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수시 축소’ 지시 배경을 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지난 달 22일) 뒤 정치권과 교육계에 정시·수시 비율을 둘러싼 논쟁이 확산됐다. 사진은 지난달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시 확대 왜 필요한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의 모습이다. [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1/04/48567c5a-78fb-4cd6-a011-8fc38bc13c06.jpg)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지난 달 22일) 뒤 정치권과 교육계에 정시·수시 비율을 둘러싼 논쟁이 확산됐다. 사진은 지난달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시 확대 왜 필요한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의 모습이다. [연합뉴스]
대통령은 반복해 ‘입시 개선’ 주문
교육부·청와대 교육 라인은 미온적
급기야 청와대 정책실장이 움직여
여론과 대입제도 문제 수집해 보고

유은혜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의 이 같은 엇박자는 지극히 드문 일이다. 유 장관이 대통령 뜻을 몰랐던 것일까? 알고도 짐짓 모르는 척한 것일까? 몰랐다면 청와대가 주무 장관과 부처를 ‘패싱’하고 주요 정책의 방향을 정했다는 얘기다. 그것은 교육부를 포함한 정부의 공식 ‘교육 라인’이 대통령의 신임을 크게 잃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대통령 시정연설 다음 날인 23일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외부 인사들도 참석한 회의 자리에서 “지금 우리가 멘붕(정신력 붕괴)이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여러 명이 들었다고 했다. 교육부가 대통령의 입시 관련 발언 계획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의 정시 상향 선언은 어떻게 나오게 됐을까? 그 배경을 추적해 봤다.
청와대 정책실이 개입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이 말을 들은 뒤 정책실이 의견 수집을 위해 연락했을 만한 교육계 인사들에게 “최근에 청와대 쪽과 접촉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대학교수 한 명이 “청와대 정책실 관계자가 의견을 묻기에 보고서 형식으로 내 생각을 밝혔다”고 말했다. 수시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대물림에 기여한다고 주장해 온 이 교수는 “청와대에서 조용히 의견을 물은 것이라서 자세히 얘기하기는 곤란하다”고 했다.

김상조
국회 교육위 소속인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책실은 입시와 관련한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정시 확대 찬성 여론이 60%가 넘고, 조국 사태로 대통령 지지율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정책실이 가만히 있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시 확대를 요구해 온 같은 당의 김병욱 의원은 “정책실이 수시·정시 문제에 관여했다는 얘기는 나도 들었다”며 “김상조 실장이 경제학자 출신이기는 하지만 교육을 포함한 정책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주장했다.
안 먹히는 대통령의 영(令)
문재인 대통령은 정시 확대를 꾸준히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3월 22일(대선 경선 후보 시절)에 서울 대영초등학교를 방문해 교육 정책을 밝히는 자리를 가졌다. “수시 비중 단계적 축소”가 소신에 포함돼 있었다. 그러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교육계 진보 진영에서 잇따라 비판했다. 한 달 뒤에 발표된 대선 공약에서는 수시 축소가 사라졌다. ‘사교육을 유발하는 수시 전형 대폭 개선’이라고만 공약집에 실렸다. 수시 비율이 아니라 수시 전형의 종류를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김상곤
문 대통령은 2017년 8월 31일 교육부의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교육이 희망 사다리가 되지 못하고 불공정하다면 그 사회의 장래는 암담하다”며 “입시제도는 단순하고 공정하다고 국민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명시적으로 ‘단순·공정’을 주문했다. 그 뒤 교육부는 ‘공론화’라는 과정에 돌입했다. 그 과정에서 ‘정시 45%’ 안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는데도, 교육부의 결론은 ‘정시 30%로 확대’였다.
문 대통령은 조국 사태 초기였던 지난 9월 1일 동남아 3개국 순방 길에 오르기 직전에 “대학입시 제도 전반을 재검토하라”고 정부와 여당에 요청했다. 조국 전 장관의 딸 입시 부정 의혹 때문에 수시에 대한 불신이 커진 상황이라 수시 개선 및 축소 주문으로 해석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유 장관과 교육부는 정시 확대가 정답이 아니며, 학종을 개선하면 된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문 대통령은 주요 대학에서 70% 이상으로 비중이 불어난 수시에 대해 일관되게 문제를 제기했다. 입시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을 알고 개선을 시도했다. 대통령이 제시한 국정 운영의 방향 중 정시 확대만큼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도 없다. 그런데도 정책 입안 단계에서 번번이 좌절됐다. 결국 정부와 청와대의 공식 교육 라인이 아닌, 정책실이 나서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통령이 ‘총애’하는 교육부 장관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교육계 진보 진영과 그들의 입장에 동조하는 일부 언론의 영향력은 세다. 이번엔 대통령의 뜻이 관철될까? 쉽지 않을 듯하다. 대통령과 국민 70% 가까이가 정시 확대를 지지하는데도, “절대로 안 된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저항이 여전히 거세다. 과연 이 나라의 주인은 누구란 말인가?
이상언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