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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음란물 다크웹 운영자가 낸 500장의 반성문…5만원 대필도 성행

중앙일보 2019.11.03 06:00
아동음란물 다크웹 운영자 손모(23)씨는 재판 중 반성문 500여장을 피해자들이 아닌 재판부에 보냈다. '진지한 반성'이 감경 기준이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아동음란물 다크웹 운영자 손모(23)씨는 재판 중 반성문 500여장을 피해자들이 아닌 재판부에 보냈다. '진지한 반성'이 감경 기준이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아동음란물 다크웹(특정 브라우저로만 접속할 수 있는 비밀 웹사이트) 운영자 손모(23)씨에게 1심 재판부는 지난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감형 이유에는 “손씨가 반성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양형위원회는 성범죄 감경 기준으로 ‘진지한 반성’을 두고 있다. 누가, 어떻게 진지한 반성을 판단하는 걸까.
 
성폭력 전담 검사 출신 이승혜 변호사는 “보통 반성문을 기준으로 판사가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앞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담긴 반성문을 많이 내면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 주로 판결문에 담긴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교도소 수감자들끼리 반성문을 대신 써주는 일도 많다. 반성문 작성 경험이 많은 사람이나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대필하는 식이다. 반성문 제출 시기를 놓고 상의하기도 한다. 실제로 손씨는 1심 재판 중 반성문을 500장 넘게 제출했다.  
 

“최저가 5만원에 모십니다”

온라인에는 돈을 받고 반성문을 대필해주는 전문 사이트도 많다. 포털사이트에 ‘반성문 대필’만 검색해도 광고 링크가 바로 나타난다. 반성문에 관한 정보를 담은 것 같은 각종 블로그 글도 결국에는 “전문가에게 맡기라”며 자신의 연락처를 적어놓는다.  
 
반성문 대필 광고의 주체는 개인부터 법무법인, 행정사사무소까지 다양하다. 가격은 보통 5만~9만원 정도였다. 사안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받기도 했다. 이들은 “학교 다닐 때 쓰던 반성문 생각하면 큰일 난다” “반성문에 적합한 법률용어와 문구를 사용해야 효과적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의뢰인의 마음을 간절하게 담아준다”고 현혹했다.  
 
자신의 반성문 때문에 감형받았다며 감사 인사가 온 카카오톡 메시지를 공개한 이도 있었다. 사진에는 “선생님 덕분에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위반은 혐의없음으로 나오고 대신 일반 성매매로 약식기소 돼 벌금 100만원 나왔다”며 “다 선생님 덕분”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고분고분한 게 좋아요” 거짓 반성 태도 가르치는 이들

문제는 이들이 범죄를 가볍게 여기고 거짓 반성 태도를 가르친다는 점이다. 아청법 위반에 맞는 전용 반성문을 작성해준다는 한 사이트는 “사람이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입건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반성문 대필 절대로 하지 마라』라는 책을 낸 저자는 “아청법은 소환장이 집으로 날아오니 바로 반성문에 대해 구상해야 한다”며 “아청법 걸려서 반성문 써오라는 명령받으면 담당기관에 따지거나 불쾌하다는 뉘앙스를 주지 말고 고분고분하게 따라가는 게 상책”이라고 조언했다.  
 
현재로썬 이런 가짜 반성문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은 없다. 한 재경 법원 판사는 “반성문을 제출하면 다 읽어본다”며 “형식적인 내용이 아닌 정말 반성의 기미가 보이면 양형에 참작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사람이 진지하게 반성하는지 확인하려고 한다”며 “반성문만 갖고 감형되는 일은 없다. 피해자와 합의했는지, 전과 여부 등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양형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낸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법원 조사관들에게 피의자와 만나 실제로 반성문을 쓴 건지, 진지한 반성 태도를 보이는지 직접 살펴보라고 권고하고 있다”며 “그러나 강제사항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조사관이 꼼꼼하게 확인하겠다고 하면 가짜 반성문을 걸러낼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은 법원도 많다”며 “‘반성문으로 승부 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구분해내는 건 현재로썬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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