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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황교안·유승민·안철수 연대론 부족, 신당 만들어 판갈이해야”

중앙선데이 2019.11.02 00:30 659호 6면 지면보기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무소속)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 국회 가결 후 당 대표직을 사퇴한 지 2년 10개월 만에 말문을 열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논의가 진행 중인 야권 통합에 대해 한때 집권당의 당 대표를 지낸 그의 입장을 듣고 싶어서였다.

야권 통합 해봤자 여전히 ‘상한 국’
새 정치 국민 열망 마른 들풀 같아
테크노크라트·청년들이 나서야

 
10월 21일 중앙SUNDAY와 국회 의원회관에서 인터뷰하는 이정현 의원(무소속). [전민규 기자]

10월 21일 중앙SUNDAY와 국회 의원회관에서 인터뷰하는 이정현 의원(무소속). [전민규 기자]



그런데 이 전 대표는 지난달 21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정치권 ‘판갈이’를 주장했다. 고 노회찬 전 정의당 원내대표가 2004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시절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고기가 시커메집니다. 불판을 갈 때가 이제 왔다’는 발언을 연상케 한다. 그는 “국이 상했는데 국물만 물갈이하고 건더기는 그대로 둔다면 그 국은 여전히 상한 국이다. 국민은 또 배탈 날 수밖에 없다”며 “40%, 50% 물갈이가 아니라 아예 국그릇을 갈아치우는 판갈이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36년 정치 밥을 먹은 나도 상한 건더기”라고도 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나. 
“당 간사 병(丙)에서 시작해 17단계를 올라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 36년간의 정치를 총정리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시외버스 타고 전국 102개 시ㆍ군ㆍ구를 돌아다녔다. 90여개 전ㆍ후방 군부대 등을 방문했고 23명의 주한 외국 대사와 만났다. 현장 경험은 많았지만, 이론이 부족해 관심 있는 신간이 나오면 저자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다. 해외도 두루 돌아다녔다. 전후 60년 장기 집권을 한 일본 자민당 정치와 2017년 '전진당(En Marche)'을 창당해 대통령이 된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정치를 공부하면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다. 상황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지만,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인상 깊었나. 
“진보와 보수를 모두 끌어안은 ‘캐치올 파티(catch all party)’가 닉네임인 자민당 당사에 가장 많은 장소는 회의실이라고 한다. 한 와세다대 교수는 저에게 ‘박정희의 산업화와 김대중의 민주화가 잘못된 것인가, 따로 존립할 이유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보수와 진보 정당이 싫증 날 정도로 싸우는 것을 그만두고 프랑스의 과거 영광을 찾기 위해 ‘전진하자’고 주장하며 신당을 창당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마크롱 대통령은 시대정신을 읽은 사람이었다.”  
 
한국 정치에 대한 고민도 깊었겠다. 
“제가 막 정치를 시작한 80년대 11대 국회 말이나 지금 20대 국회에나 정치개혁특위는 똑같이 있다. 그런데 우리 정치가 뭐가 개혁되고 쇄신됐나. 정치는 진화하지도, 업그레이드도 못 됐다.”  
 
이 전 대표도 그런 정치를 하지 않았나. 
“나 역시 당 조직에 속해 있는 동안 조직 입장에 충실했다. 평생 동지, 상도동계, 동교동계, 노사모, MB계, 친박계, 친문계 등의 계파정치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유다.”
 
뭐가 문제였나. 
“헌정 70년 동안 우리 정치의 문제는 제대로 된 진단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저 머리 아프면 아스피린 먹고 배 아프면 훼스탈 먹는 식이었다. 어느 정당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유당 시절이나 지금이나 국민을 상대로 선전ㆍ선동하고 가르치려 들고 뭔가 베푼다는 인식을 똑같이 갖고 있다. 선배들이 했던 그대로 따라 했고 무조건 따라야만 공천받을 수 있고 새 인물이 들어와도 선배 다선의원의 구태정치는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국회의원의 임무는 예산 심의와 입법 두 가지다. 예산 심의를 보자. 국회로 넘어온 예산서를 인쇄하면 어른 키로 10배가 넘는다. 예결 위원 50명과 보좌진 중 그 누구도 아마 읽어보지 않고 읽을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상임위나 예결위에선 그 당시 이슈가 된 현안 질의만 주로 한다. 이게 대한민국 국회다. 제대로 예산을 심의하자면 정당 간에 싸울 시간이 없다. 시간은 남고 세비는 많이 받는데 놀 수는 없으니 하는 게 정치싸움이다. 여야는 집권 대통령 비판과 수호를 위한 싸움을 하게 된다. 나도 지금까지는 그 중심에 있었다.”
 
또 다른 문제가 있나. 
“대한민국 국회에는 삼권분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단호하게 얘기할 수 있다. 문재인 정권뿐만 아니라 이전 정권도 모두가 그래 왔다. 자기 당 후보가 대통령이 됐더라도 여야는 입법부의 일원으로서 함께 대통령을 비판ㆍ견제ㆍ감시해야 한다. 여당도 일단 모든 것을 야당 시각에서 봐야 한다. 야당은 비판하고 여당은 내부에서 바로잡아 시정하도록 해야 하는데 무조건 대통령 하자는 대로 부속품처럼 따라가고 옹호하고 있다. 여야 할 것 없이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국회가 국회를 견제하고 있다. 사법부를 보면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지명하고 여당은 청문회 통과를 위해 온몸으로 커버하는데 그게 어디 여당 사법부이지 중립적인 사법부인가.”
 
이정현 의원(왼쪽)이 지난 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이정현 의원(왼쪽)이 지난 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무엇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대한민국 대통령은 왕(king)이다. 어느 대통령이건 당선된 후 지금부터 ‘나는 왕이다’라는 인식이 머릿속에 박힌다. 왕이니까 입법이건 사법이건 모든 것을 다 통치해야 한다. 언론에서도 인수위 시절부터 대통령 당선인에게 황제나 돼야 해결할 수 있는 주문들을 한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선 개헌이 필요하지만, 인식의 전환만 해도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프레지던트(president)’의 의미는 앞자리에 앉은 사람 정도다. 대통령은 왕이고, 그런 왕이 삼권 분립을 무시하고, 국회는 오히려 국회를 견제하고, 여야는 서로 집권을 위한 싸움만 하고, 정치인은 누구든지 왕만 되려고만 하니 대한민국 정치가 엉망이다. ‘대통령이 킹’이라는 인식만 바뀌어도 대한민국 정치가 많이 바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왕이 아니었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지금까지 대한민국 대통령 11명이 모두 왕이었다. 다 불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제 12번째 왕이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 견제를 위한 야권 통합 움직임이 활발하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을 ‘변화무쌍하다’는 뜻으로 쓰는데 난 정치는 ‘수명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정치인은 수명이 다하는 시점이 있고 기존 정당은 수명을 다했다고 본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과제가 있고 주체세력도 늘 바뀌어 왔다. 반군주, 반식민, 반공산주의, 반빈곤, 반독재 시대가 있었고 그 과제를 해결하면 주체세력은 수명을 다하고 교체됐다.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약 20년은 솔직히 시대적 과제도, 주체도 누군지 뚜렷하지 않고 그저 관성에 의해 굴러왔을 뿐이다. 이제 그마저도 소진됐고 기존 정당은 정리돼야 한다고 본다. 80년대 민정당과 민한당에 국민이 염증을 느낄 때 등장한 신민당이나 최근 프랑스의 전진당과 같은 정당이 출현할 때가 됐다. 현장을 돌아보니 국민이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신당 출현이 이번에 가능할까. 
“신민당은 선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임박한 시점에 창당됐다. 지금 새로운 정치세력을 열망하는 국민의 마음은 봄이 돼 건조주의보가 내린 산에 바짝 마른 풀 같은 정도다. 누군가 성냥불을 대면 온 산을 태울 기세다. 산업화, 민주화 세대 선배들은 물론 청년들과 수없이 많은 대화를 해보고 얻은 결론이 이것이다.”
 
황교안ㆍ유승민ㆍ안철수 야권연대 가능성은.  
“상한 국과 건더기를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 봤자 결론은 상한 국이다.”
 
그래도 현실적 대안 아닌가.  
“원하는 곳에 도달하기 위해 배가 없으면 징검다리는 필요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징검다리는 그저 지나치는 여러 개의 다리 중 하나일 뿐이다.”
 
야권통합 세력 간에 박 전 대통령 탄핵 과정의 앙금이 걸림돌인데.  
“그건 (지금 시점에서) 의미가 없다고 본다. 저는 징검다리를 넘어간 뒤의 시대 과제와 새로운 주체세력을 얘기하고 싶다. 11월 후반이나 12월 정도에 풀이 더 바짝 마른 시점이 올 거라고 본다. 국민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그때 대한민국의 미래를 진정 걱정하는 원로들이 조금 거들어주셨으면 좋겠다.”
 
10월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앙SUNDAY와 인터뷰하는 이정현 의원(무소속). [전민규 기자]

10월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중앙SUNDAY와 인터뷰하는 이정현 의원(무소속). [전민규 기자]

 
새 시대의 주체세력은 누구인가. 지난 총선 때 안철수 같은 인물인가.  
 “시대의 큰 변화 중 하나가 ‘메시아 정치’를 깨야 한다는 거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김대중ㆍ김영삼 전 대통령 같은 인물은 어쩔 수 없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 내가 김대중이고 김영삼이라고 주장하는 건 구태정치고 실패한 정치다. 중국 태산(泰山) 천지에 올라가 기를 받았다는 정치인은 모두 실패한다.현장 경험이 풍부한 테크노크라트들이 정치 전면에 나서야 한다. 18대 때 강기갑 의원은 이념은 달랐지만, 농업 분야에선 그만한 테크노크라트가 없다. 나도 촌놈이지만 그분 같은 대안은 내놓지 못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국가를 업그레이드할 외교·안보 전문가, 과학자, 경제전문가 등이 액세서리가 아니라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20명, 30명씩 대거 국회에 진입해야 한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당원이 표를 모아오는 시대가 더는 아니다.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정보를 실시간으로 입수한다. 당원이 자기 부인과 자식의 투표마저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미래 세대의 어려움에 기성세대는 해결책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다. 새로운 정당의 총선 후보자는 25~29세 20명 이상, 40세 이하가 전체의 60%가 돼야 한다. 이런 정당이 생기면 정치 판갈이를 할 수 있다고 100% 확신한다. 이런 인재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누가 리더가 될지 의견이 모일 거라고 본다.”
 
문재인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을 텐데. 
“의미가 없다. 굳이 한마디 한다면 앞으로 늘 말해왔던 대로 민주 정신을 살렸으면 좋겠다. 민주(民主)의 반대말은 민졸(民卒)이다. 지난 2년 반 동안 국민은 졸이었다. 주인은 따로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이 여전히 영어의 몸인데. 
“매일 간절히 새벽기도를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나름대로 생각하는 게 있지만 지금 그분이나 그분의 장래에 관해 얘기할 수 없다. 무슨 얘기를 해도 오히려 그분에게 누가 될 뿐이다.”
 
차세현·유성운 기자 cha.se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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