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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의 문화탐색] 고려형 헬멧 디자인에 관한 고찰

중앙일보 2019.11.07 00:12 종합 27면 지면보기
최범 디자인 평론가

최범 디자인 평론가

“사발면을 엎어놓은 것 같다.”
 

헬멧 시초는 ‘아드리앙’
‘프리츠 헬멧’으로 진화
장식성의 변증법적 지양
역사의 단순 기표는 키치

육군 헌병의 새 헬멧 디자인을 보고 말들이 많다. 원래 무엇을 바꾸는 일에는 논란이 있는 법이다. 국방 비리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이 또한 불신사회 대한민국이 짊어지고 가야 할 원죄일 것이다. 육군이 헌병 행사복(예복)의 헬멧을 고려시대 투구형으로 바꾼다고 한다. 웬 뜬금없는 고려시대냐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를 단순한 시대착오나 취향의 차원보다는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관점에서 논평해볼까 한다. 디자인 역사적 관점에서 말이다.
 
현대식 헬멧을 처음 사용한 것은 1차대전때의 프랑스군이다. 케피(kepi)라고 부르는 천으로 된 모자를 착용하던 프랑스군은 전쟁 초기의 포격전에서 포탄 파편에 의한 두부(頭部) 부상자가 많이 발생하자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경기병(輕騎兵)의 투구를 응용한 철모를 채택했다. 이것이 바로 ‘아드리앙(Adrian) 헬멧’이다. 이는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어 벨기에군·이탈리아군·러시아군, 심지어 바다 건너 일본군까지 사용했다. 이에 대항하여 독일군은 귀와 관자노리 부분을 덮는 ‘슈탈헬름(Stahlhelm·독일어로 철모라는 뜻)’을 개발한다.
 
독일군의 상징이라고도 할 만큼 유명한 이 철모를 연합군은 ‘프리츠 헬멧’이라고 불렀는데, ‘프리츠(Fritz)’는 흔한 독일 이름으로서 독일 병사의 별명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시대를 건너뛰어 현재 미군이 사용하는 케블라 헬멧도 바로 저 독일군의 슈탈헬름 디자인을 흉내낸 것이다. 역시 ‘프리츠 헬멧’이라고 불린다. 이 최신판 프리츠 헬멧은 놀라운 히트작이어서 아마 현재 지구상의 거의 모든 군대가 채택하고 있지 않나 싶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한국군(일부 지급)은 물론이고 중국군, 심지어 최근 북한군도 이 스타일의 헬멧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프랑스의 ‘아드리앙 헬멧’, 독일의 ‘슈탈헬름’, 한국군 헌병의 새 헬멧으로 채택 예정인 고려형 헬멧, 미국의 일명 ‘프리츠 헬멧’. [뉴시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프랑스의 ‘아드리앙 헬멧’, 독일의 ‘슈탈헬름’, 한국군 헌병의 새 헬멧으로 채택 예정인 고려형 헬멧, 미국의 일명 ‘프리츠 헬멧’. [뉴시스]

이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은 현대판 투구에도 디자인 역사의 일반적인 패러다임이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즉, 장식미술(아드리앙 헬멧)로부터 모던 디자인(슈탈헬름)을 거쳐 포스트모던 디자인(미국판 프리츠 헬멧)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정수리와 앞부분에 장식을 붙인 아드리앙 헬멧에서 여전히 장식미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면, 독일군의 슈탈헬름은 완벽한 기능주의 디자인으로서 모더니즘의 정수라 할 만하다. 그리고 미군의 ‘프리츠 헬멧’은 과거의 형식(슈탈헬름)을 재도입하는 역사주의적 접근을 하면서도 현재적인 응용을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성을 잘 보여준다.
 
그러면 고려형 투구 디자인을 적용했다는 한국의 새 헌병 헬멧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는 일단 장식적이고 역사주의적이다. 이것도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로 분류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오늘날의 포스트모던한 상황에서는 복고도 하나의 조형 언어로서의 엄연히 시민권을 가진다. 그런 점에서 과거형이라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행사용이라는 것은 현재적 실용성으로부터는 자유로운 대신에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역사적 형태가 광범위하게 허용되는 편이다. 대체로 현재의 예복은 한 시대 이전의 정복인 경우가 많다. 한국이나 미국의 사관생도 예복이 18~19세기의 군복 스타일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장식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은 격세 유전적인 유사성을 보이지만 또 거기에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포스트모던은 과거 양식의 단순 반복이 아니라 모던에 의해 정리된 장식미술을 역사적으로 호출하는 것이다. 모더니즘을 통과한 장식은 더 이상 과거의 장식미술이 아니다. 그래서 르코르뷔지에는 “오늘날의 장식미술은 장식을 갖지 않는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변증법적 지양(Aufheben)이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서구의 포스트모던과 한국 디자인의 역사주의를 구분하는 변별점이다. 디자인의 장식성이 역사적으로 지양된 것이 아니라 역사의 단순한 기표가 되어버림으로써 동시대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시대착오적인 키치(Kitsch)로 전락해버리기 때문이다. 고려형 투구가 시대를 뛰어넘어 헌병의 헬멧이 될 수 있는 것도 그러한 논리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한국 사관생도의 예복이 대학 응원단의 유니폼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은 일이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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