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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거쳐 온 WFP 본부장 “한국 쌀 5만t 거부는 당보다 위에서 결정”

중앙일보 2019.11.03 15:22
김연철 통일부 장관(오른쪽)이 10월 1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원유철 의원의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연합뉴스]

김연철 통일부 장관(오른쪽)이 10월 1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원유철 의원의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달 방한한 존 에일리프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아시아·태평양본부장이 “북한의 한국 쌀 5만t 수령 거부는 노동당보다 더 위에서 결정한 일”이라고 원유철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밝혔다.  
 

북, 한국 쌀 5만t 거부 김정은 국무위원장 지시 시사
“연내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하면 한국 쌀 수령할 듯”
WFP 주장에 정부도 쌀 지원 철회 입장 없어

원 의원실 측은 3일 “에일리프 아태본부장이 9월 평양을 방문해 북한 고위 관료를 만나 한국 쌀 5만t 수령 거부 관련해 원 의원에게 북한 입장을 설명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에일리프 본부장 등 WFP 일행은 원 의원이 주최한 한국아동인구환경의원연맹(CPE)간담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해 북한 식량난, 향후 지원 방향 등을 공유했다고 한다.  
‘북한이 한국 쌀 5만t을 왜 받지 않느냐’는 원 의원의 질의에 에일리프 본부장은 “북한 고위 관료가 한·미 군사훈련에 대한 불만 표출 차원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6월 WFP를 통해 한국 쌀 5만t 대북 지원 방침을 발표했지만, 한 달여 만인 7월 말 북한은 WFP에 쌀 수령 거부 의사를 처음 밝혔다. 그 때 이유로 든 것이 ‘한·미 군사훈련에 대한 불만’이었는데, 이런 입장이 세 달여가 지난 최근까지도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통일부가 국정감사를 앞두고 최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제출한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대북 지원용 쌀 포대(40kg) 샘플. 정부는 WFP를 통해 국내산 쌀 5만t을 북한에 지원할 계획이었으나 북한이 지난 7월 한미연합훈련을 이유로 돌연 수령 거부 의사를 밝힌 뒤 최종 입장을 확인하지 않고 있다.[연합뉴스]

통일부가 국정감사를 앞두고 최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제출한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대북 지원용 쌀 포대(40kg) 샘플. 정부는 WFP를 통해 국내산 쌀 5만t을 북한에 지원할 계획이었으나 북한이 지난 7월 한미연합훈련을 이유로 돌연 수령 거부 의사를 밝힌 뒤 최종 입장을 확인하지 않고 있다.[연합뉴스]

원 의원이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 도발을 계속하는데 정부가 인도적 지원을 해야하느냐’고 묻자 에일리프 본부장은 “당보다 더 위에 결정권자가 있다”는 설명을 했다고 한다. “북한이 쌀 수령 거부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노동당의 입장이고, 결정권자는 더 위에 있다”면서다. 에일리프 본부장은 “북한 정권은 국제사회와 관계에 따라 정책 결정 변화가 급격하게 이뤄진 전례를 봐왔다”며 “연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한국 쌀 수령에 대한 북한 입장도 변화할 거라고 본다. 자신있다”고 말했다고 원 의원실 관계자는 전했다.  
에일리프 아태본부장이 언급한 “당보다 더 위에 있는 결정권자”는 김 위원장을 지칭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의 지시로 한국 쌀 5만t 지원 논의가 중단됐지만, 향후 북·미 비핵화 협상이 잘 풀리면 김 위원장이 한국 쌀을 받을 것이란 취지다.  
에일리프 본부장은 그 근거로 북한의 심각한 식량 상황을 들었다고 한다. “외국에 주재 중인 북한 대사를 두 차례 만났는데, 가뭄과 태풍 피해를 들며 북한에 국제사회의 식량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다”면서다. 그러면서 “WFP 입장에서도 북한이 한국 쌀 5만t을 받지 않는데 캐나다, 호주 등에 가서 대북 인도적 지원 얘기를 어떻게 꺼내느냐고 반문했다”며 한국 쌀을 받으라는 촉구도 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13일 오후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데이빗 비즐리(David Beasley)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을 접견하고 있다.[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13일 오후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데이빗 비즐리(David Beasley)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을 접견하고 있다.[뉴스1]

 
에일리프 본부장의 이같은 설명은 정부에도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북한이 수령을 거부하고 있지만, 한국 쌀 5만t 대북 지원을 철회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북 식량지원 철회 입장을 묻는 질의에 “WFP가 북한과 협의 중”이라고만 답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현대화 공사가 진행중인 묘향산의료기구공장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TV가 10월 27일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공사 결함을 지적한 뒤 "당 중앙위원회 일꾼들이 나와 손발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현대화 공사가 진행중인 묘향산의료기구공장을 시찰했다고 조선중앙TV가 10월 27일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공사 결함을 지적한 뒤 "당 중앙위원회 일꾼들이 나와 손발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달 31일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중앙통신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시험사격 사진.[연합뉴스]

북한이 지난달 31일 초대형 방사포 시험사격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중앙통신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시험사격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북한은 자력갱생을 강조하며 자체 식량 대책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3일 ‘가물(가뭄) 극복도 마음먹기 탓’ 기사에서 “올해 봄철과 여름철에 가물(가뭄) 현상이 나타나 농업 생산에 큰 지장을 주고 있다”면서도 소출 성과를 거둔 평안북도 곽산군과 함경남도 정평군의 모범사례를 소개하며 알곡 수확을 독려했다. 신문은 대표적인 ‘고기 식량’으로 꼽히는 염소 사육을 권장하기도 했다.
원 의원은 “북·미 비핵화 협상을 바라보며 한국 쌀 지원을 하겠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북한의 영유아 등 취약계층에게 인도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정치적 상황과 연동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oeng@joo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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