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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비싸면 조조할인 이용하라" 이 말에 칠레 뒤집어졌다

중앙일보 2019.11.04 15:33
칠레 산티아고에서 11월 3일(현지시간) 벌어진 시위에서 경찰의 최루가스와 물대포에도 불구하고 시위대가 물러서지 않고 있다. [로이터=연합]

칠레 산티아고에서 11월 3일(현지시간) 벌어진 시위에서 경찰의 최루가스와 물대포에도 불구하고 시위대가 물러서지 않고 있다. [로이터=연합]

11월 3일(현지시간) 칠레 산티아고 이탈리아 광장에 모인 시위대.[이광조 JTBC 촬영기자]

11월 3일(현지시간) 칠레 산티아고 이탈리아 광장에 모인 시위대.[이광조 JTBC 촬영기자]

칠레 시위대의 성지가 된 산티아고의 이탈리아 광장. 휴일인 3일(현지시간)에도 시위대가 어김없이 몰렸다. 휴일 시위는 정오 무렵 자전거 행렬로 시작됐다. 하나둘 모여든 형형색색의 자전거는 순식간에 수천 대로 불어나 이탈리아 광장을 에워쌌다. 이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산티아고와 그 주변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모였다. 자전거에 깃발을 꽂거나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광장을 돌았다. 자전거 물결은 인근 발마세다(Balmaceda) 광장으로 이어졌다. 
 

[혼돈의 칠레] 산티아고 르포②
시위대 “꿈 펼칠 기회 억압말라”
자전거 행렬 평화 시위로 시작
수천 명 모이자 경찰 강제 진압

11월 3일(현지시간) 칠레 수도 산티아고 이탈리아 광장에서 자전거단체 시위대가 마푸체족의 깃발과 칠레 국기를 휘날리며 평등을 외치고 있다. [이광조 JTBC 촬영기자]

11월 3일(현지시간) 칠레 수도 산티아고 이탈리아 광장에서 자전거단체 시위대가 마푸체족의 깃발과 칠레 국기를 휘날리며 평등을 외치고 있다. [이광조 JTBC 촬영기자]

 

자전거 행렬이 빠져나간 자리는 여성단체와 청소년 단체 등이 메웠다. 이곳 원주민 마푸체(Mapuche)족도 무리를 이뤄 광장으로 집결했다. 사회적 불평등 해소와 헌법 개정,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 탄핵과 하야를 외쳤다. 
 
11월 3일(현지시간)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이탈리아 광장에서 한 여성이 시위에 나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광조 JTBC 촬영기자]

11월 3일(현지시간)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이탈리아 광장에서 한 여성이 시위에 나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광조 JTBC 촬영기자]

“정부가 꿈을 억압하고 있다” 

이들은 그간의 분노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평화롭게 표출했다. 광장에서 만난 히메나 카누이(27)는 “이 모든 사태가 30페소(약 47원) 인상에서 비롯됐다고 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분"이라며 “칠레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정부가 꿈을 펼칠 기회를 억압한다”고 말했다.
 
시위대의 외침 한편에선 삼삼오오 모인 이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광장의 평화는 여기까지였다. 오후 5시 무렵 시위대가 수천 명 규모로 늘어나자 경찰이 등장했다. 어제 마찬가지로 경찰의 최루가스에 시위대는 돌로 응수했다. 정부와 시위대가 충돌은 이렇게 17일째 이어졌다.
 

대통령 부인 “시위 외계인 침공 같아”

칠레 시위가 이렇게 번진 건 고비마다 대통령과 권력층이 보여준 부적절한 언행과 처신이 상처 입은 민심을 더욱 자극했기 때문이다. 120만명이 운집해 시위가 정점을 찍은 지난달 하순 피녜라 대통령 부인인 세실리아 모렐 여사의 음성 녹취 파일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됐다. 모렐 여사가 지인들에게 이번 시위를 언급하며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외계인이 침공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 내용이 담겼다. 
 
피녜라 대통령 부인의 트윗 사과문. "갑작스러운 상황에 압도됐다고 느꼈다. 비밀 내용이 유포됐고, 개인적인 마음 상태를 일반적인 정부의 상태처럼 표현한 것 처럼 보였다. 이에 대해 실수 한것 같다."

피녜라 대통령 부인의 트윗 사과문. "갑작스러운 상황에 압도됐다고 느꼈다. 비밀 내용이 유포됐고, 개인적인 마음 상태를 일반적인 정부의 상태처럼 표현한 것 처럼 보였다. 이에 대해 실수 한것 같다."

시위대를 외계인에 비유한 발언이 시민의 감정선을 건드리며 일파만파로 번지자 모렐 여사는 뒤늦게 사과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3일 이탈리아 광장에서 만난 이그나시오 하케(30)는 “현실을 모르는 어이 없고 황당한 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온 국민은 같은 인간으로서 평등해야 한다”며 “고위층 특권을 없애고 이 사회가 평등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장에서 시위 중이던 마누엘 플로레스(29)도 “모렐 여사의 발언에 반발해 일부 시민들이 외계인 탈을 쓰고 시위에 참여해 야유와 조롱을 퍼붓고 있다”고 말했다.
 

비상사태 선포 후 대통령 가족 외식

시위가 격화되던 지난달 18일 이탈리안 식당에서 가족 외식을 하고 있는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 사진. [소셜미디어 캡쳐]

시위가 격화되던 지난달 18일 이탈리안 식당에서 가족 외식을 하고 있는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 사진. [소셜미디어 캡쳐]

시위 사태가 격화하던 지난달 18일 저녁. 피녜라 대통령이 라 모네다 대통령궁 (Palacio de la Moneda) 인근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가족과 식사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식당 손님 중 한 명이 찍어서 익명으로 칠레 소셜미디어에 뿌리며 알려졌다. 당시 거리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격해지면서 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태였다. 여유롭고 편안하게 가족과 저녁 식사를 즐기는 모습은 비상사태로 지하철과 버스 노선이 끊기는 바람에 퇴근을 못 해 발을 동동 구르던 서민들의 분노에 불을 질렀다. 
 
세실리아 페레즈 정부 대변인은 "대통령도 사람이다. 누구나 식사할 권리가 있다"고 대통령을 감쌌지만 역풍을 맞았다. 소셜미디어에는 "평화롭게 먹으려고 비상사태 선포했냐" "조카 생일을 다른 날 하거나 집에서 축하할 수는 없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경제 장관은 “조조할인 이용하라” 

11월 3일(현지시간) 칠레 수도 산티아고 이탈리아 광장에서 각종 단체들이 요구 사항을 외치거나 피켓과 깃발을 흔들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광조 JTBC 촬영기자]

11월 3일(현지시간) 칠레 수도 산티아고 이탈리아 광장에서 각종 단체들이 요구 사항을 외치거나 피켓과 깃발을 흔들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광조 JTBC 촬영기자]

칠레 시위를 촉발한 건 정부가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을 발표하면서다. 반발이 커지는 데 후안 안드레스 폰테인 경제산업관광부 장관은 요금 인상에 대한 시민 불만에 대해 “새벽에 일찍 일어나 조조할인을 이용하라”고 말했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은 출퇴근 시간엔 800페소(약 1256원), 조조할인 요금은 600페소(약 942원)다. 그 외에는 700페소(약 1099원). 안드레스는 최근 개각에서 경질됐다. 글로리아 후트(Gloria Hutt Hesse) 교통통신부 장관은 환승 혜택 등을 고려하면 지하철 요금이 다른 국가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가 멀어진 민심을 더 멀어지게 했다. 

공감 능력 없는 리더십, 민심 자극 

민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정부의 리더십, 지도층의 공감 능력 결여가 결국 사상 초유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취소로까지 번진 셈이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여성 히메나 카누이(27)는 “고위층은 서민 생활이 어떤지 알지도 못할뿐더러 서민이 과하게 느끼는 비용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시위대 편에서 바라보니 대통령과 정부의 수습책이 외면당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할 정도다. 
 
산티아고(칠레)=임종주 특파원 lim.jongju@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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