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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교체, 사업 매각…구광모의 LG 1년, 독해졌다 빨라졌다

중앙일보 2019.11.05 05:00 경제 1면 지면보기

5대그룹 리더십 대변신 ② 구광모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한국 경제가 세찬 비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반도체·자동차·조선·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은 원천 기술을 가진 선진국과 가격경쟁력을 갖춘 후발주자 사이에 '넛 크래커(nut-cracker·낀 처지)가 될 위기에 몰렸다. 북핵, 중동 불안, 미·중 무역분쟁 등 지정학적 위기는 이런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킨다.  

LG화학·LGD 최고경영자 교체
LGD 컨베이어벨트 문화도 대수술
실리콘밸리 가서 직접 인재 채용
“기술이 미래” 틈만 나면 마곡행

수익 안 나는 사업 발빠른 매각
OLED·전기차 배터리에 사활
“사장단, 변화 실행속도 높여라”
이달말 임원 인사 물갈이폭 주목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 총수에겐 선진국 등의 '밑그림'을 받아 사업하던 선대 창업자의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비바람을 헤쳐나가기 위해 주요 그룹 총수는 직접 밑그림을 그리며 변신 몸부림을 하고 있다. 조직 문화부터 사업 방식까지 확 바꾸고 있다. ‘제2의 창업’하는 심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창업자의 2~4세인 대기업 총수의 바뀐 리더십을 소개한다. 


구광모(41) ㈜LG 대표가 국내외 임직원 22만명의 LG를 이끌게 된 지 1년 5개월이 지났다. 재계에선 그 이후 LG가 보인 변화의 모습에 놀라고 있지만, 정작 LG 내부에선 본격적인 변화는 이제 시작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전례 없는 위기에 제대로, 그리고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는 각오로 변화를 가속해주십시오.”

 
지난 9월 구 대표가 사장단 워크숍에서 이런 발언을 하자 LG 안팎에선 여느 총수가 하는 위기 강조 발언과는 다른 무게감으로 받아들였다. 스마트폰 사업을 맡는 LG전자 MC사업본부는 올해 3분기(7~9월)까지 18분기 연속 적자 행진 중이다. LG디스플레이는 순차입금(차입금에서 현금성 자산을 뺀 금액)만 10조591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회사의 연간 이자비용만 3500억원이다.
 
더 큰 위기감은 LG화학의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 LG디스플레이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패널 등 LG의 미래를 짊어질 것으로 예상했던 미래 사업들이 순탄치 않아서 감지된다. LG디스플레이는 저가 LCD 패널 밀어내기를 하는 중국 업체들에 덜미를 잡혔고,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역시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 속에 중국 CATL이 세계 1위로 최근 올라섰다.
 
구광모 대표가 지난 2월 서울 마곡 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LG테크 콘퍼런스에 참석한 이공계 인재와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LG]

구광모 대표가 지난 2월 서울 마곡 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LG테크 콘퍼런스에 참석한 이공계 인재와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LG]

이런 와중에 구 대표는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로 LG의 기업 문화를 개혁하는 일을 꼽은 것으로 보인다. 상무 시절부터 구 대표는 LG에서 인재가 떠나는 일에 상당한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인재가 스스로 찾아오는 LG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 대표가 취임한 이후, 첫 해외 출장지로 택한 곳 역시 지난 4월 실리콘밸리와 인접한 미국 샌프란시스코였다. 현지에서 올해 두 번째 테크 콘퍼런스를 개최하면서 실리콘밸리에 유학해있는 이공계 석·박사 인재를 직접 스카우트했다.
 
구 대표는 미 스탠퍼드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던 도중 실리콘밸리로 옮겨가 2009년까지 스타트업에서 경험을 쌓았다. ㈜LG 소속 한 임원은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기업과 비교해 과연 최고의 인재가 LG를 찾을지, LG가 그럴만한 회사로 바꿔야 한다는 게 구 대표의 주된 고민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LG의 주력 상품인 세탁기만 하더라도 부품을 기기에 탑재할 필요 없이, 코딩만으로 해당 기능을 인스톨하면 되는 세상에 최고 수준의 개발자·엔지니어가 LG에서 일하려면 좀 더 유연하고 실용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얘기다.
 

보수적 조직 문화에 과감한 메스 

후발 업체로의 인력 유출에 따른 영업 비밀 침해가 최근 문제가 된 LG화학은 노인호 최고인사책임자(CHO) 밑에 ‘조직문화·리더십 개발 담당’ 조직을 신설했다. LG화학은 충북 오창, 대전 대덕 등 비수도권에 사업장이 많은 까닭에 근속 10년 이상 직원도 서울 사무소 근무가 사실상 어려웠다. 수직적 조직도 젊은 엔지니어의 근무 욕구를 떨어뜨리는 한 요소였다. 구 대표는 지난 8월 LG화학 대덕 연구원을 직접 방문해 연구원들의 사기를 직접 챙겼다.
 
LG디스플레이 역시 젊은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되는 상황이었다. 임직원 단합심을 고취한다는 명목의 단체 활동이 더는 통용되지 않는데도, 컨베이어 벨트식 기업 문화가 존속한 까닭이다. 관리자들에 대한 불만이 익명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 올라오기도 했다.
 
LG디스플레이는 최근 임원 약 25%를 감축하는 고강도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구광모 대표가 LG의 대표상품인 OLED 패널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LG]

구광모 대표가 LG의 대표상품인 OLED 패널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LG]

LG 안팎에선 누구나 피케 셔츠나 맨투맨을 입고, 하이어라키(수직적 문화·hierarchy)가 없는 마곡 사이언스파크가 구 대표 시대 LG의 청사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마곡 사이언스파크는 구 대표가 취임하기 전인 지난 4월 오픈했지만, 구 대표가 요즘 집무 사무실 외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곳이다.
 

구광모의 미래 청사진 마곡 사이언스파크    

4조원을 투자한 LG사이언스파크는 축구장 24개 크기인 17만여㎡(약 5만3000평) 부지에 연면적 111만여㎡(약 33만7000평) 규모로 20개 연구동이 있다. 일반적인 대기업 연구센터와 달리 LG 계열사뿐 아니라 전도유망한 스타트업에도 사무실을 내주는 ‘오픈 이노베이션’ 단지라는 특색을 갖췄다. 구 대표가 취임 후 첫 신년사를 밝힌 곳도 여의도 트윈타워가 아니라 마곡 사이언스파크였다. 구 대표는 취임한 지 3개월 만인 지난해 9월 사이언스파크를 직접 찾아 LG의 기술을 현장 점검했다.
 

“LG가 고객과 사회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기업이 되려면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 LG가 고객의 삶을 바꾸는 감동을 만드는 일에 여러분의 꿈과 열정을 더해 주시기 바란다.”(2월 ‘LG 테크 콘퍼런스’ 인사말)

  
실패에 너그러웠던 조직 문화를 바꾸는 것 외에도 조그만 것부터 변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 2월 서울 마곡 사이언스파크에서 ‘LG 테크 컨퍼런스’를 개최했을 당시, 구 대표는 이공계 R&D 인재 약 350명과 일일이 악수하고 사진을 함께 찍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LG는 같은 행사를 위해 서울 시내 호텔을 빌렸다. 구 대표 취임 이후 R&D 현장을 직접 챙긴다는 취지였다. 

 
LG가 올 3월 공기 청정기 약 1만대를 기부했을 당시 이낙연 총리의 트위터. 구 대표는 당시 ’공기청정기 1만대를 가장 빨리 공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며 송대현 LG전자 H&A사업본부장에게 직접 요청했다.

LG가 올 3월 공기 청정기 약 1만대를 기부했을 당시 이낙연 총리의 트위터. 구 대표는 당시 ’공기청정기 1만대를 가장 빨리 공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며 송대현 LG전자 H&A사업본부장에게 직접 요청했다.

1989년 구자경 명예 회장 때부터 30년째 해온 ‘사업 보고회’ 방식도 올해 구 대표가 직접 주재하면서 달라졌다. LG생활건강에 이어 LG전자·디스플레이·이노텍 등 전자 계열사, 그다음에는 LG유플러스로 이어지는 올해 사업 보고회는 현재 한창 진행 중이다. 이전까진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이 지주사에 보고하는 형식이었다. 반면 구 대표는 C 레벨 임원과 격의 없이 당해년도 실적, 내년 사업 전략을 토론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구 대표는 A부터 Z까지 모든 사안을 보고받기보단 핵심 부분, 예를 들어 LG전자의 올레드 TV 전략 같은 미래 성장 동력을 놓고 깊이 있는 토론을 벌이는 방식을 추구한다.  
 

젊은 직원 의견청취, 토론도 마다치 않아 

젊은 직원과도 토론도 마다치 않는다. 지난 7월 경기도 평택 LG전자 소재ㆍ생산기술원을 방문했을 당시 구 대표는 임원뿐 아니라 책임급 실무 직원과도 함께 토론을 진행했다. 해당 분야에 해박하다면 실무 직원도 참석해 실질적 논의를 진전시키고, 젊은 인재가 경험을 쌓을 기회도 제공해야 한다는 구 대표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한다.
 
지난 4월 LG전자가 경기 평택 스마트폰 라인을 베트남으로 이전할 때에도 구 대표의 판단은 빨랐다. 구 대표의 결단에 LG전자 경영진이 놀랐다는 후문이다. 해외 이전에 따른 외부 시선보다는 스마트폰 사업부의 활로 모색에 무엇이 유리할지 염두에 뒀다는 얘기다. LG전자 소속 임원은 “구 대표가 ‘고객 가치 제고’와 ‘이익’이라는 업의 본질을 지킨 것”이라고 말했다.
 
구광모 LG 대표가 지난 8월 29일 대전 LG화학 기술연구원을 방문해 차세대 OLED 시장 선도를 위한 핵심 공정 기술인 '솔루블 OLED' 개발 현황에 대해 연구개발 책임자들과 논의하고 있다.[사진 LG]

구광모 LG 대표가 지난 8월 29일 대전 LG화학 기술연구원을 방문해 차세대 OLED 시장 선도를 위한 핵심 공정 기술인 '솔루블 OLED' 개발 현황에 대해 연구개발 책임자들과 논의하고 있다.[사진 LG]

LG화학과 LG디스플레이는 구 대표 취임 이후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했다. 한상범 당시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은 연말 인사철을 한참 앞둔 9월에 교체됐다. LG 내부에선 “인화를 강조했던 과거의 LG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말이 나왔다. 한시가 급한 구조조정을 기존 인사 관행 때문에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을 구 대표가 한 것으로 LG 안팎에선 보고 있다. 최근 LG디스플레이 CEO로 선임된 정호영 사장은 회사 실적과 관련된 주요한 숫자를 전부 외워 프레젠테이션할 만큼 숫자에 밝다고 한다.
 

일단 결정했으면 빠른 실행 강조 

성장 동력이 아닌 회사를 매각하고 ‘선택과 집중’을 하는 일에도 과거에 찾아보기 힘든 스피드가 발휘된다. LG전자의 수처리 자회사, 수소연료 전지 회사인 ‘LG 퓨얼셀시스템즈’를 청산했고, LG디스플레이는 일반 조명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을 접었다. 앞서 ㈜LG는 지난 2월 서브원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 60%를 매각해 6020억원을 확보한 바 있다. LG유플러스가 전자결제(PG) 사업부를 스타트업 ‘토스’에 다소 낮은 가격(3000억원대)에 팔려는 것도 “과거의 LG와 달라진 모습”이란 말이 나온다.  
 
LG 내부에서도 “굳이 낮은 가격에 스타트업에 매각할 필요가 있나”는 부정적인 목소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네이버에 밀린 PG 결제 사업을 굳이 붙잡고 있는 일은 부적절하다는 결론이 났다고 한다. 발 빠른 매각을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자는 취지다.
 
구 대표는 지배구조 문제에 있어선 자유롭다. ㈜LG 보유 지분을 15%로 늘렸고 상속세(7161억원)는 5년간 6회에 나눠서 내기로 했다. LG는 16년 전인 2003년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지주사를 설립한 곳이다.
 
LG 지배구조.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LG 지배구조.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인재 살리기, 기업문화 바꾸기는 결국 ‘일등 LG’의 복원이라는 숙제로 연결된다. 회사 안팎에서는 미래 성장 동력인 OLED와 배터리에 LG가 앞으로도 사활을 걸 것으로 본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인사는 “‘LG가 싸움닭이 돼 간다’는 세간의 평가가 있다. 하지만 실용적 DNA가 강한 구 대표는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액정(LCD)을 덧대는 경쟁업체 삼성전자 TV와 OLED TV 간 비교 마케팅도 더욱 강력하게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배터리 역시 구 대표가 핵심 사업으로 계속 챙길 분야다. 재계 안팎에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특허 분쟁이 쉽게 종료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지주회사 ㈜LG가 시스템·통합 계열사인 LG CNS 지분(35% 이상)을 어떻게 매각할지도 관심사다. 매각 대금은 1조원 안팎이 될 전망이다. CNS 지분 매각에 이어 중국에 있는 ‘LG 베이징 트윈타워’까지 매각할 경우, LG는 3조원가량의 현금을 쥐고 또 다른 인수합병(M&A)을 시도해 볼 수 있다.
  

‘LG의 적은 LG’ … 본격 변화 시작  

OLED와 차세대 배터리, 자동차 전장사업 외에 장기 성장 동력으로 무엇을 키울지에 대해선 아직 고민 중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구 대표는 5년 뒤, 10년 뒤 LG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한다. 구 대표가 LG경제연구원을 통해 소비자·시장 변화에 대한 외부 관점을 청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항상 틈이 날 때마다 마곡 사이언스파크를 찾아 신기술 개발 현황을 체크한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LG 관계자는 “구 대표는 지주사 대표이사(CEO)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고 있지만, 세세한 경영보단 대형 투자나 신사업 같은 큰 틀의 경영에 보다 집중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오너는 일상적인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내부 에너지를 결집하는 코디네이션과 외부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김상조 정책실장의 공정거래위원장 시절 발언)”는데 공감한다고 한다.
 
구 대표는 지난 9월 사장단 워크숍에서 “LG가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위해 사장단께서 몸소 ‘주체’가 돼 실행 속도를 한 차원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LG 인사는 지난해와 비슷한 이달 28일께 이뤄진다. 재계에선 권한을 주되 책임도 묻는 구광모 스타일이 LG를 얼마나 빨리 바꿀지에 주목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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