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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발전소 갈등···100쪽 자료보다 이장님 설득이 통했다

중앙일보 2019.11.02 12:50
2년 전 지은 발전소인데 가동을 못 하고 있다? 최근 한국지역난방공사 보도자료를 받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란 말을 실감했다. 가동 여부를 놓고 지역 주민과 갈등을 이어온 ‘나주 SRF(Solid Refuse Fuelㆍ고체 폐기물 연료) 열병합발전소’가 주민 단체와 현안 해결을 위한 기본 합의서를 체결했다는 내용이었다. 갈등의 한복판에서 합의를 끌어낸 주역인 오세진(51) 난방공사 신재생사업부장의 업무일지를 들여다봤다.

 

2017년 1월. 순탄한 일상

2017년 12월 완공했지만 주민 반대로 가동하지 못한 나주 고형폐기물(SRF) 열병합발전소 전경. [한국지역난방공사]

2017년 12월 완공했지만 주민 반대로 가동하지 못한 나주 고형폐기물(SRF) 열병합발전소 전경. [한국지역난방공사]

‘돈’을 찍어내는 한국조폐공사, ‘길’을 닦는 한국도로공사, ‘집’을 짓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눈에 보이는 공기업이라면, 난방공사는 보이지 않는 공기업이다. 열병합 발전소를 가동해 아파트·빌딩에 냉·난방, 급탕 에너지를 공급하는 게 주 업무다.  
 
지난 1월 발령받은 신재생사업부는 사내 ‘별동대’로 통한다. 전통 화석 연료가 아닌 태양광·지열·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다루는 부서라서다. 총 발전설비 용량 500㎿(메가와트) 이상 가진 발전사업자는 일정 비율을 신재생에너지로 의무 발전해야 한다. 12월 완공 예정인 나주 SRF 발전소도 그중 하나였다. SRF 발전소는 가연성 생활 폐기물, 즉 태울 수 있는 쓰레기를 고체 연료로 만들어 에너지를 만드는 곳이다. ‘의무 방어’만 하면 되는 날이 이어졌다.

 

6월. 뜻밖의 제안  

나주시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올해 말이면 SRF 발전소를 준공하지 않습니까. 준공하기 전 민원 예방 차원에서 주민 설명회를 가졌으면 좋겠는데요.”
 
일리 있는 얘기였다. 지금껏 별다른 민원 없이 조용했지만, 발전소를 실제 가동하면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거부감이 심한 ‘소각장’ 대신 저감 시설을 구축한 친환경 발전소를 지어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취지를 설명하면 좋을 것 같았다. 난방공사가 직접 짓는 SRF 발전소는 처음이라 선례로 잘 만들면 ‘성과’도 될 것 같았다. 나주시 협조를 받아 발전소 인근 5㎞ 내 읍·면·동을 대상으로 순회 설명회를 추진하기로 했다.  
 
그런데 설명회를 열면 열수록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공감하는 주민보다 목소리가 큰 건 머리띠를 둘러매고 ‘결사반대’를 외치는 쪽이었다.

 

9월. 설상가상

나주시청 앞에서 SRF 발전소 가동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시위하고 있다. [한국지역난방공사]

나주시청 앞에서 SRF 발전소 가동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시위하고 있다. [한국지역난방공사]

뉴스에서만 보던 ‘범대위’마저 등장했다. 이름하여 ‘나주 열병합발전소 쓰레기 연료 사용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 노동조합이 주도해 만든 단체였다. 주장이 선명했다. SRF 발전소 폐쇄와 액화천연가스(LNG) 연료 전환. 매주 발전소나 시청 앞에서 정기 집회를 열고 촛불을 들었다.  
 
은연중 각종 지원책을 요구한 기존 지역 주민들과 결이 달랐다. 일체 보상을 거부하고 오직 발전소 폐쇄만 주장하니 답답했다. 같은 공기업 직원끼리 너무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무리 최신 설비로 만들어 환경 위험이 없고, 발전소를 짓지 않으면 대체시설로 소각장을 신설해야 한다고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시나브로 시간은 흘러 발전소는 12월 완공됐다.

 

2018년 8월. 지루한 ‘팩트체크’의 시간

공부부터 다시 시작했다. 흔히 ‘혐오시설’로 불리는 원자력발전(원전)은 어떻게 갈등을 해결했는지 파고들었다. 철저히 주민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산업 쓰레기를 무차별 소각한다”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을 대량 배출한다” “공사가 돈벌이를 하기 위한 발전소다”란 오해에 당당히 “아니다”라고 답할 수 있는 근거를 팩트체크 형식 자료로 정리해서 들고 나갔다.
 
집집이 방문해 “대기환경 보전법상 배출 허용기준 대비 강화한 기준을 적용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악취 배출 저감 시설을 설치해 악취가 나지 않는다” “(경제성은 없지만) 정부 정책에 따라 공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짓는 발전소”라고 설명했다.

 

2018년 12월. 스킨십, 또 스킨십

현장 근무가 많아 모처럼 만에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오세진 한국지역난방공사 신재생사업부장. [난방공사]

현장 근무가 많아 모처럼 만에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한 오세진 한국지역난방공사 신재생사업부장. [난방공사]

아무리 설명해도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며 무조건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풀뿌리 스킨십에 들어갔다. 과일을 깎아놓고, 가벼운 선물도 준비하고, 음식을 대접하며 설명회를 열었다. 잘 진행되는가 싶다가도 막판에 엎질러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설명회에 참석했다는 서명만 받을라 쳐도 “밥 좀 얻어먹었다고 찬성하는 건 아니다”라며 종이를 찢는 경우도 많았다.  
 
터무니없는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보상을 직접, 개인에게 할 순 없었다. 대중목욕탕을 짓거나 청소ㆍ경비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식의 ‘마을 숙원사업’을 해결해주겠다는 쪽으로 풀어갔다. 1억원을 들여 만든 100쪽짜리 팩트체크 자료보다 마을 이장님, 청년회 대표와 스킨십이 중요하다는 게 실감 났다. 어찌 됐든 주민이 거부감을 느끼는 시설을 주변에 들여놓으려면 교감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는 날이 늘어갔다.

 

2019년 1월. 줄 건 주되, 지킬 건 지킨다

돌파구라면 돌파구였다. ‘민·관 합동 거버넌스’를 꾸렸다. 정부와 시·도, 공사, 외부 전문가뿐 아니라 논의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던 범대위까지 끌어들였다. 쟁점을 좁혔다. 진짜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는 ‘환경영향 평가’와 발전소 가동에 대한 주민 찬반을 묻는 ‘주민 수용성 조사’를 하느냐 여부였다.
 
범대위는 환경영향 평가는 반대하면서 주민 수용성 조사는 밀어붙였다. 공사로선 이미 법적 절차를 거쳐 2865억원을 들여 건설한 발전소 가동 여부를 두고 주민 찬반 투표를 요구하는 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결단의 시간이 찾아왔다. 주민 수용성 조사를 받아들이기 위한 선결 조건을 내걸었다. 만약 주민이 반대해 발전소를 폐쇄할 경우 발생할 수천억원대 손실을 보전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10번 넘게 회의가 이어졌다.

 

9월. 미완의 합의

결국 범대위도 발전소 폐쇄 시 손실을 일부 보전하는 조건으로 주민 수용성 조사를 실행하는 내용의 중재안을 들고나왔다. 기본 합의서를 체결하는 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서로 “잘 되길 바란다”며 알듯 모를듯한 덕담이 오갔다. 1년 이내에 세부 시행 방안을 담은 부속 합의서를 맺기로 했다. ‘기본’과 ‘부속’의 간극이 어느 정도일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합·의·서 세 글자로 마침표를 찍기엔 너무도 지난했던 날들이 손뼉 치는 내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돌아오는 길, 불 꺼진 채 열기를 내뿜을 날만 기다리는 발전소가 을씨년스러웠다. 그래, 이제 다시 시작이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김기환의 나공
[나공]은 “나는 공무원이다”의 준말입니다. 세종시 경제 부처와 공기업을 중심으로 세금 아깝지 않게 뛰는 공무원이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각 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며 헌신하는 이들의 고충과 애환, 보람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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