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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신데렐라의 꿈, 허무하게 무너지다

중앙일보 2019.11.02 00:03
다이애나 왕세자비, 파경 끝에 목숨까지 잃어... 외과 의사와의 사랑도 이루지 못해
 

조원경의 ‘IF’ - 사랑을 믿는 당신에게(5)
차라리 평범한 사랑이었더라면

평범한 여성이던 다이애나는 영국 왕세자비에 올랐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평범한 여성이던 다이애나는 영국 왕세자비에 올랐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유명인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힘들 수 있다. 상처가 너무 큰 경우 정말 죽고 싶을 때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고인이 된 영국 찰스 황태자의 아내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생각하면 그녀의 큰 눈이 너무 슬퍼 보인다. 집안 간 오랜 친구 사이인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는 세인트폴 성당에서 성대하게 결혼식을 치른다. 이 결혼식은 전 세계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 됐다. 당시의 황홀했던 순간을 떠 올려 본다.
 
“세인트폴 성당 앞에서 한여름의 무더위도 잊은 채 많은 사람이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20세기 동화를 기다리고 있었죠. 다이애나는 젊고 청순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귀족이었지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유치원 보모를 하려던 한 여성의 신데렐라 스토리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언니 사라의 남자 친구 모임에서 조우가 있었고 다이애나는 친척을 잃은 찰스를 위로하게 됩니다. 상심의 시기에 찰스는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고 마침내 청혼을 하고 다이애나는 이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삶은 동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날 누구도 그 결혼이 불행의 서막이 되리라고 예상을 못했지요. 15년 후 그들의 삶은 이혼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곪은 상처는 터져버렸습니다.”
 
 

유치원 보모 하려던 평범한 여성

1981년 7월 29일 결혼식을 마친 찰스 영국 왕세자와 다이애나비가 마차를 타고 버킹엄궁을 향해 가고 있다.

1981년 7월 29일 결혼식을 마친 찰스 영국 왕세자와 다이애나비가 마차를 타고 버킹엄궁을 향해 가고 있다.

둘 사이에 첫 아기인 루이스 왕자가, 둘째 헨리 왕자가 태어났다. 타고난 신체적인 매력과 카리스마를 지닌 다이애나는 가난한 어린이들이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환자들을 돕는 자선 활동을 활발히 벌였다. 그런 가운데 왕세자비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12살이나 많은 남편 찰스와의 불화는 깊어만 갔다. 다이애나는 사람들과의 유대를 중시한 반면, 찰스는 혼자 사색하고 독서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다이애나는 그와 한번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보지 못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를 숭배하는 군중들이 뒤를 쫓아 다녔습니다. 그녀의 헤어스타일 변화와 값비싼 의상은 유행을 이끌기에 충분했죠. 출판업자들은 파파라치에게 거액을 제공하고 다이애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몰래 촬영했습니다. 당시 수백 종의 신문과 잡지 표지에서 그녀의 사진이 게재된 것을 보는 것은 흔한 일과가 되었습니다.”
 
찰스는 다이애나와 결혼 전부터 카밀라라는 여성과 내연관계에 있었다. 그 와중에 다이애나와 결혼한 것이다. 왕세자의 청혼을 기다리던 평민처녀 카밀라. 그녀는 찰스의 친구인 앤드류 파커볼스와 이미 결혼한 사이에서 불륜의 행각을 지속했으니 비난을 받을 만도 하다. 찰스는 카밀라와 만나자마자 첫눈에 반했다고 고백했다. 카밀라와 연애하던 당시 찰스는 해군장교로 잠시 육상근무를 하고 있었으나 이내 바다로 나가야만 했다. 찰스가 함정에 승선해 해외 순항근무를 하는 동안 카밀라는 옛 애인이었던 앤드루 파커볼즈 대위와 재회하게 된다. 둘은 결혼해 카밀라는 찰스를 떠난다. 둘은 1979년 유부녀와 왕세자로 다시 만났고 뜨거운 관계는 금새 이어졌다. 둘의 관계를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카밀라는 남편 앤드루와 이혼하지 않았으며 찰스의 부모는 찰스에게 다이애나와의 결혼을 요구했다. 찰스는 첫사랑을 결코 잊지 못했으며 왕이 되기 위해 희생양으로 귀족 출신의 여성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다이애나는 자신이 왕세자비라는 인형노릇을 위해 뽑힌 걸 알고 절망했다. 다이애나는 불륜을 그만두라고 수없이 요구했으나 찰스는 외면했다. 다이애나는 속이 끓었지만 두 아들을 잘 키우면서 왕실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참아야 했다. 그러나 찰스의 생활은 전혀 나아지는 게 없었다. 다이애나는 시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에게 호소했으나 그것도 안 통했다. 찰스는 계속 내연녀와 관계를 지속했다. 다이애나는 이를 빗대어 “세 사람이 결혼해서 좀 붐볐죠”라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다이애나는 심한 산후우울증과 의기소침, 식욕 부진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사랑이 없는 유명인의 아내로 속된말로 쇼하며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그녀 자신이 이미 유명인이 되었잖아요. 왕실을 공식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시달렸고, 시도 때도 없이 사생활을 침해하는 타블로이드판 신문기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파파라치들에게 끊임없이 추적당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만 쌓여 갔습니다. 헨리가 태어난 후 그녀는 더 이상 결혼을 지속할 수 없음을 느낍니다. 자신의 부모가 이혼을 했기에 이혼만은 하지 않으려 했지만 찰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 거죠. 이들 부부는 사랑이 없었기에 상호 비방을 멈추지 않았어요. 상대방의 모든 것을 까발리는 전기를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양측 모두 불륜을 인정하는 사태의 전개를 거친 끝에 마침내 공식 별거에 들어갑니다.”
 
다이애나는 앤드루 모턴이 쓴 [다이애나:그녀의 진실 Diana:Her True Story]과 텔레비전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왕실이 오랜 협상 끝에 왕세자비와 왕족의 지위는 박탈하는 대신, 두 왕자의 어머니로서 왕실 가족 대우와 ‘웨일즈의 공주(The Princess of Wales)’라는 공식 직함은 유지하도록 했다. 상당한 재산을 주는 것으로 왕실이 합의함으로써 두 사람의 이혼은 최종 확정됐다.
 
“다이애나의 약혼반지는 훗날, 다이애나의 아들 윌리엄 왕자가 케이트와 결혼하면서 프로포즈하는 반지로 사용했습니다. 아버지와 엄마의 결혼생활은 상처로 얼룩졌지만, 엄마는 아들에게 영원한 사랑의 추억으로 기억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다. 다이애나 자신은 불행했지만, 그녀는 어머니로서 기품은 잊지 않았다. 그녀의 생전의 아들들과의 대화를 보자.
 
“나는 윌리엄과 해리를 정말 사랑합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지요.”
 
“나는 가끔 아이들을 힘껏 껴안고서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곤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언제나 ‘엄마’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내 주위에 있다는 게 행복합니다. 아이들은 내 인생의 활력소입니다.”
 
“윌리엄이 ‘나는 크면 경찰이 될 거야. 그래서 엄마를 잘 보호해 줄 거야’라고 말하면 해리는 ‘안돼, 형, 형은 왕이 될 거잖아’라고 말합니다. 윌리엄이 기숙사로 떠나던 날 나는 휴지 상자에 얼굴을 묻고 울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이 머리가 차가운 사람보다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혼 후 오히려 행복했다?

고 다이애나(오른쪽)와 케이트 미들턴이 세인트 매리 병원의 린도 윙 앞에서 갓 태어난 아들을 안고 있는 모습.

고 다이애나(오른쪽)와 케이트 미들턴이 세인트 매리 병원의 린도 윙 앞에서 갓 태어난 아들을 안고 있는 모습.

케이트와 다이애나는 모두 미모의 왕세자비이자, 왕실의 패션 아이콘이다. 케이트가 공식행사에서 다이애나 생전의 패션과 비슷한 느낌을 선보이는 날이면 어김없이 비교하는 사진들이 웹사이트를 장식한다. 대중의 지나친 관심, 막중한 책임감.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고는 하나 왕실 문화가 익숙한 귀족 출신이 아닌 케이트에게 왕세자비의 자리란 참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이애나와 같은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이어서는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유의 신분이 된 다이애나는 자선활동을 줄였지만, 인도주의를 추구하는 인물로 각인돼 그런 활동은 계속했다. 특히 대인지뢰 금지를 촉구하는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지뢰가 터질 때 입은 부상으로 죽어가는 한 앙골라 소녀는 1997년 초 다이애나가 자신의 침대 곁에 앉자 그녀를 천사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그녀는 세계적인 명사로 사람들에게 좋게 인식되기도 했다.
 
이혼 후 1년간은 다이애나 스펜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고 그녀의 친한 친구들이 전한다. ‘천국 같다’는 표현을 하며 왕세자비라는 답답한 옷을 벗어던지고 사는 그녀는 날아갈 것 같았다. 1997년 다이애나는 여름휴가를 부유한 집안의 애인과 보냈다. 그녀의 애인은 영국 최고급 백화점을 운영하는 이집트인 모하메드 알 파예드의 장남 도디 파예드였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제작자로 영국의 상류층 사이에서는 꽤나 바람둥이로 알려진 인물이다. 지중해에서 꿈같은 휴가를 보내던 그들은 파리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파리에서 파파라치의 추격을 피하고 고속 질주하다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는 최후를 맞는다.
 
다이애나가 알 파예드와 알고 지낸 기간은 26일에 불과하며 그가 다이애나의 사저인 켄싱턴궁에서 보낸 시간은 10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휴일용 애인에 불과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알 파예드는 다이애나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진주 팔찌, 불가리 귀걸이 같은 끊임없는 선물공세를 폈다. 다이애나는 그녀의 집사에게 알 파예드가 다음에 반지를 주면 어떻게 해야할지 물었다. 집사는 우아하게 받되 우정의 반지로 보이도록 오른손 넷째 손가락에 끼라고 충고했다. 실제로 알 파예드는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반지를 선물했으며 다이애나는 사망 당시 오른손에 반지를 끼고 있었다. 집사는 알 파예드가 사고 당일 다이애나에게 구혼할 계획이었으며 둘이 결혼할 예정이었다는 등의 소문은 모두 알 파예드의 아버지인 모하메드 알 파예드가 지어낸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다이애나의 죽음 후 국민들의 왕세자비에 대한 애도는 깊어만 갔습니다. 그럼에도 왕실의 침묵은 계속되었죠, 사람들의 비난에 당황한 영국 왕실은 관례를 깨고 왕실 장례식을 텔레비전으로 세계에 방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항구적인 기념사업을 실시할 위원회를 설치했죠. 다이애나는 죽은 후에도 한동안 뉴스의 전면을 차지했습니다. 다이애나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자 세계는 성인(聖人)을 잃은 듯 그녀를 애도했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같은 주에 인도 콜카타에서 세상을 떠난 테레사 수녀의 임종보다 더 많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프랑스 경찰이 파예드의 운전사가 법적으로 음주 상태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자동차 사고의 정확한 원인을 확인하려고 노력하는 중에도 다이애나에 대한 논쟁은 가열됐다. 다이애나를 헐뜯는 사람들은 그녀가 불안정했으며 천박한 인기를 추구했다고 비난했다. 그녀를 숭배하는 사람들은 그녀의 관대한 마음과 케케묵은 군주제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고 칭송했다. 그녀가 죽은 후 찰스는 옛 애인이자 동반자인 여인과 결혼한다. 다이애나의 팬인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할지 모르겠다.
 
“다이애나는 어느 별에 가서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요? 밤하늘을 쳐다봅니다. 저기 저 우뚝 서있는 북두칠성이 그녀의 모습일까요? 세상에 그녀의 가여운 영혼을 달래 주는 이가 무수히 많을 것입니다. 그중 한 남자가 있지 않을까요? 동양의 낯선 남자가 오늘도 다이애나의 슬픈 영혼을 달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찰스와 다이애나의 파탄을 보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반인의 이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요. 무관심과 서로에 대한 상처는 군주제가 사라진 나라에서도 크나큰 아픔으로 다가왔을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헤매는 마음은 일반인이나 왕족이나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장래의 영국 왕의 아내이자 왕자의 어머니이던 다이애나가 영국 군주제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온 것은 사실이다. 다이애나가 20세기 후반에 가장 사랑받은 한사람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데에는 세상의 많은 사람이 동의했다. 이제부터 그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를 해보자. 그녀도 저 하늘의 별이 되어 사랑의 흔적을 추억하며 밤이 찾아오면 그리움의 빛을 멀리서 발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혼 후 만난 진실한 사랑

다이애나 스펜서는 찰스 왕세자와 이혼할 무렵 모든 사람이 자신을 왕세자비로 대하는 것과는 달리 그녀를 평범한 여자로 대하는 외과의사 하스낫 칸을 만나게 된다. 다이애나는 점점 하스낫 칸에게 빠지지만 세상은 그들의 모습을 달갑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다이애나의 집사였던 폴 버렐이 미국 ABC방송 회견에서 밝힌 내용을 보며 그녀의 사랑을 추억해보자. 다이애나는 왕립 브롬톤 병원을 방문했을 때 그를 만났다. 병원에서 왕세자비가 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누군가가 발을 밀어 넣었다. 문이 열렸고 그와의 만남이 시작됐다. 그는 런던에서 연수중이던 파키스탄 출신의 심장외과 의사였다. 다이애나는 첫날부터 홀딱 반해 그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었다. 왕세자와 이혼할 무렵에는 칸과의 사랑에 푹 빠져 그에게 ‘눈이 부실 정도의 멋쟁이(drop dead gorgeous)’라는 의미로 DDG라는 별명까지 붙여줬다. 그녀에게 칸은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거나 몸매가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는 눈이 부실 정도의 멋쟁이였다고 한다. 다이애나는 그와 행복한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차 뒷좌석에 새로운 애인 칸을 태우고 격자무늬 모직물로 덮어 켄싱턴궁으로 몰래 데려오기도 했다. 통상적인 업무의 일부로 런던시내로 외출해 칸을 찾아가서 데리고 오는 건 그녀의 행복의 일부였다. 집사는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한다.
 
“칸을 차에 태워 정문에 폐쇄회로 카메라가 설치돼 있지 않은 마거릿 공주의 거처 맞은편에 있는 사적인 장소로 데려오곤 했습니다. 한번은 밤중에 마거릿 공주 아파트의 블라인드 커튼이 갑자기 열린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왕세자비는 ‘마거릿 잘 자요’라며 뻔뻔스럽게 손을 흔들기도 했습니다. 칸이 비번일 때는 다이애나가 변장을 하고 그의 침실 한개짜리 아파트를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왕세자비는 거기서 접시를 닦고 칸의 옷을 다려주는가 하면 침대시트를 바꾸면서 하루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진정한 모습이었습니다.”
 
심장외과 의사인 칸은 매우 바쁜 사람이었다. 24시간 동안 수술에 매달린 후 만 하루 동안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럴 때면 왕세자비는 며칠씩 그를 만나지 못했다. 다이애나는 그로부터 2~3일간 소식을 듣지 못하면 집사에게 나가서 그를 찾아보라고 부탁하곤 했다. 한밤중에 런던거리로 나가 바와 클럽, 선술집, 식당 등을 샅샅이 뒤진 끝에 한 구석에서 그를 찾아낸 적도 있다고 집사는 회고한다. 다이애나는 도디 알 파예드와의 결혼은 주저했지만 칸과는 필사적으로 결혼하려 했다. 로마 가톨릭 신부를 찾아가 ‘왕세자비가 누군가와 비밀리에 결혼하려는데 증인 없이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으나 ‘절대로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혼의 꿈은 그렇게 끝났다. 왕세자비는 마지막으로 믿을 만한 사진사에게 사진을 찍게 해 그들의 사랑을 공식화하려 했다.
 
다이애나는 미디어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아는 전문가였다. 그러나 칸은 여론의 주목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누가 그런 부담을 안으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는 그만큼 용감한 사람은 아니었다. 왕세자비는 죽기 6주 전인 1997년 7월 칸과의 인연을 끝낸다. 집사는 다이애나가 칸과 있을 때야말로 최고로 행복했었던 시기라고 한다. 집사는 다이애나가 죽던 날 칸이 그를 살릴 수 있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고 통곡했다고 한다. 사고 며칠 후 비탄에 빠진 칸이 전화를 걸어와 자신은 다이애나의 사인이었던 동맥파열 처치 절차를 잘 알고 있다며 “내가 살릴 수 있었는데…”라고 큰 소리로 울었다고 한다.
 
 

“내가 살릴 수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다이애나비의 어머니인 쉔드 키드는 딸을 창녀로 부르고 이슬람교도들과 어울린다며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는 다이애나비가 숨진 뒤에도 딸의 개인 기록물을 상당 부분 없애버렸다. 다이애나가 평범한 사랑을 했다면, 그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을 믿는다면, 신분이 어떠한들 그게 무슨 큰 장애일까. 진정한 사랑만이 중요하리라. 다이애나의 아들들은 신분에 구애 받지 않고, 심지어 평민이거나 이혼녀임에도 새로운 시대에 맞게 뜨거운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다. 부디 선대의 불행이 후대의 불행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불행의 근원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단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출발했다.
 
 
※ 필자는 국제경제 전문가로 현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심의관이다. 대한민국OECD 정책센터 조세본부장, 대외경제협력관 등을 지냈다. 저서로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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