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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에 두번 맞선 이석연은 안다···文정부 '시행령 정치'의 비밀

중앙일보 2019.11.05 05:00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 파동에도 불구하고 2008년 4월 농림식품수산부 장관 고시를 개정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키로 했다가 '촛불' 저항에 맞닥뜨렸다. 진영싸움의 한복판에서 의외의 정부 인사가 뉴스의 중심에 떠올랐다. 이석연 법제처장이었다. 이 처장이 이 대통령과 독대해 “쇠고기 장관 고시는 공론화가 부족한 만큼 무조건 연기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내용보다 형식이 문제다. 식품 위생조건은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만큼 장관 고시가 아니라 국무회의에서 논의되는 대통령령이나 법제처 심사를 받는 부령에 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임 입법의 한계를 벗어나 위헌 소지가 크다”는 게 이 처장의 논리였다.
2008년 8월4일 국회에서 열린 가축전염병예방법 일부개정법률안 개정 특위에 출석한 국무위원들. 왼쪽부터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 김경한 법무부장관, 이석연 법제처장.[중앙포토]

2008년 8월4일 국회에서 열린 가축전염병예방법 일부개정법률안 개정 특위에 출석한 국무위원들. 왼쪽부터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 김경한 법무부장관, 이석연 법제처장.[중앙포토]

 이 처장은 방송법 시행령 개정 문제로 시끄럽던 2009년에 다시 한번 이 대통령과 맞섰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출한 시행령 개정안을 자신의 책상 서랍에 넣고 3개월 넘게 버텼다고 한다. 신문과 대기업의 종합편성채널 진출 요건을 법률이 아닌 시행령으로 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는 그렇게 이명박 정부와 2년 6개월을 함께 했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 "법제처장 인사 코드화로 시행령 통제 무너져"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시행령 정치를 강하게 비판하던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지금의 여권은 다시 시행령에 의존해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시행령 정치란 면에선 ‘역행’이자 ‘내로남불’이다. 변호사로 돌아온 이 전 처장의 의견이 궁금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서울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이야기부터 꺼냈다. 이 처장은 “지금 나와 있는 공수처법 중 하나가 처리되면 시행령 제정을 두고 또 한 번 격렬한 정쟁이 벌어질 게 뻔하다”며 “검찰·경찰·국가정보원의 ‘조직과 운영’은 모두 독립된 법률로 정하는데 지금 나와 있는 공수처법안은 조직·직무·운영에 관한 사항 중 법률로 정해야 마땅한 내용을 시행령에 많이 떠넘기는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처장은 “이런 구조 자체가 헌법과 정부조직법의 원리를 거스른다”며 “부실하고 무책임한 입법이 결국 시행령을 둘러싼 위헌 논란과 정치적 다툼을 낳는 근본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의 행정입법 중 문제가 있다고 본 것들이 있나 
“대통령 직속 위원회들부터 문제다. 대표적인 게 일자리위원회다. 실질적으로 국민의 권리·의무와 관련한 사항을 결정하고 예산을 쓰는데 법률적 근거 없이 시행령(일자리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으로 만들었다. 아예 모법이 없다. 지금 그런 게 많다. 조직법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후반에 좀 생기다가 박근혜 정부 때 늘고 이번 정부 들어 넘쳐나고 있다. 아무런 규정도 없이 만든 청와대 국민청원도 문제다. 국민청원이 들어왔다고 사법부에 검토해보라고 전달하는 상황인데 이 제도의 법적 근거는 헌법·법률·시행령 어디에도 없다. 헌법에선 국민의 청원권 행사는 문서로서만 하도록 돼 있다. 헌법과 청원 법제 전반과 어긋나는 제도다. 국민청원법이라는 걸 만들어서 하던지 했어야 되는 일이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입법-사법-행정 3권으로부터 독립된 공수처라는 개념은 초헌법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오종택 기자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입법-사법-행정 3권으로부터 독립된 공수처라는 개념은 초헌법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오종택 기자

시행령으로 규율하는 범위가 넓어지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기나
“의회 입법 원칙이 깨지고 3권분립이 흔들린다. 공무원들에게 법을 자의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되는 것이다. 행정 재량권 남용 여지가 커지는 것이다. 결국 공무원의 부정부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포괄적으로 시행령에 위임하면 그에 따른 하위법령이 아예 제정되지 않아 구멍이 생기는 부작위에 의한 피해도 생긴다.”
 
어떻게 통제해야 하나
“사실상 행정입법의 유일한 관문은 법제처 심사다. 그래서 법제처는 정부 내 야당 역할을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선 법제처장 인사를 코드화해 법제처 심사가 무력화됐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법제처의 힘은 빠졌지만 최소한 코드인사라고 하긴 어려웠다. 부장판사가 청와대 비서관으로 직행한 것도 모자라 법제처장으로 간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법제처는 행정입법에 대한 사전 심사권 외에 법령에 대한 유권해석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도 남용되고 있다. 지난해 평양선언에 대해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 없다는 해석을 법제처가 내놓은 게 대표적 코드 해석 사례다.”  
 
사후적으로는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통제하는데. 
“헌재에서 규범 자체의 위헌 여부를 판단 받으려면 여러 소송요건(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헌재가 위헌적 시행령을 전부 걸러낼 수는 없다. 법원의 경우도 구체적인 사건에서 재판의 전제가 되는 등의 요건이 맞아야 하고 하게 되더라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법제처의 제 기능 회복이 필요한 이유다.”  
 
이 변호사는 인터뷰 내내 ‘절차’ ‘법치’‘체계’ 등의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러면서 국제그룹 해체사건에 대한 헌재의 결정문의 일부를 외워 읊었다. “인간의 정치적 예지의 산물이라 할 민주주의는 수단 내지 절차의 존중이지 목적만을 제일의(第一義)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적법절차가 무시되는 조치라면 추구하는 목적과 관계없이 공권력의 남용이요, 자의밖에 될 수 없으며 합헌화될 수 없다”는 대목이다. 국제그룹 해체 사건은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맡았던 마지막 사건이었다.이 변호사는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어떤 좋은 정책이라도 헌법에 어긋나는 법률, 법률에 넘어서는 시행령으로 도입되고 방치되면 결국 국가의 기본 틀이 무너져 내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임장혁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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