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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반정부 시위대는 왜 옆나라 이란의 국기를 불태우나

중앙일보 2019.11.06 05:00

“이라크를 자유롭게” “이란은 당장 나가라!” (뉴욕타임스)

 
이라크가 두 달째 이어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수도 바그다드와 남부 시아파 지역에서 시민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반정부 구호를 외치고 있으며, 휴업과 파업도 늘고 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아델 압둘 마흐디 이라크 총리가 조건부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시위대 규모는 점점 더 커지는 모양새다.  
 
바그다드에서 이라크 반정부 시위대가 이란 국기를 불태우고 있다. [AP=연합뉴스]

바그다드에서 이라크 반정부 시위대가 이란 국기를 불태우고 있다. [AP=연합뉴스]

  
시위의 원인은 민생고다. 꺾일 줄 모르는 실업률, 엉망인 공공서비스,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에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정부가 폭력적으로 진압한 탓에 250명 이상이 사망하고 8000명 이상이 다쳤다. 포린폴리시는 “이라크 인구(4000만명)의 60%를 차지하는 25세 이하 젊은층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한다”며 “석유가 펑펑 쏟아지는데도 청년 실업률이 25%에 달하고 국민 5명 중 1명이 빈곤에 허덕인다는 현실에 폭발한 것”이라 전한다.
 
눈여겨볼 것은, 시위대의 분노가 바로 이웃 국가 이란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은 시위 현장에서 ‘반(反) 미국’ ‘반(反) 이스라엘’ ‘반(反) 이란’ 구호를 외치는 이들이 혼재된 가운데, 이란의 내정간섭에 항의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성난 시민들은 이란 국기를 불태우고 있고, 급기야 카르발라(시아파 성지인 이라크의 도시)에서는 이란 영사관이 시위대의 공격을 받았다. 영사관에는 이란 국기 대신 이라크 국기가 내걸렸다. 
 
중동의 또 다른 국가 레바논도 마찬가지다. 격렬한 반정부 시위에 사드 하리리 총리가 사퇴했지만 분노는 멈추지 않고 있다. 이곳 시민들 역시 이란에 대한 반감이 높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이란과 연결돼 있다” 비난

분노한 젊은층을 중심으로 두 달째 이어지고 있는 이라크 반정부 시위 [AP=연합뉴스]

분노한 젊은층을 중심으로 두 달째 이어지고 있는 이라크 반정부 시위 [AP=연합뉴스]

이슬람교 신자가 대부분인 중동은 크게 수니파를 믿는 국가와 시아파를 믿는 국가로 나뉜다. 한 국가 내에서도 종파가 충돌하면 내전이 일어난다. 수니파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끌고, 시아파 맹주는 이란이다. 중동 정세를 간단하게 정리하긴 어렵지만 사우디와 이란 두 대국을 중심으로 수니파와 시아파 국가ㆍ세력이 나뉘어 으르렁거리는 형국이라 볼 수 있다. ‘금세기 최악의 참사’로 불리며 수년째 진행 중인 예멘 내전이 대표적인 예다. 단순한 내전을 넘어 중동의 강대국인 사우디(수니파 예멘 정부군)와 이란(시아파 후티 반군)의 대리전이 된 것이다.
 
그래서 사우디와 이란이 이웃 국가들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사우디는 요르단ㆍ바레인ㆍ이집트ㆍ아랍에미리트 등과 돈독하다. 이란은 알아사드 대통령의 시리아 정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과 밀접한 관계다.  
 
하리리 총리 사퇴 발표에도 계속되는 레바논 시위 [AP=연합뉴스]

하리리 총리 사퇴 발표에도 계속되는 레바논 시위 [AP=연합뉴스]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10여년간 혼란을 겪은 이라크 역시 옆 나라 이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NYT는 “이라크인들은 100년 전엔 영국에, 2000년대 초에는 미국에 저항했지만 지금은 이란이다”라며 “2009년 미국의 퇴각 이후 친이란 세력이 빠르게 세를 불렸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란은 2014년 이라크가 IS(이슬람국가)로 골머리를 앓을 때 6만명 규모의 시아파 민병대를 전폭 지원하며 영향력을 강화했다.
 
포린폴리시는 “이라크인들은 이란을 실질적 지배 세력으로 보고 있다”며 “시위대는 테헤란(이란의 수도)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라크를 착취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 부처는 물론 대부분 민간 시설이 이란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NYT) “이란은 자국의 ‘정치 시스템’을 이라크에 주입하려 하며 이라크 정치인들의 부패는 이란과 긴밀히 연결돼있다”(AP통신)는 분노다. 
 

이란은 미국 탓, 미국은 이란 탓

미국 대사관 점거 40주년을 맞아 이란 테헤란에서 4일 열린 반미 시위 [EPA=연합뉴스]

미국 대사관 점거 40주년을 맞아 이란 테헤란에서 4일 열린 반미 시위 [EPA=연합뉴스]

 
이란 정부는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다. 이라크에서 친이란 세력이 힘을 잃으면 중동 전체에서 힘이 빠질 수 있어서다. 지난해처럼 자국 내 반정부 시위가 일어날 가능성도 크다. “이란은 이번 시위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있다”(AP통신)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은 미국 매체들이 반이란 시위대만 부각해 편파적으로 보도한다고 비난하며 방어에 나섰다. 이란 언론은 "미국 CIA와 이스라엘 모사드가 반정부 성향 이라크인들을 통해 시위대를 자극하고 있다"(이란뉴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이라크와 레바논 정부는 미국과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야기한 혼란을 조속히 치유하기 바란다”고 발표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미국 탓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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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미국 언론은 르포 기사 등을 통해 반이란 시위에 집중한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 재무부는 지난달 30일 이란 혁명수비대, 레바논 헤즈볼라와 관련된 기업과 은행, 개인 등을 제재한다고 발표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부 장관은 “이란이 중동에서 부정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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