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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도 단풍 많은데, 왜 한국 단풍이 그리울까

중앙일보 2019.11.07 07:00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33)

김훈의 『연필로 쓰기』 중에 '별아 내 가슴에'라는 글이 있다. 대가야의 악사 우륵과 가야금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서 조사하다가 가야금의 거장 황병기 선생께 전화해서 자료를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별'이라고 했다는 이야기. 그 말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우륵의 고향이며 대가야의 고토인 경북 고령의 별을 보러 간 이야기가 나온다.
 
이 글을 읽으며 나는 무슨 영문인지 책을 덮고 '외국살이의 고독과 외로움'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가야금의 거장 황병기가 본 별은 한국의 하늘에 떠 있는 별이다. 우륵이 본 별은 대가야의 별이었고 신라의 별이었다.
 
과연 우륵이 신라에 귀순한 후에 바라보았던 별이 대가야의 별과 같았을까? 나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사람이 발을 디디고 사는 곳은 땅이다. 그 땅 위에 하늘이 있고 별도 뜬다. 아무리 하늘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 해도, 아프리카 대륙의 하늘에서 대가야의 선율을 떠올리는 일은 드물 것이다. 우륵과 황병기가 본 별은 같으면서도 다르다고 조심히 생각한다.
 
김훈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별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현재의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별이 너무나도 고맙다. 한국 하늘에 떠 있는 별과 일본 하늘에 뜨는 별은 같다. 밟고 서 있는 땅이 다를 뿐이다. [사진 pxhere]

김훈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별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현재의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별이 너무나도 고맙다. 한국 하늘에 떠 있는 별과 일본 하늘에 뜨는 별은 같다. 밟고 서 있는 땅이 다를 뿐이다. [사진 pxhere]

 
나의 내면 깊은 곳에는 '외국살이'에서 오는 고독이 있다. 하늘을 보며 '이 하늘은 한국으로 이어진다. 하늘은 하나야'라며 마음을 달래보지만, 한국의 하늘 아래서 살고 있지 않음을 재인식할 뿐이다. 나고 자란 곳의 풍토, 언어, 문화, 말을 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통하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을 놓고 홀연 단신 외국으로 떠난 사람은 궁극적으로 고독하지 않나 싶다.
 
그것이 사랑을 위해서건,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선택한 길이건, 떠난 사람의 삶에는 고독이 깔려있다. 그것이 가끔 뜬금없이 훅하고 튀어나온다. 사람은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혼자라지만, 어디에 있는가는 중요하다. 죽어서 어디에 있고 싶은가를 생각해 보면 확실해진다. 아무리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도 죽어서 타국의 땅에 묻히고 싶다는 사람은 드물 것이니 말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한옥 지붕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파란 하늘과 한옥, 곱게 물든 단풍과 한옥, 하얗게 눈 덮인 한옥 지붕, 눈이 소복이 쌓인 장독대…. 정겹고 그리워진다. 성장기 대부분을 초가집에서 보냈는데도 한옥이 그리워지는 것은 한국인에게 이어져 온 유전자의 조화가 아닐까 싶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기와집은 제주시에 있는 '관덕정'이 전부이다. 무술 훈련을 했던 곳이라는데, 그 관덕정이 그리울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한옥이 있는 풍경이 그리워진다. 어쩌면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현실 속의 고국이 아니라 유전자가 기억하는 풍경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현실과 상관도 없고 추억에도 없는 것이 그리워지니 말이다.
 
가을이 되면 한국의 단풍 소식이 들려온다. 일본에도 명소들이 많으니 보러 가면 될 것을 한국의 단풍이 그리워진다. 애초에 한국에서 단풍을 보러 다닌 적도 없으면서 한국의 단풍이 보고파 진다. 알록달록한 단풍놀이객들의 옷차림이 단풍처럼 곱다. 그 등산복 차림을 보고 뭐라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내 눈에는 그것조차도 좋아 보인다.
 
한국의 된장국은 구수하고 퍼져 나가는 느낌이 있는데, 일본의 된장국은 구수하기는 하지만 깍쟁이처럼 깔끔하다. 일본 생활 30년이 다가오는 지금도 나는 한국 된장국을 좋아한다. [사진 pixabay]

한국의 된장국은 구수하고 퍼져 나가는 느낌이 있는데, 일본의 된장국은 구수하기는 하지만 깍쟁이처럼 깔끔하다. 일본 생활 30년이 다가오는 지금도 나는 한국 된장국을 좋아한다. [사진 pixabay]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우리 집 식탁에 한국 된장국은 오르지 않는다. 극히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한국의 된장국은 구수하고 퍼져 나가는 느낌이 있는데, 일본의 된장국은 구수하기는 하지만 깍쟁이처럼 깔끔하다. 그리고 딱 그날 먹을 만큼만 끓여야 한다. 남겨서 데워 먹으면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오래 끓이지도 말아야 한다. 건더기가 다 익은 후 마지막에 된장을 풀어 넣어서 끓어오르기 전에 불을 꺼야 맛있다. 이 얼마나 까탈스러운 조리법인가. 일본 생활 30년이 다가오는 지금도 나는 한국 된장국을 좋아한다. 다음 날 데워 먹어도 맛이 나는 한국 된장국이 더 좋다. 그런데도 만들어 먹지 않는 것은 가족을 우선해 온 이유도 있지만 게으름 때문이기도 하다.
 
단, 미역 된장국에 한해서는 일본 된장에 만족한다. 미끄러지는 미역의 식감과 어울린다고나 할까. 애초에 한국에서는 미역국 하면 간장이나 소금으로 간을 하니 기억에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는 된장국 하면 우선 미역을 떠올린다. 이 또한 문화의 차이일 것이다. 뜨끈뜨끈한 국물이 고파지는 계절이다. 한국 된장을 사서 배춧국을 끓여 먹어야겠다.
 
김훈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별'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현재의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별이 너무나도 고맙다. 한국 하늘에 떠 있는 별과 일본 하늘에 뜨는 별은 같다. 밟고 서 있는 땅이 다를 뿐이다. 그 땅이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한다는 게 문제이긴 하다.
 
그래서 나의 삶은 '외국살이'인 것이고, 종종 미아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끈 끊어진 풍선처럼 이리저리 흔들린다. 흔들리면서 올려다보는 밤하늘의 별은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같은 별인데, 한국에서 보는 별이 아님이 쓸쓸해진다. 한국의 내 사람들도 저 별을 보고 있었으면 한다.
 
한일출판번역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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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심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필진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 일본인과 결혼해 도쿄에 살림을 꾸린지 약 25년. 일본으로의 이주는 성공적이라고 자부한다. 한일자막 번역가이자 작가이며,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다. ‘한일 양국의 풀뿌리 외교관’이라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보다도 더 비빌 언덕이 없는 일본에서 그 사회에 젖어 들고, 내 터전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과 같은 이야기가 독자의 삶에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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