. 

 
지하철역을 비롯한 시설 내 화장실 청소는 스트레스가 많은 분야다. 우리나라처럼 여성이 남자 화장실을 청소하는 경우는 외국에서 거의 없다. 여성이 남자 화장실에 들어간다는 점을 문제 삼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성 미화원들은 ‘어쩔 수 없이’ 일하러 들어간다.
 
전문가들은 미화원의 80% 정도가 여성이라는 성별 인력 비대칭과 여성 미화원은 '안'을 남성 미화원은 '밖'을 맡아야 한다는 편견 때문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한 공공기관 시설관리팀 관계자는 “남성들이 화장실 청소를 꺼리는 것도 이유”라고 말했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현재 여성 미화원이 청소 중입니다’라는 팻말이다. 청소가 마무리될 때까지 잠깐만 참아달라는 의미다. 
김씨는 “그래도 화장실로 들어오는 남성 중엔 미화원에게 욕설을 퍼붓는 경우도 있다”며 “그럴 때마다 투명인간인 척 조심히 일하는데, 어떤 여성이건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고 싶어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가 2018년 발표한 ‘청소·경비 직종 근무형태 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1~4호선 청소노동자 399명 중 143명(35.8%), 5~8호선 청소노동자 299명 중 109명(36.5%)이 ‘화가 난 고객이나 손님 응대’를 노동자 안전·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김씨는 수세미로 변기에 고인 물속 주변까지 박박 닦았다. 변기를 손으로 문지르면 뽀드득 소리가 날 것 같았다. 변기 물이 쏴~ 소리를 내며 내려갔다.
 
지하철

지하철

# 오전 2시, 승강장
쏴~. 승강장 계단에서 16년차 최고참 윤찬례(61)씨가 고압 호스로 먼지와 오물을 몰아갔다. 신경규(56) 반장은 “이곳 시청역은 배수로가 있어 그나마 나은 편”이라며 “청량리처럼 오래된 역들은 배수로가 없어 물을 승강장 끝까지 몰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메트로환경 직원들이 11일 새벽 서울 2호선 시청역에서 고압호스로 물을 뿌리며 승강장으로 통하는 계단을 청소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서울메트로환경 직원들이 11일 새벽 서울 2호선 시청역에서 고압호스로 물을 뿌리며 승강장으로 통하는 계단을 청소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신씨처럼 ‘반장’ 역할을 하는 인원은 서울메트로환경에서 26명. 이들은 각각 4~5개의 역을 맡고 있다. 신 반장은 시청역 1·2(호선), 서울역 1·4(호선), 종각역을 맡고 있다. 이날 다른 25개 팀도 같은 시각 다른 역에서 물청소를 하고 있었다. 신 반장은 신도림역을 가장 청소하기 어려운 곳으로 꼽았다. 

 
하루 이용객 50만 명에 승강장은 4곳으로 복잡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2호선 시청역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이틀간 청소를 마친 지하 1·2층의 바닥을 가리켰다. “요새 생기는 역은 대리석으로 반반하게 복도를 만들지만, 시청역은 문양이 들어간 타일”이라며 “속도가 빠른 습식청소도구(기계 자체에서 물을 뿌리며 청소)로는 전혀 할 수 없어 수작업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1일 새벽 서울 2호선 시청역에서 승강장 물청소를 하고 있는 서울메트로환경 직원들. 한 직원이 왁스 기계를 사용해 때를 빼고 있다. 뒤에서는 고압호스로 뿌린 물을 밀대로 밀고 있다. 김현동 기자

지난 10월 11일 새벽 서울 2호선 시청역에서 승강장 물청소를 하고 있는 서울메트로환경 직원들. 한 직원이 왁스 기계를 사용해 때를 빼고 있다. 뒤에서는 고압호스로 뿌린 물을 밀대로 밀고 있다. 김현동 기자

윤씨가 물을 뿌리면 신 반장이 큰물을 몰고 갔다. 이른바 ‘앞밀대’다. 이어 ‘뒷밀대’가 작은 물을 쓸고 민다. 격렬한 전투였다. 서쪽 승강장에서 동쪽으로 200m 전진해야 했다. 

 
휴식시간. 10분이었다. 이미령(56)씨가 보이지 않았다. 이씨는 맨 뒤에서 남은 물기를 제거하고 있었다. 그는 “오전 4시까지는 다 말려야 한다”며 “혹시 승객이 물기 있는 곳을 밟다가 미끄러지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작업은 후반전으로 넘어갔다. 신 반장이 쓰레기봉투를 메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는 주말 밤에만 수거하는 쓰레기가 100L 봉투 기준으로 10개가 넘는다고 말했다. 이곳 2호선 시청역의 일반쓰레기는 지난해 100L 쓰레기봉투로 1918봉이 나왔다. 1~4호선 120개 역 중 11번째로 많은 양이다. 1위는 잠실역으로 5168봉. 4호선 충무로역(4099), 1호선 시청역(2653), 4호선 혜화역(2547), 2호선 홍대입구역(2477)이 뒤를 이었다. 신 반장은 “지하철역 내 쓰레기 중에는 과일 껍질, 달걀 껍데기 등 가정에서 버린 생활 쓰레기도 있다”고 밝혔다. 생활 쓰레기를 지하철역에 무단투기하면 폐기물관리법 68조에 따라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서울메트로환경 직원들이 지난 10월 11일 새벽 서울 2호선 시청역 승강장 청소 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서울메트로환경 직원들이 지난 10월 11일 새벽 서울 2호선 시청역 승강장 청소 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서울메트로환경 직원들이 지난 10월 11일 2호선 시청역에서 물청소 중 휴식을 취하면서 차가운 물로 몸과 마음을 달랬다. 김홍준 기자

서울메트로환경 직원들이 지난 10월 11일 2호선 시청역에서 물청소 중 휴식을 취하면서 차가운 물로 몸과 마음을 달랬다. 김홍준 기자

김은숙(56)씨가 잡은 왁스 기계가 동쪽 승강장 계단 앞까지 진출했다. 고지가 보였다. 김씨는 “바닥에 껌은 기본이고 토사물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말했다. 서울메트로환경 관계자는 “1~4호선에서 1년간 처리하는 토사물이 10만 건이 넘는데, 홍대입구역이 악명 높다”며 “타일 벽에 낀 토사물은 일일이 손으로 긁어내야 한다”고 밝혔다.

 
윤씨가 동쪽 승강장 계단에서 기관총처럼 물을 뿌렸다. 다시 앞밀대, 뒷밀대. 그리고 물기 제거 대걸레. 오전 3시 45분이었다
 

# 오전 4시, 땀
장비까지 정리하자 오전 4시가 넘었다. 신 반장의 관자놀이 위로 땀이 흘러내렸다. 신 반장은 “지금은 선선해져서 괜찮지만, 한여름 작업 땐 땀에 절어 퇴근한다”며 “지하철을 타고 가면 승객들에게 죄송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꼼꼼하게 씻고는 가는데 땀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서울메트로환경 직원이 지난 10월 11일 새벽 서울 2호선 시청역 승강장 청소 중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서울메트로환경 직원이 지난 10월 11일 새벽 서울 2호선 시청역 승강장 청소 중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서울메트로환경 신경규 반장이 지난 10월 11일 새벽 서울 2호선 시청역 승강장을 청소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서울메트로환경 신경규 반장이 지난 10월 11일 새벽 서울 2호선 시청역 승강장을 청소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오전 5시, 이들은 역 안을 다시 점검했다. 청소가 부족한 부분이 있는지, 물기는 다 말랐는지 살펴보는 것. 오전 5시 30분 넘어 첫차가 들어왔다. 신 반장은 6시에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의 몸에서는 여전히 땀 냄새가 났다. 지하철역을 뽀송뽀송하게 만든 뒤 얻은 생채기였을까, 훈장이었을까. 아직도 어둠에 싸인 시청 앞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간밤의 취객들. 이들은 이 지하철역 안이 격렬한 전투 뒤 새롭게 태어났음을 알까, 모를까.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