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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촛불정부’의 옹졸한 가족주의

중앙일보 2019.11.05 00:36 종합 30면 지면보기
권석천 논설위원

권석천 논설위원

“선배. 정당이 원래 이런가요?”  
 

‘이거라도 받으려면…’ 식의
형용사·부사로 덮인 사과들
반성과 쇄신 없인 개혁도 없다

“음…종교 담당이라고 생각해.”  
 
한 달 전쯤이었다. 민주당을 취재하는 기자들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조국 법무장관을 믿지 못하는 겁니까?” 의원들이 기자들에게 믿음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설마 그럴까. 또 다른 기자에게서 비슷한 말을 들었을 때도 일부에 국한된 일로 여겼다.
 
지난주 수요일 이해찬 대표 기자간담회를 접하고서야 민주당의 문제임을 실감하게 됐다. 이 대표는 “의원님들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서 주신 고견을 하나하나 새겨들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민주당이 검찰개혁이란 대의에 집중하다 보니, 국민, 특히 청년들이 느꼈을 불공정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좌절감은 깊이 있게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말에도 지문(指紋)이 남는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상대적 박탈감’. 이 여섯 글자에서 이 대표가, 아니 민주당이 자신들의 민낯을 직시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민주당의 실패는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에 있지 않다. 집권당으로서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장관 임명을 오히려 조장한 데 있다. ‘좌절감은 깊이 있게 헤아리지 못했다’는 대목에선 높은 곳에 서서 내려다보는 시선마저 느껴진다.
 
금요일(1일)엔 국회에서 청와대 국감이 열렸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노영민 비서실장은 “조국 전 장관은 인사 실패죠?”라는 야당 의원 질의에 이렇게 답했다. 거듭된 추궁에도 그는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결과적으로’는 무슨 뜻일까. 노 실장은 “그 의도와 달리 이후의 진행 과정에서 그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국감도 “우기다가 뭐예요!”(강기정 정무수석)라는 고성 속에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고 말았다.
 
정확한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사과는 진짜 사과가 아니다. 이 대표와 노 실장 모두 조국 사태에 대해 “송구하다”면서도 자신들이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얘기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문 대통령이 그어놓은 ‘합법적인 불공정’의 선을 넘지 않았다. ‘상대적’ ‘깊이 있게’ ‘결과적으로’ ‘그렇게’…. 형용사와 부사로 덮인 사과를 듣고 싶은 사람은 없다. 사태의 중심에 섰던 그들이 진실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반성했다면 그렇게 말하고 대응했을까.
 
늘 옳은 사람도 없고, 늘 틀린 사람도 없다. 조국 사태에서 확인된 진실이다. 하지만 민주당과 청와대는 ‘그래도 우린 도덕적으로 우월하다’ ‘우린 일사불란하게 뭉쳐야 이긴다’는 도그마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 눈앞에 똑똑히 보이는 개인의 문제까지 제도 탓으로 돌리려 한다. 그토록 시스템을 강조하면서 개인(조국)이 아니면 검찰개혁이 안 되고, 개인(이해찬)이 아니면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가 무너진 것은 잘못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잘못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 무엇을 그르쳤는지 돌아보고, 시민들 앞에 있는 그대로 고백하는 정부는 무너질 리 없다. 한 30대 직장인은 실망감을 토로했다.  
 
“2016년 겨울 촛불집회에 나갔던 건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정부를 바랐기 때문이에요. 어떻게든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책임자들 보면서 ‘치사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이거라도 받으려면 받으라는 식이잖아요.”
 
‘촛불정부’를 자임해온 문재인 정부가 옹졸한 가족주의에 빠져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검찰권력은 개혁돼야 하고, 언론은 달라져야 한다. 이 시대적 요구가 실현되려면 집권자들의 진정한 반성과 쇄신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사회를 설득할 수 있다. 시시각각 바뀌는 대통령 지지율만 바라보며 대체 어디까지 흘러갈 것인가.  
 
자신들은 변하려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변화를 요구하는 건 사이비 진보다. 실패를 인정하고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갈 때 진보다운 것이다. 이제 그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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