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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외고·국제고, 2025년 모두 폐지…정부 시한부 선고

중앙일보 2019.11.08 00:04 종합 1면 지면보기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고교 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교진 세종교육감, 유 부총리, 이재정 경기교육감, 조희연 서울교육감. 김경록 기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고교 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교진 세종교육감, 유 부총리, 이재정 경기교육감, 조희연 서울교육감. 김경록 기자

전국의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국제고가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현재 초등 4학년이 고교에 입학하는 2025년에 맞춰 이들 학교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방안을 7일 발표했다. 교육부는 올해 안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쳐 이들 학교의 근거 조항을 삭제할 계획이다.
 

일반고 전환 … 3조대 예산 필요
“내년 총선 의식한 포퓰리즘 정책”
전문가 “교육 특구 쏠림 커질 것”
민사고·상산고도 사라질 위기
위헌 여부, 2022년 대선 결과 변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부정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 9월 문재인 대통령은 대입 공정성 제고와 함께 ‘고교 서열화 해소’를 지시했다. 교육부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자사고·외고의 ‘단계적 전환’(시·도교육청의 학교별 평가→탈락 시 일반고)을 추진했지만 일괄 전환으로 급선회했다.
 
교육부는 2025년 도입될 고교학점제를 통해 일반고에서 ‘수월성 교육’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5년간 2조원 이상을 투입한다.
 
반응은 엇갈린다. 자사고·외고의 일괄 폐지를 주장했던 진보교육감 등은 환영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자사고와 사립외고는 반발했다.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장인 김철경 대광고 교장은 “자사고 폐지는 공정성을 가장한 획일적인 평등이자 교육의 퇴행이다. 내년 총선을 의식한 ‘교육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자사고 “5년단임 정권이 교육 독재” … 강남·목동만 웃는다

 
같은 날 오후 교육부 발표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 중구 이화여고에서 김철경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장(앞줄 오른쪽 둘째)이 발언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같은 날 오후 교육부 발표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 중구 이화여고에서 김철경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장(앞줄 오른쪽 둘째)이 발언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고·국제고를 2025년 일반고로 일괄 전환한다는 방침을 밝힌 7일 교육부의 기자회견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 진보교육감 5명이 참석했다. 이재정 교육감은 “1970년대 평준화는 학교 서열을 없애려는 과감한 정책이었다. (자사고·외고 폐지는) 그 이후 처음으로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는 대단한 결단”이라고 말했다. 진보교육감과 전교조 등은 정부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한 자사고·외고의 일괄 폐지를 주장해 왔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체 고등학생 중 4%를 차지하는 외고·자사고가 우수 학생을 선점해 고등학교가 ‘일류’ ‘이류’로 서열화되고, 학비가 비싼 탓에 위화감을 조성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들 학교가 설립 취지와 달리 입시교육에 치우쳤고,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입시 부담이 커져 교육 불평등을 키운다는 점을 일괄 폐지의 이유로 들었다.
  
유은혜 “서열화 막기 위해 자사고 등 폐지”
 
하지만 이날 오후 서울 이화여고 대강당에 모인 자사고 교장들은 교육부가 발표한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을 일제히 성토했다. 오세목 전국자사고공동체연합회장은 “엄연히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은 국민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데도 5년짜리 단임 정권이 입맛대로 학교를 바꾸려 한다”며 “이 같은 무소불위의 독재적 발상을 법적 대응 등을 통해 총력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행사장에서 만난 한 자사고 학부모는 “강북에도 보낼 만한 일반고가 있었다면 굳이 자사고에 아이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때문에 학교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사고·외고들은 지역별로 법정투쟁 등 향후 대응방침을 논의 중이다.
 
고교 유형별 학생 수

고교 유형별 학생 수

이날로 전국 자사고 42곳, 외고·국제고 37곳은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2024년까지 학교 지위를 유지하고 신입생도 뽑는다. 2025년부터 일반고로서 신입생을 받게 된다. 전국에서 신입생을 뽑던 민족사관고·상산고·포항제철고 등은 모집 지역이 시·도로 제한된다. 양양고·한일고·공주사대부고·거창고 등 전국모집을 하던 지역 일반고(49곳)도 2025년 이후엔 시·도나 학군 내에서만 선발할 수 있다.
 
자사고·외고의 폐지 시점으로 잡은 2025년은 전국 고교에 학점제가 도입되는 해다. 유 부총리는 “고교학점제에 맞춰 일반고를 육성하고 미래형 대입제도를 마련해 고교 교육을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자사고·특목고에 의지했던 ‘학교 단위 수월성 교육’ 대신 ‘일반고 내부의 수월성 교육’으로 전환한다는 구상이다.
 
고교학점제에선 고교생이 대학생처럼 진로·수준에 맞게 과목을 선택한다. 이를 위해 일반고에서 과학·수학·어학 등 전문 교과를 운영하고, 기존 일반고와 일반고로 전환하는 자사고·외고의 공동교육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정부 구상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시점은 다음 대통령의 임기다. 2022년 대선 결과에 따라 시행령 재개정을 통해 번복될 수 있다. 자사고와 사립외고·국제고가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에 나서면 정부와 학교 중 누가 승자가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전국 외국어고·국제고·자사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전국 외국어고·국제고·자사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앞으로 5년은 혼란없이 자사고 졸업
 
고교학점제의 실현 여부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한국교총 조성철 대변인은 “학생의 다양한 수요를 맞출 만큼 다양한 과목을 제공하려면 교사와 공간을 늘려야 하고 학교·교사의 충분한 대비와 실험이 필수적인데 현장에선 벌써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다. 교육계에선 강남과 강북, 대도시와 농어촌 등 일반고의 지역 격차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이어졌다.
 
예산 부담도 커진다. 유 부총리는 “인공지능(AI) 등 신산업 과목 강사를 양성하고 학교 공간을 증설하는 데 5년간 2조원 이상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는 별도로 등록금에 의존하던 자사고·사립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면 무상교육 정책에 따라 정부가 인건비·운영비 등을 지원해야 한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자사고 42곳을 일반고로 전환했을 때 최초 5개년 동안 최소 7703억원이 필요하다. 사립외고·국제고(17곳)까지 포함하면 1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자사고·외고 폐지가 정시 확대 방침과 맞물려 강남·목동 등 ‘교육특구’로의 쏠림이 한층 심해질 수도 있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의 임성호 대표는 “학부모들은 자사고·외고가 사라져도 일반고 간 격차가 줄어들 거라 믿지 않고 있다. 초등학생 4학년 자녀를 둔 부모들은 좋은 학군에 이사해야 하나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봤다.
 
초5~중3 사이엔 자사고·외고의 인기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2024년까지 존속을 보장한 이상 혼란 없이 졸업할 수 있게 됐다. 백모(42·서울 노원구)씨는 다음달 고입에서 중3 아들을 자사고에 지원시키겠다고 결정했다. 그는 “자사고들이 재지정 평가에서 무더기 탈락하는 걸 보고 고민했는데, 졸업할 때까지 혼란 없이 유지될 듯하니 자사고에 보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천인성·박형수·전민희 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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