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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술자리에 공수부대원…원혜영, 문 대통령과 43년 인연

중앙일보 2019.11.04 00:04 종합 20면 지면보기

정치 Who & Why 

원혜영(오른쪽) 의원이 선친 원경선 ‘풀무원 농장’ 원장(2013년 100세로 작고)과 충북 괴산 자택에서 함께한 사진. 선친은 한국에서 유기농법을 처음 시작했다. 임현동 기자

원혜영(오른쪽) 의원이 선친 원경선 ‘풀무원 농장’ 원장(2013년 100세로 작고)과 충북 괴산 자택에서 함께한 사진. 선친은 한국에서 유기농법을 처음 시작했다. 임현동 기자

“설(說)이란 항상 나오는 것 아니겠어요? 총리 문제는 내가 결정할 게 아닙니다.”
 

차기 총리설 나오는 5선 원혜영
“옥살이한 서울대·경희대생 모임
문 대통령·김정숙 여사도 합석
총선 출마 여부 연말 발표할 것
당 지도부가 의원 좌지우지 안 돼”

‘불출마’와 ‘차기 총리설’. 5선의 원혜영(68) 더불어민주당 의원 거취를 두고 최근 당내에서 제기되는 관측들이다. 원 의원은 지난달 29일 그의 사무실(의원회관 816호)에서 기자와 만나 둘 다 ‘미정’이라고 답했다. 현재 여권 안팎에서는 올 연말 개편론이 힘을 얻고 있다. 총선을 진두지휘할 이낙연 총리의 민주당 복귀가 핵심인데, 이 총리를 대체할 차기 후보로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진표 의원 등과 함께 원 의원이 거론된다. 특히 원 의원의 경우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해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는 카드로 꼽힌다. 그러려면 내년 총선에 나가기 어렵다. 일단 원 의원은 “연말까지 (출마 여부) 고민을 한 뒤 공식적으로 알리겠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내년 총선 출마 여부를 정했나.
“그동안 나로서는 열심히 일해왔다고 생각하고, 내 정치활동을 정리할 시점이 아닌가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하지만 원로들을 비롯한 동료들이 21대 국회의 중요성을 얘기하면서 (내가) 역할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당부해 계속 고민 중이다.”
 
당 일각에서 총리설이 나온다.
“그건 뭐, 설은 항상 나온다. 내가 얘기할 일이 아니다.”
 
원혜영 의원이 ‘실사구시’가 적힌 액자 앞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27년째 의원실에 걸어둔 액자다. 실사구시가 ‘좌우명’이자 ‘정치 철학’ ‘행정철학’이라고 했다. 임현동 기자

원혜영 의원이 ‘실사구시’가 적힌 액자 앞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27년째 의원실에 걸어둔 액자다. 실사구시가 ‘좌우명’이자 ‘정치 철학’ ‘행정철학’이라고 했다. 임현동 기자

원 의원은 국회 등원 횟수론 민주당 ‘넘버 4’다. 이해찬 대표(7선), 정세균·이석현 의원(이상 6선) 뒤다. 선수(選數)를 그렇게 쌓았으나 "계파색이 강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원 의원은 "그건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다르다. 나도 한때 ‘원조 친노(노무현)’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당시에도 핵심 친노들은 나를 별로 안 쳐주더라”고 농담했다.
 
“지금도 친문(문재인)이란 말은 안 나온다”고 했더니 원 의원은 문 대통령과의 과거 인연을 공개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학생운동 동료”라면서.
 
그가 꺼낸 옛이야기가 1975년 11월 있었던  ‘서울대-경희대 연합데모 미수사건’ 이었다.
 
무슨 사건인가.
“서울대-경희대생들이 유신반대 시위를 계획했다가 하루 전날 관련자들이 대거 구속돼 미수에 끝난 사건이다. 나도 그때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이듬해인 (76년에) 같이 감옥 갔다 온 서울대·경희대 친구들끼리 소주 한잔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에 웬 공수부대 복장을 한 사람이 나타났다. 공수 휘장이 달린 모자를 쓰고.”
 
그 사람이 문재인 대통령이었나.
“그렇다. 문 대통령은 시위사건 전(75년 8월)에 강제징집 당했다. 휴가를 나와서 학생운동 동료들이 모인 자리에 온 거다.”
 
무슨 대화를 나눴나.
“같이 소주를 먹으면서 내가 ‘공수부대 가서 고생 많다’고 위로했다. 그 자리에 김정숙 여사도 있었다. 김 여사가 나중에 ‘예전에 원 의원님이 막걸리 많이 사주셨다’고 하더라.”
 
원 의원실에 있는 만화 캐릭터 병풍. 임현동 기자

원 의원실에 있는 만화 캐릭터 병풍. 임현동 기자

학생운동에 매진하던 원 의원은 30세(1981년)에 ‘풀무원 식품’을 창업했다. 87년 6월 항쟁 직후 정계에 입문해 88년 총선에서 한 차례 낙선한 뒤 14대 국회에 등원했다. 경기도 부천에서만 5선(14·17·18·19·20대)을 했다. 2012년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온건파 의원들과 일명 ‘선진화법’(국회법)을 만들어낸 주역으로 꼽혔다.
 
“협치 상실” "국회 기능 마비” 지적이 나오는 현 정국에 대한 원 의원의 해법은 뭘까. 그는 이철희·표창원 등 민주당 초선의 불출마 선언을 두고 "조국장관 사태가 불러온 여러 가지 충격이나 반성이 있다. 당연히 쇄신이 있어야 한다”고 공감했다. 다만 "초선 의원의 사퇴 결심이 물갈이론과 맞물리는 것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며 인적 쇄신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
 
쇄신의 구체적 내용으로 인적 쇄신이 꼽힌다.
“물갈이는 총선 때면 (반복해) 나오는 인기가수 히트곡 같은 거다. 우리 국회처럼 평균 40%, 어떨 땐 반수 이상 싹 바뀌는 문화가 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 중엔 없다. 그렇다고 당과 국회가 젊어지고 수준이 높아졌느냐, 그건 아니다. 오히려 물갈이론을 깨지 않으면 우리 정치의 희망이 없다.”
 
그럼 어떻게 쇄신하나.
“300명 국회의원이 존재감 없는 밥풀, 한 덩어리의 모래알, 여야 대표 또는 원내대표의 전략 재료로 쓰이는 게 만악의 근원이다. 소위 ‘당의 방침’을 내세운 지도부 판단에 (의원들이) 좌지우지돼 여야 정당의 대립구도가 300명 모두의 대립구도로 전환되는 걸 깨는 게 쇄신의 핵심이다.”
 
원 의원은 이날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약팽소선’(若烹小鮮)이라는 말을 소개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을 굽는(삶는) 자세로 정치해야 한다’는 뜻인데, 하나하나 잘 살피고 거기에 맞춰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라고 강조하면서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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