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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보수의 품격은 자기희생이다

중앙일보 2019.11.06 00:44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옥스퍼드대학에서 가장 숙연해지는 순간은 칼리지 입구 벽면을 볼 때다. 거기엔 촘촘히 새겨진 수많은 이름이 중세식 건물의 입구를 지키며 불멸의 빛을 발하고 있다. 칼리지 학장이나 위대한 석학이 아니라 1,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학생과 졸업생 이름이다. 코르퍼스크리스티 칼리지는 18년 동안 전체 입학생을 합한 만큼의 동문들이 1차 대전에 참전해서 4년 반 동안의 입학생 숫자만큼 전사했다고 밝힌다. 싸울 수 있는 거의 모든 자들이 참전했고 그 중 25%가 목숨을 바쳤다는 뜻이다. 당시 30여개의 칼리지가 다 비슷했다. 그 때 옥스브리지(Oxbridge) 학생 대부분은 사립학교 출신의 상류층 자제였다. 잠들었으나 지금도 말하는 그들은 영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자긍심이자 상징이다.
 

자기희생 없인 사회통합 어렵고
통합 없인 개혁과 성장도 어려워
인적·정책 변혁으로 보수 쇄신해
이 분열의 위기에서 나라 구해야

자기희생 없이는 보수의 가치를 지킬 수 없다. 근면, 절제, 공익은 보수가 강조하는 덕목이다. 하지만 이는 인간 본능이 수시로 거부하는 성품이기도 하다. 따라서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득권 계층이 자신은 빼고 서민에게만 이렇게 살도록 요구하면 사회의 건강성은 사라진다. 보수가 중시하는 자유가 마치 ‘사회적 의무의 최소화, 개인적 이익의 극대화’를 의미하는 양 행동하면 사회 갈등은 심해진다. 잔뜩 기울어진 운동장은 그냥 둔 채 약자에게 스스로 기어오르라고 다그치면 불공정에 대한 불만이 폭증한다. 이런 사이비 보수는 나라를 망친다.
 
문재인 정부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소득주도성장이란 지극히 아마추어 방식으로 고쳐보려 했다. 그러나 전문가의 경고대로 오히려 성장은 멈추고 불평등은 악화됐다. 경제학 교과서에 실패 사례로 기록돼야 마땅한 실험이다. 정부는 노조의 권고는 감사히 받되 전문가의 조언에는 귀를 닫았다. 최저임금 인상과 일자리안정자금은 성장은커녕 분배 개선에도 실패했다. 우리 사회의 빈곤층은 이 정책의 수혜 대상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조세 정책이 소득불평등을 완화하는 정도가 가장 낮은 그룹에 속한다. 엉터리 정책으로 조세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마비되어 빈곤층보다 그 이상의 계층에게 정부 돈을 뿌려왔기 때문이다.
 
보수는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자기희생 없인 정권을 잡을 수 없고 설혹 잡는다 해도 이전 보수정부의 성과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우리 경제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노동시장과 기업 생태계 개혁이다. 노동과 기업 부문을 더욱 유연하되 공정하게, 투명하되 자유롭게 바꾸지 않으면 장기성장률이 올라갈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사회가 통합되고 국민 마음이 하나 돼야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보수와 진보, 그리고 이익 집단의 충돌 가운데 작은 나사 하나 끼워 넣는 것도 힘들 것이다. 이런 판에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핵심 부문의 개혁은 어불성설이다.
 
자유한국당이 최근 경제를 살리겠다고 내놓은 ‘민부론(民富論)’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정치인부터 시작하는 기득권자의 자기희생이 없다. 그래서 감동도 없다. 예전 보수 정책의 나열에다 4차 산업 관련 약간의 구상이 섞여있을 뿐이다. 소득주도성장보다 이론적으론 낫지만 결국 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1970~80년대가 아니다. 정치는 양극화됐지만 경제는 글로벌화된 매우 위험한 조합에 우리가 살고 있다. 포퓰리즘의 물결이 세계를 뒤덮는 중이다. 이 절박한 시기에 어떻게 양극화를 완화해 사회통합을 이룰지 깊은 고민이 없다. 보수 정당이 취약계층의 소득 및 교육 불평등 문제나 이들의 정치적 보이스를 키울 방안을 고심하는지도 의심스럽다.
 
자유한국당의 민부론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따라 하기다. 그러나 한국 보수는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어야 한다. 『국부론』에서 그는 경제발전을 다루지만 『도덕감정론』에선 사회통합을 강조한다. 또 자기통제와 인애심(仁愛心) 없인 사회통합을 이룰 수 없고, 통합 없이는 경제 발전도 어려움을 설파한다. 그러나 당시 상공인들은 정치인과 유착하여 보호무역을 통해 독과점 지대를 누리고 있었다. 애덤 스미스는 이들을 ‘비열한 독점정신, 야비한 탐욕’의 무리로 비판하며 상류층 기득권의 타파를 주장한다. 한국 보수는 자기통제의 덕을 갖춘 기득권의 개혁자인가, 아니면 민낯 진보처럼 야비한 사익의 추구자인가. 후자라면 민부론은 민폐론이 될 뿐이다.
 
보수의 품격은 자기희생에서 나온다. 이것 없인 보수의 미래는 없고, 한국의 미래도 어둡다. 사이비 보수와 엉터리 진보가 영토를 분할하고 분열적 공존을 유지하는 지금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할 수 없다. 그런데 기껏해야 삭발 정도를 대단한 희생으로 여기는 한국 보수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자기 존재가 공동체에 기쁨과 유익이 되지 못한다면 내려오시라. 자신보다 못한 이웃을 위해 봉사할 마음이 없으면 그만두시라. 나라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내어놓겠다는 소명이 없다면 정치를 떠나시라. 총선을 앞두고 마음 줄 곳을 찾는 국민은 이렇게 외치고 싶을 것이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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