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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직격인터뷰]"내일 당장 망할지 모르는데 벤처가 어떻게 52시간 지키나"

중앙일보 2019.11.01 00:43 종합 28면 지면보기

‘고양이 목에 방울’ 단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 

장병규 4차 산업혁명위원장은 ’스타트업·벤처는 하루하루 버티며 혁신하는 곳“이라며 ’시간 제한까지 받으면서 혁신하기는 상황이 열악하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장병규 4차 산업혁명위원장은 ’스타트업·벤처는 하루하루 버티며 혁신하는 곳“이라며 ’시간 제한까지 받으면서 혁신하기는 상황이 열악하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인공지능(AI) 국가전략’을 올해 안에 제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딴 판이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회원 125만명이 이용하는 모빌리티 서비스 ‘타다’가 법의 심판대에 오르고 인공지능 활성화를 위한 ‘데이터 3법’은 1년째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있다. 오죽했으면 장병규(47)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이 최근 정부에 ‘4차 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을 제출하면서 “이대로는 한국에 미래가 없다”고 쓴소리를 했겠나. 정치권이 침묵하고 있으니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심정”으로 권고안을 만들었다는 그를 만났다. 장 위원장은 앉자마자 허진호 전 네오위즈 대표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건넸다. “지금 겪고 있는 사회 갈등을 잘 정리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우리가 필리핀·아르헨티나보다 나은 나라로 계속 유지될 거란 보장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장 위원장은 권고안을 작성하는 내내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동호의 직격인터뷰]
혁신은 기업이 스스로 하는 것
정부는 ‘페이스메이커’로 충분
국회는 ‘데이터 3법’ 1년째 외면
낡은 틀 안 바꾸면 2등 국가 전락

제조업은 회사에 생산수단 있지만
AI 시대엔 개인이 지식·정보 보유
글로벌화로 노동 형태 다양성 커져
‘기승전 노동·교육 개혁’ 전제돼야

허진호 대표 글에 왜 공감하나.
“그의 말대로 지금 대한민국 운영체계는 근본적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시기다. 그렇지 않으면 한때 ‘한강의 기적’을 이뤘지만, 3만 달러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필리핀이나 아르헨티나처럼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퍼지고 있다. 당·정·청의 협업 관계를 보면 대한민국은 앞 세대 선배님, 아버님·어머님이 잘 발전시켜놓았지만 지금 중대한 도전을 받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현실을 보니 답답하겠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운영체계가 심각한 위기에 놓였다. 좋든 싫든 1970~80년대만 해도 군부·재벌·관료 주도의 사회 질서가 당시로서는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지금은 절차적 민주주의는 완성됐지만, 효과적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관료·재벌·언론·국회·법조 등 사회 주체가 이기주의, 직무유기에 빠져 있어 유기적 협업이 안 되고 따로 논다. 어느 한 곳에서 직무를 유기해버리면 대한민국 미래는 마이너스가 되는 형국이다.”
 
권고안은 현장 목소리를 담았나.
“서론에 해당하는 10여쪽 분량의 권고문은 큰 의미가 있다. 문서가 100여 쪽을 넘기면 솔직히 잘 안 읽게 된다. 180쪽이 넘는 문서를 압축했더니 많은 분이 읽게 되면서 반향이 커지고 있다.”
 
권고안의 핵심은 무엇인가.
“결국 국민의 불안감은 양질의 일자리 부족 문제로 시작한다. 이 문제는 글로벌화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과학기술의 급속한 변화 과정에서 나오고 있다. 여기서 정부나 국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게 문제의식의 출발이다. 단순히 과학기술이나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사회가 변해야 하는 이슈라고 봤다. 이를 위해선 노동 제도, 교육, 사회보장 등 사회 전반의 혁신이 필요하다. 이를 전제로 산업별 맞춤 전략을 담았다.”
 
최대 관심사는 무엇이었나.
“결국 ‘기승전 교육’, ‘기승전 노동제도 문제’였다. 모든 문제를 다루다 보면 ‘인재 양성 어떻게 할 거냐’ ‘사람 어떻게 구하냐’ ‘교육은 어떻게 바꾸냐’ 문제로 귀결된다. 인공지능은 결국 사람이 하지 않나. 그러면 인공지능을 할 수 있는 융합형 인재는 어떻게 키울 거냐.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산업별 맞춤 전략을 하면 혁신 생태계도 바뀌어야 하지만, 이를 위해선 결국 고등교육 얘기가 나온다. 노동·교육 문제까지 얘기한 배경이다.”
 
‘데이터 3법’도 합의를 끌어내지 않았나.
“4차 산업혁명을 위해선 ‘개인정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통과가 절실하다. 그래서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주도해 끝장토론으로 합의하는 ‘규제 혁신 해커톤(hackathon)’이라는 사회적 합의 방식을 시도했다. 개인정보 보호를 주장하면서 정부를 고발한 시민단체까지 참여한 배경이다. 입장 상충에도 결국 사회적 합의문을 도출했다. 국회에 올라간 ‘데이터 3법’의 바탕이 됐다.”
 
그런데 왜 법 통과가 안 되고 있나.
“(국회에서) 데이터 3법과는 관련 없는 법안을 함께 통과시키려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합의가 됐으니 민생법안인데도 ‘국회의 논리’ 때문에 1년 동안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는 왜 다른가.
“생산 수단을 본인이 갖고 있다는 게 큰 차이다. 자동차 공장 근로자는 컨베이어 벨트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에서는 생산 수단이 중요한 게 아니라 머리에 들어있는 지식과 역량·경험·스킬이 중요하다. 출퇴근 같은 시간으로 평가받지 않고 성과로 평가받는다. 실리콘밸리에서 출퇴근 시간을 확인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성과로만 말하기 때문이다.”
 
‘52시간제’는 정말 문제가 많다.
“세계적으로 ‘긱 이코노미’(전문성을 갖고 수요에 맞춰 노동을 제공하는 방식), 플랫폼 노동자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이렇게 노동형태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정책이 돼야 하지 않느냐는 관점의 내용을 권고문이 담고 있다. 그런데 내년 1월부터 50인 이상 사업장도 52시간제가 적용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상당수 스타트업·벤처가 여기에 포함된다. 언제 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하는데 혁신은 언제 하라는 건가.”
 
정부가 현실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
“나는 20대 때 2년 동안 주 100시간씩 일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다. 내 인생을 위해서 한 거다. 스타트업에는 그런 사람들이 꽤 있다. 이런 스타트업에 주 52시간을 적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권리는 뺏는 거다. 내가 2년 동안 일한 다음에 훨씬 오래 일한 대기업 차·부장급과 대화가 됐다. 왜냐하면 기술적으로 그 사람들한테 안 밀리는 거다. 압축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탄력근로제라도 확대해야 할 텐데.
“스타트업에 일하는 사람들은 그것조차도 싫어한다. 총 52시간을 맞추는 법안 자체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 우리를 외국과 자꾸 비교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한국은 자원도 없고 대외 개방성이 굉장히 높다. 일본은 사실상 기축통화국이고, 독일은 통일된 국가로 유럽의 중심에 있다. 이런 나라들과 비교해 거시경제가 튼튼하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한국은 게다가 저출산으로 내수가 위축되고 고령화 세대는 돈이 없다.”
 
‘배틀그라운드’로 유명한 게임회사 크래프톤을 직접 창업한 기업인 입장에서 볼 때 어떤가. 게임 산업도 상황이 녹록지 않은가.
“중국은 200~300명이 야전침대 놓고 주 2교대, 24시간 개발해 모바일 게임을 만들어낸다. 한국에서 이렇게 하면 불법이다. 이러니 경쟁이 안 된다. 그만큼 한국은 일자리가 없어진 거다. 과연 누구를 위한 52시간제 정책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떻게 돌파해야겠나.
“결국에는 ‘혁신 생태계’ 마련이 관건이다. 정부는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그 안에서 기업들이 좌충우돌 해서 전진할 수 있도록 기반을 깔아주는 거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뤄지고 진도가 나간다. 마라톤을 같이 뛰어주는 페이스메이커만 되더라도 좋을 것 같다. 이런 식의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기업인 시각으로 정부에 당부한다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경제는 버려진 자식 같다’고 했다. 정말 경제와 기업은 잊힌 자식 같다는 느낌이 든다. 우선순위가 너무 낮다. 국민 입장에서는 민생이라고 표현하는 경제 문제가 가장 크다. 젊은이들이랑 대화를 나눠보면 남북 관계·검찰 개혁·적폐청산이 어떻다는 얘기보다 훨씬 관심 많은 건 일자리 문제다. 신입 사원한테도 ‘친구들 몇 명 취업했나’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서너명 중의 한 명은 취직 못 했다고 한다. 체감 실업률이 25~30%다. (정치권의) 우선순위가 (경제 중심으로) 조정될 필요 있다고 통감하고 있다.”
 
타다가 불법으로 기소됐다.
“본질적으로 모빌리티 사업은 자율주행차가 온다는 믿음에서 근거하는데, 시간문제라고 본다. 그런데도 혁신 이슈가 검찰에 넘어간 것은 정치권과 정부가 방치한 결과 아니겠나. 과연 대한민국 운영체제가 잘 될까 하는 고민이 있다. 타다 사태가 상징적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권고안이 신속히 실행돼야 할 텐데.
“권고안이 실행 계획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여러 부처에 걸려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 부처로 안 된다. 공감대가 형성되면 정부가 움직일 거라고 기대한다.” 
 
김동호 논설위원
 
※이 기사에는 장서윤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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