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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 “교육 라인 ‘학종파’에 포섭” 판단…김상조가 나섰다

중앙일보 2019.11.04 00:09 종합 24면 지면보기

대통령의 ‘수시 축소’ 지시 배경을 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지난 달 22일) 뒤 정치권과 교육계에 정시·수시 비율을 둘러싼 논쟁이 확산됐다. 사진은 지난달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시 확대 왜 필요한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의 모습이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지난 달 22일) 뒤 정치권과 교육계에 정시·수시 비율을 둘러싼 논쟁이 확산됐다. 사진은 지난달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시 확대 왜 필요한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의 모습이다. [연합뉴스]

“국민께서 가장 가슴 아파하는 것이 교육에서의 불공정입니다. (중략)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을 마련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시 비중 상향’을 약속했다. 이 발언으로 정책 방향이 하루아침에 뒤집어졌다. 문 대통령은 3일 뒤에 교육 관계 장관들을 청와대로 부른 뒤 이렇게 말했다. “(수시는) 학생의 역량과 노력보다는 부모의 배경과 능력, 출신 고등학교 같은 외부 요인이 입시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그 과정마저 투명하지 않아 ‘깜깜이’ 전형으로 불릴 정도입니다. 제도에 숨어있는 불공정 요소가 특권이 대물림되는 불평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누구도 그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게 만든 것입니다.” 수시 비판론의 핵심이 대통령 입에서 그대로 나왔다.
 

대통령은 반복해 ‘입시 개선’ 주문
교육부·청와대 교육 라인은 미온적
급기야 청와대 정책실장이 움직여
여론과 대입제도 문제 수집해 보고

유은혜

유은혜

대통령의 이런 행보가 교육계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서 주목받은 것은 교육부의 움직임과 완전히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 시정연설 하루 전인 21일의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시 확대 요구는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이 불공정하다는 인식 때문에 더 크게 높아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며 “학종 공정성에 대한 것을 우선하여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공정한 대입 제도가 과연 수시·정시 비율로 국한하는지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시 비중 상향을 선언하는 대통령 연설문의 초고가 이미 작성된 시점에 주무 장관은 국회에서 정시 확대에 반대하는 취지의 말을 했다. 되짚어 보면 뚱딴지같은 발언이었다.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의 이 같은 엇박자는 지극히 드문 일이다. 유 장관이 대통령 뜻을 몰랐던 것일까? 알고도 짐짓 모르는 척한 것일까? 몰랐다면 청와대가 주무 장관과 부처를 ‘패싱’하고 주요 정책의 방향을 정했다는 얘기다. 그것은 교육부를 포함한 정부의 공식 ‘교육 라인’이 대통령의 신임을 크게 잃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대통령 시정연설 다음 날인 23일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외부 인사들도 참석한 회의 자리에서 “지금 우리가 멘붕(정신력 붕괴)이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여러 명이 들었다고 했다. 교육부가 대통령의 입시 관련 발언 계획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의 정시 상향 선언은 어떻게 나오게 됐을까? 그 배경을 추적해 봤다.
  
청와대 정책실이 개입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한 여권 고위 관계자는 “조국 사태 초기에 문 대통령이 수시 축소를 포함한 대입 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책을 교육부에 주문했다. 그런데 유은혜 장관이 대통령의 기대만큼 움직이지 않았다. 유 장관이 교육계 진보 진영의 수시 옹호론을 돌파하기 어렵다는 게 청와대 핵심의 판단이었다. 그에 따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그 일에 나서게 됐다. 여론 확인, 전문가 의견 수집 등의 작업을 정책실에서 벌였다. 여러 채널을 통해 수시의 문제점을 분석한 보고서도 입수한 것으로 안다. 대통령 시정연설과 교육 관련 장관 회의의 발언에 정책실 보고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뒤 정책실이 의견 수집을 위해 연락했을 만한 교육계 인사들에게 “최근에 청와대 쪽과 접촉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대학교수 한 명이 “청와대 정책실 관계자가 의견을 묻기에 보고서 형식으로 내 생각을 밝혔다”고 말했다. 수시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대물림에 기여한다고 주장해 온 이 교수는 “청와대에서 조용히 의견을 물은 것이라서 자세히 얘기하기는 곤란하다”고 했다.
 
김상조

김상조

청와대에는 사회수석비서관(김연명)이 있고, 그 아래에 교육비서관(이광호)이 있다. 그런데 이 선이 아니라 김상조 정책실장과 그 밑의 이진석 정책조정비서관이 움직였다. 김 실장은 경제학 전공자이고, 이 비서관은 의사 출신의 의료 정책 전문가다. 대통령의 판단과 결정에 교육부와 청와대의 주무 라인보다 교육 비전문가인 정책실장과 정책조정비서관이 더 큰 작용을 한 셈이다. 매우 기이한 현상이다. 청와대 정책실의 한 관계자는 “우리 쪽에서 일부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연명 수석이나 이광호 비서관이 배제됐던 것은 아니다. 그쪽과도 협의해 왔다. 다만, 입시 개선 작업에 속도가 나지 않는다고 판단된 부분은 있다”고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속도’를 말했다. 교육부와 사회수석 쪽이 입시 개선에 대한 대통령의 주문에 미온적이라고 봤다는 의미다.
 
국회 교육위 소속인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책실은 입시와 관련한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정시 확대 찬성 여론이 60%가 넘고, 조국 사태로 대통령 지지율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정책실이 가만히 있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시 확대를 요구해 온 같은 당의 김병욱 의원은 “정책실이 수시·정시 문제에 관여했다는 얘기는 나도 들었다”며 “김상조 실장이 경제학자 출신이기는 하지만 교육을 포함한 정책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주장했다.
  
안 먹히는 대통령의 영(令)
 
문재인 대통령은 정시 확대를 꾸준히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3월 22일(대선 경선 후보 시절)에 서울 대영초등학교를 방문해 교육 정책을 밝히는 자리를 가졌다. “수시 비중 단계적 축소”가 소신에 포함돼 있었다. 그러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교육계 진보 진영에서 잇따라 비판했다. 한 달 뒤에 발표된 대선 공약에서는 수시 축소가 사라졌다. ‘사교육을 유발하는 수시 전형 대폭 개선’이라고만 공약집에 실렸다. 수시 비율이 아니라 수시 전형의 종류를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김상곤

김상곤

정부 출범 직후 김상곤 당시 교육부 장관은 수능 절대평가 제도를 추진했다. 김 전 장관은 교육계의 대표적 진보 진영 인사다. 수능을 9개 등급의 절대평가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고득점자층에서 수능은 대입에 사실상 영향력을 갖지 못해 정시가 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낙연 국무총리가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꾸면) 교육현장에서 혼란과 불신이 늘어날 것”이라며 제동을 걸었다(2017년 8월 3일, 국정현안점검 조정회의). 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일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8월 31일 교육부의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교육이 희망 사다리가 되지 못하고 불공정하다면 그 사회의 장래는 암담하다”며 “입시제도는 단순하고 공정하다고 국민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명시적으로 ‘단순·공정’을 주문했다. 그 뒤 교육부는 ‘공론화’라는 과정에 돌입했다. 그 과정에서 ‘정시 45%’ 안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는데도, 교육부의 결론은 ‘정시 30%로 확대’였다.
 
문 대통령은 조국 사태 초기였던 지난 9월 1일 동남아 3개국 순방 길에 오르기 직전에 “대학입시 제도 전반을 재검토하라”고 정부와 여당에 요청했다. 조국 전 장관의 딸 입시 부정 의혹 때문에 수시에 대한 불신이 커진 상황이라 수시 개선 및 축소 주문으로 해석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유 장관과 교육부는 정시 확대가 정답이 아니며, 학종을 개선하면 된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문 대통령은 주요 대학에서 70% 이상으로 비중이 불어난 수시에 대해 일관되게 문제를 제기했다. 입시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을 알고 개선을 시도했다. 대통령이 제시한 국정 운영의 방향 중 정시 확대만큼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도 없다. 그런데도 정책 입안 단계에서 번번이 좌절됐다. 결국 정부와 청와대의 공식 교육 라인이 아닌, 정책실이 나서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통령이 ‘총애’하는 교육부 장관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교육계 진보 진영과 그들의 입장에 동조하는 일부 언론의 영향력은 세다. 이번엔 대통령의 뜻이 관철될까? 쉽지 않을 듯하다. 대통령과 국민 70% 가까이가 정시 확대를 지지하는데도, “절대로 안 된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저항이 여전히 거세다. 과연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란 말인가?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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