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로컬 프리즘] 살찐 고양이 살빼기

중앙일보 2019.11.08 00:18 종합 33면 지면보기
황선윤 부산총국장

황선윤 부산총국장

지난 5월 부산시 의회는 ‘부산시 공공기관 임원 보수기준에 관한 조례’를 공포했다. 부산시 산하 공사·공단 6곳, 출자·출연기관 19곳의 대표와 임원 연봉을 최저임금 기준 연봉의 6~7배를 넘지 못하게 제한하는 조례다. 조례가 상위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행안부 지적에 따라 부산시가 재의를 요구하자 시의회는 재의결을 거쳐 직접 공포·시행에 들어갔다.
 
이는 국내 최초로 공공기관 임원 급여를 제한한 ‘살찐 고양이 조례’로 주목받았다. 살찐 고양이는 1928년 저널리스트 프랭크 켄트가 발간한 『정치적 행태』(Political Behavior)에 처음 등장한 용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구조조정과 임금삭감에 내몰린 직원과 달리 고액연봉과 퇴직금을 챙긴 월가의 탐욕스러운 은행가·기업인을 비난하는 말로 널리 사용됐다.
 
살찐 고양이 조례의 반향은 컸다. 경기도·울산시·경남도 의회 등이 잇따라 같은 내용의 조례를 제정했다. 서울시·제주도·대구시·충남도 등의 광역 의회는 물론 성남·창원시 같은 기초단체 의회도 조례 제정에 나서고 있다. 갈수록 심화하는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해보려는 시도가 지방에서 시작됐다는 평가다. 조례 제정에 여·야가 따로 없다는 점도 주목된다. 부산·경기·울산에선 각기 다른 정당 소속의 시·도 의원이 조례를 발의해 통과시킨 때문이다.
 
살찐 고양이법은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2016년 발의한 적 있다. 민간기업의 최고경영자와 공공기관 임원 연봉을 각각 최저임금의 30배, 10배를 넘지 못하게 하는 ‘최고임금법안’이었다. 하지만 이 법안은 국회 상임위에서 잠자고 있는데, 본격적인 논의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프랑스는 공기업의 연봉 최고액이 최저연봉의 20배를 넘지 못하도록 법으로 못 박았다고 한다. 논란의 소지가 있는 민간기업은 차치하고라도 사실상 세금인 공공기관 임원의 임금을 우리도 제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지방에서 불붙은 살찐 고양이 살 빼기가 중앙 공공기관에도 확산하기를 기대해본다.
 
황선윤 부산총국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