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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북한 도발 감쌀수록 제재 해제는 요원해질 뿐이다

중앙일보 2019.11.04 00:41 종합 30면 지면보기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상 중인 지난달 31일 북한은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이 성공했다고 밝혔다. 두 차례 발사된 방사포의 사거리는 370여㎞로 나타났다. 우리 군 지휘부가 있는 계룡대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극도의 위협감을 느낀다고 알려진 F35 스텔스 전투기가 전개된 청주 공군기지가 모두 북한의 방사포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번 방사포 사격 결과, 적의 집단 목표나 지정된 목표 구역을 초강력으로 초토화할 수 있게 됐다”는 북한 중앙통신의 보도가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북한은 지난 5월부터 12차례나 이스칸데르급 단거리 미사일 및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를 했다. 사거리가 500㎞ 안팎으로 대한민국 전역(종심 390㎞)을 타격할 수 있는 초강력 첨단 무기들이다.
 

정의용 ‘북 방사포 위협 아니다’ 옹호에
미, 북 도발 다음 날 테러 지원국 재지정
도발엔 따끔히 대응해야 레버리지 생겨

그런데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1일 국회에서 “북한이 개발하는 미사일은 위중한 위협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대단히 위험하고 잘못된 상황 인식이다. 정 실장은 한발 더 나가 “우리도 북한보다 적지 않게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고 있다. 양적·질적으로 우리 미사일 능력이 북한보다 우세하다”고 했다. 북한은 핵 개발로 유엔의 제재를 받고 있으며, 특히 탄도미사일 발사는 안보리가 여러 차례 결의를 통해 엄중히 금지해 온 사안이다. 국제규범을 준수하며 합법적인 선 안에서 미사일 시험발사를 해 온 한국과 북한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부터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북한은 문 대통령 모친상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명의의 조의문을 보낸 다음 날 방사포를 발사해 우리의 뒤통수를 쳤다. 말로는 ‘우리 민족끼리’라면서 남측 정부는 안중에 없이 자신들 스케줄대로 발사를 이어가며 대한민국의 의지를 시험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오죽하면 여당 소속인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조차 “대통령 상중에 예의가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겠는가. 그런데도 정 실장은 “대통령이 장례 절차를 마치고 청와대로 사실상 복귀한 다음에 발사됐다”고 답했다.
 
나라의 안보 책임자라면 최소한 할 말, 안 할 말은 가릴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북한과 대화가 급해도 국가원수를 대놓고 모욕하며 도발을 감행한 행태엔 엄중하게 대응해 다시는 그런 망동을 못하게 막는 것이 정도다. 그렇지 못하니 우리 대통령이 북한으로부터 입에 담기도 거북한 욕설을 들을 만큼 얕잡아 보이게 된 것 아닌가.
 
미국은 북한의 방사포 시험발사 다음 날인 지난 1일(현지시간) 북한을 테러지원국에 재지정했다. 테러지원국 딱지가 붙으면 전방위적 무역금수에다 세계은행의 차관 공여 금지 등 엄격한 제재를 받게 된다. 미국은 이를 통해 대북제재의 고삐를 계속 조이는 한편 우리 정부의 제재 해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인한 셈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테러지원국 재지정 직후 “북한이 24시간 전 발사한 두 발은 이전에 발사했던 것과 일치하는 로켓들”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방사포 발사가 테러지원국 재지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미국의 움직임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의 희망대로 대북제재가 풀리고 남북 경협이 실현되는 길은 북한의 도발을 무작정 감싸는 대신 따끔하게 대응해 김정은이 대화 외엔 길이 없음을 깨닫도록 레버리지를 확보하는 것뿐임을 유념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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