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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광우병 연극에 “꿈만 같다”는 인헌고 교사

중앙일보 2019.11.05 00:03 종합 16면 지면보기
이가영 사회2팀 기자

이가영 사회2팀 기자

‘너 일베냐.’
 
서울 관악구 인헌고등학교 재학생들이 일부 교사의 정치 편향 교육에 동의하지 않자 들었다는 말이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전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이는 사실로 나타났다. 학생들은 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언론 보도가 가짜뉴스이며 믿으면 개·돼지라는 말을 들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문제가 불거진 건 지난달 22일 인헌고 재학생이 만든 ‘인헌고 학생수호연합(학수연)’이 직접 서울시교육청에 감사를 요청하는 청원서를 내면서다. 이내 불씨는 교육계를 넘어서 시민단체, 정치권으로 옮겨 붙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해당 정치 교사를 반드시 중징계 해달라”고 요구했고, 국회 교육위 소속 한국당 의원들은 시교육청을 항의 방문했다.
 
논란이 정치권으로까지 번지는 동안 학생들 사이 혼란은 더욱 커졌다. 학수연은 이튿날 학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생활기록부에 안 좋게 쓰이고, 수업 분위기를 흐릴까 봐 정치 교사를 묵인했다”며 “우리는 교사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의무와 사상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학수연에 따르면 전교생 500명 중 150명이 지지·연대 의사를 표시했다. 반면 이틀 뒤에는 인헌고 학생 393명 일동이 “학교 문제에 대한 외부 단체 개입과 학교 주변 시위 중단을 호소한다”며 “학교 내 문제는 공개토론회 등 학생 자치로 해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학수연 대변인을 맡은 학생이 보수 유튜버가 돼서 돈을 벌기를 원한다는 소문까지 퍼졌다고 한다. 편향적 사상을 주입해왔다고 지목된 교사를 옹호하는 대자보가 학교 내에 붙었고, 또다시 이를 반박하는 학생들의 주장이 제기됐다. 교장, 교사, 학생들 어느 누구도 인헌고 내에서 이 사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돼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시교육청은 감사 착수 요청을 받고 2주가 다 되어가도록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며 “대학수학능력시험(11월14일) 마무리 대비와 학내 혼란 최소화를 위해 수능 이후 장학결과를 발표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문제가 된 교사가 과거에도 비슷한 교육을 해 왔다는 자료가 공개됐다.
 
그는 전교조 교사들이 주축이 돼 만든 ‘전국국어교사모임’ 사이트에 2008년 아이들의 ‘광우병 쇠고기’ 연극 후기를 올리면서 “촛불과 피켓을 흔드는 아이들을 보며 모든 것이 꿈만 같다”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6·25전쟁 미국 유도설을 설파한 연극을 본 학생이 “교과서는 다 거짓이었다”는 감상문을 쓴 데 대해서는 “나를 감동시켰다”고 했다.
 
상황은 이런데 시교육청은 계속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새로운 의혹들이 나오는 상황에서 정치권과 사회단체에 “학생들이 안정적인 교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협조를 바란다”고 호소만 하고 있다. 자칫 이런 시교육청의 모습은 학생들의 문제 제기 대상이 된 교사를 감싸고 도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혼란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건 결국 인헌고 학생들이다.
 
이가영 사회2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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