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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 올라갈수록 선생님 아닌 친구·선배가 때려…성폭행 피해도

중앙일보 2019.11.07 13:44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YWCA 대강당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학생선수 기숙사 실태조사 결과보고 토론회가 열렸다[연합뉴스]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YWCA 대강당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학생선수 기숙사 실태조사 결과보고 토론회가 열렸다[연합뉴스]

학생선수 (성)폭행 가해자 대부분은 코치·감독들이었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선배·동료 가해 비율도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선수 절반 이상이 수업을 빼먹고 운동하기도 했다.  

 
7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담은 학생선수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초·중·고 학생선수 6만 3211명 중 응답자 5만7557명 대상으로 실태를 파악했다.    
인권위 조사결과 학생선수 1만9687명이 폭력을 경험했다. 언어(15.7%)·신체(14.7%)·성폭행(3.8%) 등 폭력 피해 유형도 다양했다.
유형별 폭력 경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유형별 폭력 경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폭행은 대부분 코치·감독…동료 간 폭력도 증가  

코치·감독 등이 때린 경우가 75.5%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런 신체폭력을 경험한 학생 비율도 초등(12.9%)→중등(15.1%)→고등(16.2%) 순으로 늘었다. 언어폭력도 대부분 코치·감독이 가해자였다.  
 
다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지도자 대신 동료 간 폭력이 늘었다. 지도자 가해 비율은 초·중·고를 거치며 75%→65.3%→46.7%로 점점 줄어든 반면, 선배나 또래 선수 가해 비율이 높아졌다. ‘선배 선수가 신체폭력 가해자’라고 답한 비율은 초등선수는 7~17% 수준에 그쳤지만. 중·고등 선수 각각 29.3%, 36.8%였다.   
 
조사에 참여한 한 중학교 남자 양궁선수는 “숙소에서 심할 때는 그 충전기 선이랑 뭐 그런 걸로 감아서 팔이나 가슴이나 때리고 딱 티(구타의 흔적)가 나면 긴 팔 입으라고 하기도 하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초등선수들은 이런 지도자 등의 폭력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기도 했다. 신체폭력을 당했을 때 어떤 감정이었는지 묻자 초등선수 38.7%가 ‘폭력을 당하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답했다. 이렇게 답한 중·고등 선수 비율은 각각 21.4%, 16.1%였다. 조사에 참여한 초등생 남자 배구선수는 “미워서 때리는 것 아니니까 맞아도 괜찮아요. 아니 그냥 운동하면서 맞는 거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성폭행당해 정신적 고통, 절반 이상 적극 대처 못 해

성폭행 피해 학생들은 학생선수는 약 3.8%인 2212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행 피해를 입은 초등 선수들은 정서적 피해를 겪었고, 중·고등선수들은 ‘운동포기’를 고민했다. 피해 초등선수 중 23.7%가 ‘무섭고 화가 남’이라고 답했다. 또 ‘자존감이 낮아짐(21%)’이라고 답한 비율도 높았다. 반면 피해 중·고등선수들은 ‘운동하기 싫어짐’이라고 답한 비율이 각각 24.2%, 24.8%로 가장 높았다. 
 
조사에 참여한 여고 유도선수들은 "감독이 일부러 터치를 세게 해서 속옷까지 잡는다”“남자코치가 다리 사이로 손을 넣어 바짓가랑이를 잡아 수치스럽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밖에 중·고등선수 20여명은 성관계 요구나 강간을 당하기도 했다.
초등선수 성폭력 경험시 감정.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초등선수 성폭력 경험시 감정.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성폭행을 당한 초등선수 피해자들은 보통 소극적 대응에 그쳤다. 응답자의 23.5%는 ‘괜찮은 척 웃고 넘어간다’고 답했다. 강하게 거절 의사를 밝힌 비율(24.2%)와 비슷했다. 이렇게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이유를 묻자 피해 초등생의 23.7%가 ‘행위의 정도가 심각지 않다고 생각되어서’라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인권위는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훈련상황’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해석했다. 이밖에 종목별 인간관계 고려(21.2%), 보복두려움(13.4%) 등의 답변도 나왔다.
 
중·고등 선수 각각 절반 이상인 52.3%,55.7%의 응답자들도 성폭행 피해를 입고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함’‘괜찮은 척함’‘얼굴을 찡그리거나 싫은 내색을 함’ 등의 소극적 대응을 했다고 답했다.  
중·고등선수 성폭력 경험시 대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중·고등선수 성폭력 경험시 대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한편 학생선수의 학습권 침해 비율도 높았다. 수업에 빠지고 운동하는 초·중·고 학생선수 비율은 각각 24.9%,14.4%, 46.5%로 나타났다. 고등선수가 46.5%로 가장 높았고 시합기간에는 58.6%가 수업을 빼먹었다. 이밖에 초·중·고 선수 70% 이상이 ‘주말·휴일에 운동을 한다’고 답했다. 또 고등선수는 83.1%가 주말·휴일 운동을 한다고 답했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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