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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외고 79곳 모두 없앤다는 文정부···강남·목동만 웃는다

중앙일보 2019.11.07 15:52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와 학부모연합회 관계자들이 7일 오후 서울 중구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와 학부모연합회 관계자들이 7일 오후 서울 중구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사고 폐지는 공정성을 가장한 획일적인 평등이자 교육의 퇴행이다. 내년 총선의 득실만 의식한 '교육 폭거'다"(김철경 대광고 교장)

"강북의 공교육을 고사시키고 강남 사교육의 배를 불리는 최악의 정책이다. 학부모의 간절한 외침을 고려 않아 답답하고 분하다"(전수아 자사고학부모연합회장)

 
7일 문재인 정부로부터 '2025년 일반고 전환'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전국의 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와 학부모가 반발하고 있다. 이날 오후 서울 이화여고 대강당에서 서울자사고교장연합(자교연) 등은 교육부가 발표한 '고교서열화 해소방안'에 대해 성토했다.
 

자사고·외고 "교육 포퓰리즘" 성토

오세목 전국자사고공동체연합회장은 "엄연히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은 국민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데도 5년짜리 단임 정권이 입맛대로 학교를 바꾸려 한다"며 "이같은 무소불위의 독재적 발상을 법적 대응 등을 통해 총력 저지할 것"이라고 성토했다.
 
교육부 계획대로라면 5년 뒤 일반고로 전환될 이들 학교는 "국가가 약속을 뒤집은 셈"이라고 분노했다. 정영우 용인외대부고 교장은 "우리 학교는 설립 단계부터 '전국에서 학생을 모집해 수월성 교육을 하겠다'는 국가와의 약속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설립자의 재산으로 일군 학교를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없애려 한다"고 비판했다.  
 
'교육 포퓰리즘'이란 비판도 나왔다. 수도권 소재 사립 외고의 교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제감각과 인문학적 소양이 갈수록 강조되는데 외고·국제고를 폐지하겠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 백년대계라는 교육정책을 여론에 따라 뒤바꾸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며 주장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조국 자녀 입시 의혹에 단계적 전환→일괄 폐지

앞서 이날 교육부는 현재 초등 4학년이 고교에 입학하는 2025년에 맞춰 이들 학교를 모두 일반고로 전환하는 방안을 확정·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안에 초·중등교육법의 시행령을 고쳐 자사고·외고·국제고의 근거 조항을 삭제한다. 5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모든 자사고·외고를 일반고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부정 의혹 이후 문 대통령은 대입 공정성 제고와 함께 '고교 서열화 해소'를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출범 초기 밝혔던 '단계적 전환(학교별 평가→탈락 시 일반고)' 대신 일괄 폐지로 '유턴'했다.
 
이날 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그동안 자사고·외고·국제고로 유형화된 고교체제는 설립 취지와 달리 학교 간 서열화를 만들고 사교육을 심화시키는 등 불평등을 유발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고 밝혔다. 이들 학교가 설립 취지와 달리 입시교육에 치우쳤고,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입시 부담이 커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키운다는 비판이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교육감들이 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자율형사립고,특수목적고 폐지 등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 발표를 마친뒤 손을 잡고 있다. 왼쪽부터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장희국 광주시교육감, 최교진 세종시교육감, 유 부총리,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초희연 서울시교육감. [뉴스1]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교육감들이 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자율형사립고,특수목적고 폐지 등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 발표를 마친뒤 손을 잡고 있다. 왼쪽부터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장희국 광주시교육감, 최교진 세종시교육감, 유 부총리,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초희연 서울시교육감. [뉴스1]

유 부총리는 "2025학년 고교학점제 시행에 맞춰 일반고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미래형 대입제도를 마련해 고교 교육을 획기적으로 혁신하겠다"고도 밝혔다.
 

진보교육감들 "제2의 고교평준화" 

시행령 개정을 통한 일괄 전환은 진보교육감과 전교조 등 진보교육계의 요구사항이었다. 올해 부산 해운대고나 서울 자사고들의 재지정 평가 과정에서 보듯, 단계적 전환은 '평가→탈락→소송→ 법원 가처분 결정(지위 유지)'으로 이어져 반발이 심하고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주장이었다.  
 
이날 유 부총리와 함께 기자회견장에 나온 이재정 경기교육감 등 교육감 5명은 "70년대 학교혁신이 일어날 때 평준화 교육개혁이 있었다. 평준화는 고교서열화와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부의 과감한 정책"이라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교육부는 "2025년 일괄 전환 예고로 학교현장의 혼란을 줄이고, 일반고를 강화할 수 있는 준비 기간도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자사고·외고 2024년까지 신입생 모집

이날로 전국 자사고 42곳, 외고·국제고 37곳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셈이다. 2024년까지 현재 학교 지위를 유지하고 신입생도 뽑는다. 2025년부터 일반고로서 신입생을 받게 된다. 단 올해 평가에서 탈락한 뒤 법정투쟁 중인 자사고는 법원 판결에 따라 2025년 전에라도 지위를 잃을 수 있다.
 
교육부는 일반고로 전환된 뒤에도 기존 교명을 쓸 수 있고, 외국어 등 특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25년 이전에 스스로 일반고로 전환하는 학교는 3년간 10억원을 지원받는다.
전국 외국어고·국제고·자사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전국 외국어고·국제고·자사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민족사관고·전주상산고·포항제철고 등 전국에서 신입생을 뽑던 자사고(옛 자립형사립고)도 일반고로 전환되며, 현행 전국 모집 대신 광역 모집(시·도)으로 변경된다.
 
'조국발 교육개혁'의 불똥은 양양고·한일고·공주사대부고·안동풍산고·거창고·함양고 등 전국 모집을 하던 지역 일반고(49곳)에도 튀었다. 이들도 2025년 이후엔 관할 교육청의 평준화 여부에 따라 시·도나 해당 학군 내에서만 지원할 수 있다. 김성근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은 "과학고·영재학교는 존치하되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비판을 받는 입시를 대폭 개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반고 고교학점제에 2조 이상 투입

자사고·외고의 폐지 시점으로 잡은 2025년은 교육부가 전국 고교에 고교학점제를 전면 실시하는 해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를 통해 자사고·특목고에 의지했던 '학교 단위의 수월성 교육' 대신 '학교 내 수월성 교육'으로 전환한다는 구상이다.  
 
고교학점제는 대학처럼 고교생도 진로·수준에 맞게 과목을 선택하는 제도다. 이를 위해 일반고에서 과학·수학·어학 등 전문교과를 운영하고, 기존 일반고와 일반고로 전환하는 자사고·외고와의 공동교육을 강화한다는 게 교육부의 계획이다. 
고교학점제 운영체계안.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고교학점제 운영체계안.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소수 학생을 위한 '소인수 과목', 인공지능(AI) 등 신산업 과목도 늘리겠다고 했다. 대도시와 달리 다른 학교와의 연계가 어려운 농어촌 일반고엔 순회강사 강의나 원격강의를 활성화한다.
 

자사고·외고 '생존 가능성'도 제기

실현 가능성을 놓고 교육계는 의견이 분분했다.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시점(2025년)은 다음 대통령의 임기다. 2022년 대선 이후 정권의 향배에 따라 시행령 재개정을 통해 번복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사고와 사립 외고·국제고의 반발도 변수다. 교육부의 시행령 개정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할 경우 누가 승자가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지난 4월 헌법재판소는 자사고 불합격자의 일반고 중복 지원을 막으려던 교육부의 시행령 개정에 '학교선택권을 침해한다'고 위헌 결정을 내린 적 있다. 
 
예산 부담도 문제다. 유 부총리는 "인공지능(AI) 등 신산업 과목 강사를 양성하고 학교 공간을 증설하는 데 5년간 2조원 이상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는 별도로 학생 등록금에 의존하던 자사고와 사립 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면 무상교육 정책에 따라 국가가 인건비·운영비 등을 지원해야 한다.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자사고 등이 청구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80조 1항 등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사건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자사고 등이 청구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80조 1항 등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사건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예산정책처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자사고 42곳을 일반고로 전환했을 때 최초 5개년 동안 최소 7703억원이 필요하다. 사립 외고·국제고(17곳)을 지원할 금액까지 포함하면 1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교육부가 대안으로 여기는 고교학점제의 실현 여부에도 의문이 이어진다. 한국교총 조성철 대변인은 "다양한 학교 수요를 흡수할 만큼 다양한 과목을 제공하려면 그만큼 교사와 공간이 더 있어야 할 뿐 아니라 학교·교사의 충분한 준비도 필수적인데 현장에선 벌써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다.
 
오히려 학점제를 계기로 강남과 강북, 대도시와 농어촌 등 일반고의 지역 격차가 커질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조 대변인은 "뚜렷한 비전과 방안 없이 무작정 시행한다면 흉내 내기에 그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 [연합뉴스]

"정시 확대와 맞물려 강남 쏠림"

정부의 정시 확대 방침과 맞물려 강남·목동 등 이른바 '교육특구' 일반고의 인기가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의 임성호 대표는 "학부모들은 자사고·외고가 사라져도 일반고 간 격차가 줄어들 거라 믿지 않고 있다. 당장 초등학생 4학년 자녀를 둔 부모들은 좋은 학군에 이사해야 하나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봤다.  
 
반면 초5~중3 사이엔 자사고·외고 인기가 높아질 것으로 입시전문가들은 예측했다. 정부가 2024년까지 존속을 보장한 이상 큰 혼란 없이 자사고‧외고를 졸업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학부모 백모(42‧서울 노원구)씨는 다음달 고입에서 중3 아들을 자사고인 신일고에 지원하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 자사고들이 재지정평가에서 무더기 탈락하는 걸 보고 고민했는데, 정부가 당분간 유지하겠다고 하고 자사고에 유리한 정시도 확대한다고 하니 자사고에 보내는 게 여러모로 유리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서울 강북 등 교육여건이 어려운 지역을 대상으로 일반고 전환 자사고·특목고가 포함된 가칭 '고교교육 특별지구'를 구축해 우수 교육 인프라를 지역 내 학교가 공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천인성·박형수·전민희 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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