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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년 만에 첫 흑인 럭비 주장, 남아공 하나로 엮었다

중앙일보 2019.11.03 15:22
남아공 주장 시야 콜리시(가운데)가 일본 럭비월드컵 우승 후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콜리시는 남아공 럭비에서 127년 만에 나온 첫 흑인 주장이다. [사진 콜리시 인스타그램]

남아공 주장 시야 콜리시(가운데)가 일본 럭비월드컵 우승 후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콜리시는 남아공 럭비에서 127년 만에 나온 첫 흑인 주장이다. [사진 콜리시 인스타그램]

 "럭비로 모두가 하나가 됐다."
 

남아공, 일본 럭비월드컵 우승
과거 럭비는 백인의 전유물
만델라 화합의 스포츠로 사용
흑인 주장 콜리시 화합의 상징

올아프리카는 남아공의 럭비월드컵 우승 소식을 전하며 이런 제목을 달았다. 시야 콜리시(28)가 이끄는 남아공 럭비대표팀은 2일 일본 요코하마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19 럭비월드컵 결승에서 잉글랜드를 32-12로 꺾고 웹엘리스컵(우승컵 애칭). 앞서 두 차례(1995, 2005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던 남아공은 뉴질랜드와 나란히 대회 공동 최다 우승국(3회)에 올랐다.
 
콜리시는 남아공 럭비 대표팀에서 127년 만에 처음으로 탄생한 흑인 주장이다. 콜리시는 "현재 남아공엔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현안이 있다. 하지만 럭비는 어려움을 극복한 사례"라면서 "다른 배경, 다른 인종을 가진 선수들이 팀으로 모여 하나의 목표를 향했고, 이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나와 럭비가) 남아공의 모든 아이들에게 영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남아공에서 럭비는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다. 과거 럭비는 흑백 인종 차별의 상징이었다. 럭비는 사립학교 잔디 위에서 하는 백인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흑인은 흙바닥에서 축구를 했다. 그런데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은 1994년 부임 후 럭비 대표팀 지원과 월드컵을 주요 현안으로 삼았다. 흑백 균열을 메울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상징적인 방법이 럭비라고 믿었다.
 
남아공은 1995년 자국에서 열린 럭비월드컵 결승에서 객관적 열세를 뒤엎고 최강 뉴질랜드를 연장 접전 끝에 꺾고 우승했다. 이 감동 스토리는 2010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인빅터스'라는 영화로 제작하기도 했다. 콜리시는 이번 월드컵 시상식에서 만델라가 입었던 등번호와 같은 6번을 달고 뛰었다.
 
이번 대회 남아공 럭비대표팀 출전 선수 15명 중 흑인 선수는 6명이었다. 앞서 우승했던 1995년엔 흑인이 1명, 2007년 대회엔 2명에 불과했다. 폭스스포츠는 "남아공의 우승은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라면서 "'스프링복스(남아공 럭비팀 애칭)'의 첫 흑인 주장이 만델라 대통령의 역사를 재현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5700만 남아공 국민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콜리시의 성장 스토리도 역경을 극복한 남아공 럭비와 닮았다. 레시 에라스무스 남아공 럭비대표팀 감독은 우승 후 "콜리시는 한 때 끼니를 제때 챙겨먹지 못했다"고 말했다. 포트엘리자베스 외곽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콜리시는 15세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배운 럭비는 그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다행히 콜리시는 재능이 뛰어났다. 그는 명문 중고교에 모두 장학금을 받고 스카우트됐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그에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이었다. 그는 학창 시절 신발을 살 돈이 없어 맨발로 다닌 시기도 있었다.  
 
이후 연령대별 대표팀을 거친 콜리시는 2013년 마침내 남아공 국가대표 선수가 됐다. 포지션은 플랭크. 남아공 주장은 지난 6월 잉글랜드전부터 맡았다. 콜리시는 인터뷰에서 "나를 통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해낼 수 있다는 영감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콜리시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나는 조국을 사랑한다. 함께라면 무엇이든 이뤄낼 수 있다"며 웃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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