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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전쟁 연대기①새 아파트, 싸움의 기술

중앙일보 2019.11.04 17:39
 
 아파트를 둘러싼 다툼은 '특정 아파트'에서만 벌어지는 것일까? 시민단체인 송주열 아파트 선진화 운동본부 회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아파트의 생애주기마다 공통된 분쟁 포인트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새 아파트라고 해서 분쟁이 없는 것도, 노후 아파트라고 해서 다툼이 특별히 많은 것도 아니라는 의미다. 데이터브루는 아파트 선진화 운동본부의 조언을 얻어 시기별로 대표적인 아파트 분쟁 사례를 정리해봤다. 이른바 '대한민국 아파트 전쟁 연대기'다.  
혹여 우리 아파트 사례와 아주 비슷하다고 해도 너무 놀랄 필요는 없다.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사진 연합]

[사진 연합]

  새 아파트, 싸움의 시작 

"생애 '첫집'을 마련했다고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비만 오면) 언제 어디서 비가 샐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게 됐어요."  
 
A씨는 한숨을 쉬었다. 부산에서도 부자동네로 불리는 해운대구에 새 아파트를 얻었다. 새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행복하게 살 생각에 들떠있었다. 그런데 올 1월 입주하고부터 걱정거리가 커졌다. 거실 벽과 방에 붉은 점들이 생겨났다. 
 
지난 9월 태풍 '타파'가 지나가면서 상황은 나빠졌다. 이웃들은 물이 새고 곰팡이가 핀다고 아우성을 쳤다.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는 353세대 중 200여 세대에서 물이 샜다고 했다. 곰팡이 냄새 때문에 주민들은 두통에 시달렸다. 입주민 민원이 해운대구청에 폭주했다. 해운대구청은 시공사인 두산건설에 "하자 보수를 하지 않으면 과태로 500만원을 부과하겠다"고 했다. 
 여전히 주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한다. A씨는 "외부 균열(크랙)을 보수하고 있는데 입주자 입장에선 '땜빵'을 하고 있는 기분"이라며 "원인을 분석해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철제 계단은 누가 고쳐야 할까? 

또 다른 아파트 이야기다. 강풍에 아파트 옥상에 설치한 철계단이 떨어져나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아파트 역시 입주한지 얼마 안된 새 아파트다. 입대의 회의가 열렸다. 수리 안건이 올라왔다. 한 업체 제안이었다. "철제 계단을 고치는데 반값에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철계단'은 누가 고쳐야 할까? 동대표들의 의견은 갈렸다. '강풍에 떨어졌으니 주민 돈으로 고쳐야 한다'와 '새 아파트인데 태풍이 불어도 구조물이 안떨어지게 튼튼하게 건설사가 만들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였다. 주민들은 갑론을박을 거듭했다. "절반을 깎아주겠다는 것이 견적이냐"는 한 동대표의 설명이 먹히면서 주민들이 비용을 내는 안은 없던 일로 됐다.
 

 왜 새 아파트일까?

송주열 아파트 선진화 운동본부 회장은 "아파트 생애주기로 보면 새 아파트에서 가장 많은 다툼이 벌어진다"고 말한다. 시작은 '하자보수'다. 하자 보수 문제를 잘 해결해도, 관리업체 선정부터 커뮤니티 시설 관리 회사까지 '계약'해야 하는 것들이 쏟아진다.
 
아파트를 지으면 건설사가 정한 관리업체가 들어온다. 1~2년 안팎으로 이 업체가 관리를 하게 된다. 아파트 입주를 시작하고, 50% 이상 입주를 마치면 주민들로 구성된 '입대의'를 구성할 수 있다. 진짜 주민자치를 시작하는 이 시점까지 건설사가 정한 관리회사가 아파트 관리를 맡는다. 문제는 이 과도기에 하자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송 회장은 "건설사가 선정한 관리업체가 입주 초기 하자문제를 관리하다보니 일부에서는 주민들의 하자 보수 접수에 적극적이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했다.   
 
 건설회사는 공동주택관리법(제38조)에 따라 하자보수를 대비해 '보증금'을 걸어둔다. 일반적으로 총 건축비의 3% 정도다. 건설공제조합이나 주택도시보증공사, 서울보증보험이 발행하는 보증서 형태로 이뤄진다. 문제는 이 돈을 쓰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입주민들이 하자보수 비용을 달라고 하면 보증회사는 다시 돈을 맡긴 건설사에 '돈을 내주는 데에 동의하느냐'고 묻는다. 대부분의 건설사가 지급 거절을 한다. 
 
 입주민이 할 수 있는 것은 소송 밖에 없다. 대개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1년~1년 반의 시간이 걸린다. 문종하 변호사(법무법인 태성)는 "하자보수 보증금을 쓸 수 있도록 한 계약이 '준공 허가 후 발생한 하자'로 되어 있어 자재를 바꿔치기 하거나, 빼먹은 공사 등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균열이나 누수처럼 '눈에 보이는' 하자만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문 변호사는 "새 아파트에 들어가도 하자보수를 받기까지 절차가 복잡하고 일반인이 관련 규정을 알기 어려워 분쟁 해결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아파트는 주민자치로 이뤄진다. 입대의는 작은 '정부'나 마찬가지다. 하자보수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를 놓고 주민들 의견이 갈리기 시작한다. '새 아파트인데 하자가 있다는게 알려지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목소리부터 '똘돌 뭉쳐 싸우자'는 이야기까지 다양하게 나온다. 다툼의 씨앗은 '하자 보수'였지만, 불신이 커지면서 다툼은 들불처럼 퍼진다. 주민들이 입대의를 불신하게 되면 소위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지기도 한다. 대통령을 뽑듯 입대의 회장을 뽑는 선거까지 겹치면 다툼은 주민간의 고소·고발로 흔히 이어진다.
 

  헬리오시티에서 일어난 일

 "깜짝 놀랐어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는데 같은 색 띠를 맨 분들이 쭈욱 서서 인사를 하는 거에요. 동대표 선거를 하는데 우리 동은 7명이 후보로 나왔더라고요. 다른 동도 5~6명씩 선거에 나오고요. 다들 학력도 높고, 대단하더라고요. 근데 이렇게 서로 하려고 드는 걸 보면 뭔가 혜택이 있는건가요?"
 
건국이래 최대 규모 아파트 단지로 꼽히는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이곳에서 만난 한 주민의 이야기다. 
헬리오시티는 '가락시영아파트'로 불렸다. 1980년 무주택 철거민들을 위해 세워졌다. 논밭을 갈아엎어 세운 이 아파트에는 6660세대가 살았다. 아파트가 낡자 2015년 4월 아파트를 허물고 9510세대에 달하는 지금의 모습으로 거듭났다. 조합설립 인가부터 준공까지 15년 6개월이 걸렸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입주를 시작했다. '미니 신도시급' 헬리오시티는 '명품'급으로 지어졌지만 다툼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천장에서 물이 샜다. 350가구가 누수 신고를 했다. 
 
지난 7월엔 36명의 동대표를 뽑는 선거를 치렀다. 이어 회장을 선출했지만 낙선한 후보가 서울동부지법에 '회장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내기도 했다. 주민들이 다투는 과정에서 일부 동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커뮤니티 시설 위탁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주민들 사이에서 군말이 나왔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헬리오시티는 재건축 조합장이 2명 모두 구속됐다"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 주민자치는 정치와 똑같다.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나라를 잘 이끌어보겠다고 나서는데 주변(이권)에 휩쓸리는 경우가 생긴다. 사람이 사는데 다툼이 없을 수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송도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초기 동대표를 하며 관리비 100만원을 40만으로 줄인 경험을 책으로 쓴 김지섭·김윤영씨는 '아파트 관리비의 비밀'에 이렇게 썼다. 
 
"리더가 없는 아파트란 마치 CPU(중앙처리장치) 없는 컴퓨터와 같다. (중략)기술이나 법률 자문 없이 조그마한 정보 하나 붙들고 침 튀기며 흥분하는 주민이 힘을 얻으면 일은 점점 꼬이고, 실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도 사라진다. 손해가 축적되면 다시 주민들은 흥분하고, 그 흥분은 엉터리 대응방안으로 이어져 끝내 헤어나지 못할 악순환에 빠진다. 리더가 부재한 탓이다. (중략) 특히나 공동주택은 각자의 가치관이 달라 한 걸음씩 양보해야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한 걸음 물러서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대개는 이 양보 못하는 한 걸음의 차이로 의심과 싸움이 생기며 그 결과 꼴 보기 싫은 이웃, 삭막한 동네가 시작된다."
 
[관련 기사]
대한민국 아파트는 전쟁 중 
①새 아파트, 싸움의 기술
②커뮤니티센터에서 생긴 일
 
※데이터브루=김원·김현예·심서현·전서영·박온유 인턴기자 kim.won@joongang.co.kr ·개발=전기환·디자인=임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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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예 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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