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신화의 한반도평화워치] 정권 안보 위해 국가 안보 무시하는 대북 쏠림 중단해야

중앙일보 2019.11.08 00:23 종합 30면 지면보기

국가 안보와 정권 안보

북한이 지난달 31일 발사했다고 주장한 초대형 방사포 시험 사격. 북한은 고도 약 90㎞, 비행거리 370㎞로 발사체를 발사했다고 밝혔다. 김영환 국방정보본부장은 6일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이 발사체를 탄도미사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달 31일 발사했다고 주장한 초대형 방사포 시험 사격. 북한은 고도 약 90㎞, 비행거리 370㎞로 발사체를 발사했다고 밝혔다. 김영환 국방정보본부장은 6일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이 발사체를 탄도미사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역사적으로 볼 때 독재자나 정치적 정통성이 약한 지도자들은 국가 안보라는 미명 하에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한 정권 안보에 집착하는 정책들을 추진해왔다. 외부의 적을 상정하여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고양하거나, 국내 비판 세력을 국가의 적이나 안보 위협 세력으로 몰아 억압했다. 그 과정에서 표면상으로는 위기상황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킨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이러한 전략은 일정 기간 효과를 거두는 듯하나 종국에는 정치적 권력을 유지하지 못할 뿐 아니라 국가 안보 자체에도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보수정권을 ‘북풍 안보 장사’ 비난해온 정부
외교·안보 벼랑끝인데, 총선용 정치쇼 꿈꾸나
다시 ‘김정은과 손잡아, 지지율 회복’ 믿는다면
알아서 기라는 북한식 갑질과 협박 더해질 것

독일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를 내걸고 집권한 제2차 세계대전의 주범 아돌프 히틀러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독일은 패전국이 됐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인 도조 히데키는 내각을 장악하여 총리대신에 오른 후 군사국가 체제로 일본 전체를 전쟁으로 내몰았지만, 결국 일본은 원폭으로 무조건 항복했고 히데키는 교수형에 처해졌다. 42년간 리비아를 철권통치한 무아마르 카다피는 시민들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이후 리비아는 내전에 빠졌다. 반미주의를 내걸고 기득권을 적폐로 몰아 집권한 우고 차베스는 장기 집권에 성공하지만, 그의 사망 후 민생 불안과 정정 불안이 지속하여 석유 부국 베네수엘라는 2017년 국가 부도 위기를 맞았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 되겠다”더니…
 
이승만 대통령이 북진 통일론을 추진한 주요 요인 중 하나는 국민의 반공 의식을 고양하여 집권 자유당의 장기 집권을 도모하는 것이었으나 결국 1960년 4·19 혁명이 발발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72년 10월 유신도 반공을 내세워 영구집권 체제를 도모한 조치였으나 79년 10·26 사태로 종식됐다. 이후에도 잔존한 ‘북풍 정치’ 때문이었을까? 민주화 이후의 우리 사회는 좌파=진보, 우파=보수라는 이분법적 진영 논리에 매몰되었다. 전직 대통령들의 공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없이 자기편은 과도하게 옹호하고 상대 진영은 신랄하게 비난하는 트라이벌리즘(tribalism)에 빠졌다. 그 과정에서 “국가 안보가 정권 안보에 희생됐다”는 비판은 주로 민주화 주역을 자임하는 좌파 진영이 우파 진영을 친독재·반민주·종미·친일·반민족·반평화적 세력으로 공격하는 전유물이 되었다.
 
오는 10일이면 “이게 나라냐!”며 들고 일어난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압승을 거둔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돈다. 야당 시절 문 대통령이 “사즉생(死卽生)으로 다시는 정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라고 다짐해서일까? 대한민국을 반으로 쫙 쪼개버린 조국 대란은 차치하고라도,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문재인 정부는 과거 어느 정권보다도 더 청와대 중심인, 그들만의 좁은 리그 속에 갇혀 있다. 거기다 경제·외교·안보·사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게 없다.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는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인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야심 차게 밀어붙인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 정책은 오리무중에 빠지고 말았다.
 
‘기승전북(北)’의 외교·안보는 더 가관이다. 남북 관계만 원만해지면 미·중·일·러 4강 외교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며 북·미 간 중재자, 촉진자 역할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한반도평화프로세스에 올인했다. 남·북, 북·미, 남·북·미 정상들 간 몇 차례의 평화 이벤트로 이제 ‘전쟁 없는 한반도’가 시작됐다고 자축했지만, 우리에게 희망 고문만 주었을 뿐이다.되레 가짜 비핵화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동맹보다 우선시해야 할 국익은 무엇인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직접 대화 채널을 뚫은 김정은은 대놓고 이용 가치가 떨어진 우리 대통령을 따돌리고 있다. “새벽잠 설치지 않게 하겠다”더니 평화경제 러브콜이 무색하게 잇단 미사일을 쏘아대고, “삶은 소대가리” “겁먹은 개”라고 모욕성 발언을 쏟아붓고 있다.
 
유례없는 무관중·무중계 축구 경기에 이어 일방적인 금강산 시설 철거 요구까지 북한의 으름장과 비아냥거림이 점입가경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의 대북 쏠림 정책과 ‘북(北) 바라기’에는 변함이 없으니 감상주의적 민족주의 순애보가 따로 없다. 더욱이 그 과정에서 대북 제재와 관련한 온도 차 등으로 한미동맹 균열은 커지고 대북 협상 성과를 혼자만의 업적으로 누리고 싶은 트럼프도 한국이 북·미 사이에 끼는 것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최악으로 치달은 한·일 관계 속에 정부는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의 고리로서 상징성이 높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했다. 지난 8월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해 합동작전을 벌인 중국과 러시아는 지소미아 파기 사태라는 호기를 잡았다. 이들이 이제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할지가 걱정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지소미아 종료 철회를 위한 외교적 압박을 보내는 미국에 대해 "아무리 동맹 관계여도 국익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및 중국의 군사력 급부상이 우리의 국가 안보를 직접 위협하는 상황에서 동맹보다 더 우선시해야 할 국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지소미아 파기, 김정은이 좋아할 시나리오
 
1950년 1월 한국을 제외한 애치슨라인(미국의 태평양방위선)이 발표된 지 5개월 후 북한은 남침을 감행했다. 당시 맥아더 장군의 명령으로 한국에 제일 먼저 도착한 미군은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주둔한 병력인 일본 규슈의 제24보병 사단이었다. 현재 5만 명에 달하는 주일 미군의 핵심 임무는 한반도 유사시 주한 미군의 임무를 지원하는 것이고, 미국에서 파병될 증원 전투병들의 1차 집결 장소도 일본 오키나와다.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파기로 한·미·일 3각 안보협력관계를 와해하고 우리 자신을 미국의 방위선 밖에 둔다면, 이는 김정은이 가장 좋아할 시나리오일 것이다.
 
이렇듯 경제와 외교·안보 모두 벼랑 끝에 몰렸는데도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 다시 카메라 앞에서 맞잡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면 모든 문제가 단숨에 풀리고, 평창 동계올림픽과 남북 정상회담의 지지율 신화가 되살아날 것이라고 믿는 걸까? 문득 2018년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 동행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우리가 정권을 빼앗기는 바람에 11년 동안 남북 관계가 단절됐다.…이번에는 남북 관계가 영속적으로 갈 수 있도록 만들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왔다”고 김영남 북한 상임위원장에게 한 말이 생각난다. 당시 이 대표는 국내 비판세력을 안보 훼손 세력이자 남북 관계 파괴범이라고 비난하며, 여전히 미군 철수와 적화통일을 지향하는, 핵으로 무장한 북한 당국에 장기 집권 서약을 한 셈이다. 정말 어이없고 위험천만한 발언이다.
 
그러니 북한에 우리는 언제나 만만한 대상일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대북 제재 해제를 남북 관계를 위한 문 대통령의 의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삼고자 할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 한 차례 정치 쇼를 원한다면 알아서 기라는 북한식 갑질과 협박은 점점 더해질 것이다. 이러한 사태는 "국가 안보를 담보로 정권 안보를 획책하며 북풍 안보 장사를 하는 우파 보수 정권”이라고 비난해온 현 정부가 자신의 정권 안보를 위해 자초한 일이다. 국가 안보가 불안하다. 대한민국이 위태롭다.
 
키워드
애치슨라인

애치슨라인

트라이벌리즘(tribalism)
세계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뚜렷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 특정 지역의 부족(Tribe), 즉 이해관계가 동일한 집단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현상을 뜻한다. 정치 지도자들은 이런 집단들 간의 관계를 파악해야 지역 안정과 경제 번영을 꾀할 수 있다.
 
애치슨라인(Acheson Line)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이 1950년 1월 12일 발표한 미국의 극동방위선. 애치슨은 태평양에서의 미국의 방위선을 알류샨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정했다. 방위선 밖의 한국·대만은 보호 대상이 아니었고 6·25 전쟁을 유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적화통일(赤化統一)
분단국가에서 공산주의 정부가 상대방 자유주의 정부를 전복·흡수하여 공산 통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1949년 중국과 1975년 베트남의 공산 통일이 대표적 예다. 북한은 1950년 한국전쟁을 일으켜 적화통일을 시도했으며,지금도 적화통일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