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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홍콩 해방' 현수막 뜯은 中유학생···대학도 홍콩 갈등

중앙일보 2019.11.07 17:28
‘Liberate Hong Kong(홍콩을 해방하라)’
‘Free Hong Kong, revolution of our times(홍콩 해방, 우리 시대의 혁명)’
 
지난달 24일과 지난 4일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연세대학교 한국인 학생들이 교내에 내걸었던 현수막 문구다. 하지만 24시간도 되지 않아 현수막은 누군가에 의해 무단으로 철거됐다. 학생들은 “현수막을 임의로 뜯어내거나 철거하는 행위는 자유로운 표현에 대한 테러”라고 비판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고 현수막 철거 목격자를 수소문했다.
 
연세대 교내에 설치됐다가 철거된 현수막. [사진 홍콩을 지지하는 연세대 대학생 모임]

연세대 교내에 설치됐다가 철거된 현수막. [사진 홍콩을 지지하는 연세대 대학생 모임]

 

'원 차이나' 외치며 현수막 철거한 중국인들

현수막을 무단 철거한 이들은 중국인으로 드러났다. 7일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재학생 김기성(25)씨는 “지난달 24일 오후 9시쯤, 서울 서대문구 신촌캠퍼스 안에서 도서관에 가던 도중 철거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고 중앙일보에 밝혀왔다.
 
김씨에 따르면 당시 20대로 보이는 남성 2명과 여성 3명이 ‘원 차이나(One Chinaㆍ하나의 중국)’를 수차례 외치며 현수막끈을 가위로 자르고 있었다고 한다. 김씨는 “이들은 스스로 중국인이라고 밝혔고, 자기들끼리 대화할 때 중국어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김씨가 철거를 저지하자, 이들은 어눌한 한국말로 ‘남의 나라 일에 신경 쓰지 마라’ ‘홍콩 시민들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의 행동은 애국(愛國)’이라는 등 얘기를 했다고 한다. 김씨는 현수막 철거를 두고 이들과 5분여 동안 언쟁을 벌였으나, 결국 현수막 철거를 막지 못했다.
 
지난달 24일 자신을 중국인이라 밝힌 이들이 서울 연세대학교 교내에서 홍콩 지지 현수막을 철거하는 모습. [사진 연세대 학생 측 제공]

지난달 24일 자신을 중국인이라 밝힌 이들이 서울 연세대학교 교내에서 홍콩 지지 현수막을 철거하는 모습. [사진 연세대 학생 측 제공]

"한국이 간섭 말라" vs "인권과 표현의 문제"

최근 민주화 요구를 둘러싼 홍콩과 중국 간의 갈등이 우리나라 대학가로 번지고 있다. 특히 연세대에서는 최근 현수막 철거 사건을 두고 양국 학생들 사이 논쟁이 활발하다.
 
지난 4일 연세대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현수막 사진과 함께 “중국어 하던 남성분들이 현수막을 뜯고 버리는 걸 봤다. 대한민국에는 엄연히 표현의 자유가 존재한다”며 이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는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학생이 “그렇다면 반대로 중국인들이 한국의 국토 분단 상황에 대해 현수막을 만들면 그것도 한국인들은 표현의 자유라며 괜찮다고 할 건가”라는 반박 댓글을 달았다.
 
커뮤니티에는 주로 “홍콩 시위는 보편적 인권의 문제”라는 취지의 글이 많지만, “중국 시민들의 입장에선 폭력 시위를 진압하는 게 정당하다고 여겨질 수 있다”, “이번 사태가 중국인에 대한 혐오로 번지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홍콩 연대 시위도 방해…'한·중 갈등'으로 번져

지난 2일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열린 홍콩 연대집회에서 중국인들이 시위대를 둘러싸고 있다. [사진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지난 2일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열린 홍콩 연대집회에서 중국인들이 시위대를 둘러싸고 있다. [사진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비슷한 상황은 서울 시내 곳곳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2일 홍콩 지지 활동가 및 단체들은 서울 마포구와 용산구 일대에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내용의 메모지를 수십장 붙였다. 하지만 메모지들은 며칠 만에 떼어졌고, 그 자리에는 ‘하나의 중국’ ‘홍콩은 중국 땅’ 등의 문구가 쓰인 종이가 대신 붙여졌다.
 
홍콩 관련 집회에 일부 중국인들이 난입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2일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홍콩 민주화 지지 모임’ 주최로 열린 ‘홍콩 시민을 위한 연대집회’에서는 중국인 20~30명이 휴대전화 화면에 오성홍기를 띄운 채 시위대를 에워싸고 중국 국가를 불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제지한 뒤에야 중국인들은 물러났다. 홍콩 시위 단체들은 앞으로도 시위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방침이어서, 이를 둘러싼 국내 거주 중국인들과의 갈등은 한동안 잦아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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