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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없애라…청소기는 기본, 전기차 무선 충전도 넘본다

중앙선데이 2019.11.02 00:21 659호 13면 지면보기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애플의 공식 온라인 홈페이지는 세계 각지에서 몰린 방문객으로 들썩였다. 이 회사 대표 제품인 스마트폰 ‘아이폰’ 시리즈 때문이 아니었다. 이날 홈페이지에 새로 공개된 무선 이어폰 ‘에어팟 프로’의 정보를 보려는 발걸음이 몰려서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에어팟 시리즈 최신작이다.
 

IT·가전 무선 무한경쟁
도로에 구리 코일 심어 전기 공급
정부 2030년까지 기술 개발 추진

무선 이어폰·마우스 판매량 급증
선 없는 청소기 연 20~30% 성장

에어팟 프로는 기존 에어팟과 달리 귓구멍에 달라붙어 삽입되는 형태로 제작해 외부 소음 차단 성능이 뛰어나다는 소식에 소비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249달러(약 29만원)의 고가에도 이틀 후 미국을 비롯한 25개국에서 출시되자마자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국내 출시일은 미정).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의 인물 사진을 에어팟 프로를 직접 착용한 합성 사진으로 변경하면서 지원사격에 나섰다. 수년 사이 크게 높아진 무선 이어폰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다.
  
소비자 친화적 ‘제조업 서비스화’
 
국내외 산업계에서 ‘무선(無線) 전쟁’이 한창이다. 선(線)을 없애야 선(先)이 되는 시대다. 이어폰처럼 과거엔 유선 형태로만 존재했던 제품이 기술 발전으로 무선 형태로 등장해 기존 수요는 물론 전에 없던 수요까지 창출하고 있어서다. ‘이어폰=유선’ 공식은 애플이 2016년 블루투스(휴대기기끼리 연결해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하는 근거리 무선 기술 표준) 기반의 1세대 에어팟을 내놓고 선풍적 인기를 모으면서 본격적으로 깨졌다. 초기에는 “불편하고 어색하다” “디자인이 별로다” 등 혹평이 나왔지만 이동 중에 긴 선이 꼬여 휴대하기 불편했던 기존 이어폰 대신 써보고 매료된 소비자 사이 입소문이 퍼지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지금은 길거리에서 무선 이어폰을 착용한 남녀노소를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시장이 커졌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4600만대였던 세계 무선 이어폰 판매량은 내년 1억2900만대에 이를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이어폰과 무관해보이던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까지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아마존은 9월 ‘에코버즈’를 선보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2월에 ‘서피스 이어버즈’를, 구글은 내년에 ‘픽셀버즈’를 내놓을 예정이다. 스마트폰과 연동돼 미래 먹거리인 인공지능(AI) 음성 인식 서비스를 수행하는 최적의 기기로 무선 이어폰의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부각돼서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갤럭시버즈’를 내놓으면서 올 2분기 8%의 시장점유율을 기록, 53%의 애플 추격에 나섰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무선 트렌드는 이어폰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가전 업계에선 무선 청소기 열풍이 거세다. 다이슨이 무겁고 큰 기존 유선 진공청소기의 대체재로 내놓은 ‘V’ 시리즈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세계 무선 청소기 시장은 최근 연간 20~30%의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2016년 50만대였던 무선 청소기 판매량이 지난해 100만대로 급증했다. 2015년 국내 첫 무선 청소기로 관심을 모은 LG전자 ‘코드제로’ 시리즈가 점유율 50%대로 1위다. 전선 없이 집안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청소할 수 있고 물걸레 기능 등도 갖춰 인기다.
 
사양세가 뚜렷한 PC 분야에선 마우스와 키보드 같은 주변기기가 무선화로 ‘제2 전성기’를 맞고 있다. 세계 1위 마우스 제조사인 스위스 로지텍은 회사 전체 마우스·키보드 매출의 80%가량이 무선 제품에서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GFK는 국내 마우스·키보드 시장에서 무선 제품 비중이 2014년 31%에서 지난해 52%로 확대된 것으로 집계했다(비(非)게임용 기준).
 
유선 충전만 가능했던 분야가 무선 충전 도입으로 일대 전환기를 맞을 것으로 기대되는 경우도 있다. 전기차가 대표적이다. 지금까지는 전기차에 충전 케이블을 연결해두고 30분 넘게 기다려야 했지만, 주차면이나 노면의 충전 패드로 대체하는 무선 충전 시스템 상용화가 적극 추진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18일 “도로 바닥에 구리로 만든 코일을 심어 전기를 공급하고, 자기장을 통해 도로 위에서 차량 충전이 실시간 가능한 기술 개발을 2030년까지 추진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기존 전기차인프라에 불편함을 느껴 전기차 구입을 망설이던 소비자가 대거 눈을 돌릴 수 있다. 차세대 ICT의 집약체인 드론(무인항공기)도 마찬가지다. 국내외에서 스마트폰처럼 근거리 자기장을 이용한 무선 충전 시스템 관련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컴퓨터 주변 기기 제2의 전성기
 
전문가들은 무선 전쟁이 소비자와 기업 모두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소비자 눈높이에 주목한 무선화 열풍은 글로벌 트렌드인 ‘제조업의 서비스화’가 빨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소비자는 한층 편리한 일상을 얻고, 기업들은 소비자 친화적 기업이라는 마케팅 효과로 고부가가치 창출 기반을 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과제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무선 제품은 가격대가 높아 진입장벽이 아직 높고 전기차 등의 무선 충전도 상용화에 고비용이 들어 투입 대비 산출 효과가 미지수”라며 “기술적 한계 극복만큼 비용 문제 극복도 따져봐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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