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이영종 기자 사진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lee.youngjong@joongang.co.kr

“한국서 ADB 총회하는 내년 5월이 북 가입 타이밍”

중앙일보 2019.11.01 00:33 종합 26면 지면보기

북한과 국제 금융기구 협력 가능할까

지난달 22일 평남 양덕군 온천관광지구를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이설주가 온천욕을 하는 주민과 대화하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달 중순부터 이어진 경제 현장 방문에서 대북제제에 대한 불만과 함께 간부들의 부실한 업무처리를 질책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22일 평남 양덕군 온천관광지구를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이설주가 온천욕을 하는 주민과 대화하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달 중순부터 이어진 경제 현장 방문에서 대북제제에 대한 불만과 함께 간부들의 부실한 업무처리를 질책했다. [연합뉴스]

남북관계가 썰렁해졌다. 당국 대화는 재개 기미가 없고 사회·문화 교류도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경협 재개를 고대하던 정부 당국과 사업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금강산 남측 관광시설 철거’ 언급에 망연자실 상태다. "만나서 금강산 관광을 얘기하자”는 우리 정부 요청에도 요지부동이다. 그제 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 모친상에 조의를 표해왔다지만 큰 기대는 어려워 보인다. 어제 미사일 발사를 통해 ‘조의 표명일 뿐’이라며 북측이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는 점에서다. 북·미 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주변 정세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사이의 친분을 강조해온 북한은 지난 5일 스톡홀롬 실무협상 결렬 이후 대미 강경 메시지 쪽으로 치닫는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도왔던 ADB
사업 많고 돈 안 떼일 북에 관심
“베트남보다 개방 속도 느릴 것”
북한 개발협력 일희일비 말아야

이런 국면 속에서 단기적 응급처방 못지않게 중장기적인 북한 개혁·개방 프로젝트나 통일 대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북한의 비핵화 이후 후속 조치는 물론 포스트 김정은 체제 등 북한의 변동에 다각적으로 대처하는 준비가 지금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국제기구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북 개발협력 방안을 모색 중인 정태용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를 찾아 그 가능성을 타진해봤다.
  
“ADB(아시아개발은행)가 북한에 관심이 많다. 꽤 괜찮은 시장이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지난달 24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라일락룸. 중앙일보와 삼정KPMG가 공동 주관하는 NK비즈포럼 3기 참가 인사들이 정태용 교수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ADB에서 6년 동안 근무했던 경험을 토대로 대북 개발협력 로드맵을 흥미롭게 풀어낸 때문이다. 정 교수는 “ADB의 두 번째 사업이 바로 우리 경부고속도로 건설이었다”면서 “북한이 국제기구의 도움을 받는다면 초기에 ADB가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할 사업도 많고, 무엇보다 돈 떼일 염려가 없기 때문에 ADB가 매력적인 대상처로 북한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돈을 떼이지 않을 것이란 건 무슨 이유 때문이냐’는 질문에 정 교수는 "국제 금융기구가 북한에 투자하는 단계가 된다면 당연히 한국이 보증을 서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ADB 가입 신청 10년째 보류 상태
 
정태용 교수가 지난 달 24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NK비즈포럼에서 ‘북한 개발협력과 국제기구의 지원방안’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중앙포토]

정태용 교수가 지난 달 24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NK비즈포럼에서 ‘북한 개발협력과 국제기구의 지원방안’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중앙포토]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서거나 국제 금융기구로부터의 도움을 받겠다고 결심한다면 ADB가 가장 먼저 평양에 진출하게 될 것이란 게 정 교수의 전망이다. 북한은 이미 1997년과 2000년 두 차례 ADB에 가입을 신청했지만 미국과 일본의 반대로 무산됐다. 현재 세 번째 신청이 10년째 보류된 상태다.
 
유엔 아태경제사회이사회(ESCAP) 회원이면 ADB 가입이 가능한데, 북한은 이미 ESCAP에 들어있다. 결국 미국이 승인하면 언제든지 ADB 가입이 가능하고 개발협력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세계은행(WB) 같은 경우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먼저 가입해야 하는데 북한이 이런 절차를 이행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한다.
 
물론 ADB나 WB 모두 북한의 비핵화 의지나 남북관계, 한반도 정세 등의 변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 교수는 "내년 5월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ADB 총회에서 우리가 발언권을 갖게 된다는 점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부터 상황을 잘 관리해 회원국 가입 선물을 북한에 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향후 우리가 ADB에 대한 공여 폭을 늘려가면서 북한에 대한 지원 목소리를 높여가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정 교수는 덧붙였다.
 
소련 및 동유럽권의 체제 전환과 경제개발 지원을 위해 1990년 설립된 유럽부흥개발은행(EBRD)도 북한 개발협력과 관련해 최근 주목받고 있다. 그 임무를 다했다는 판단에 따라 문을 닫으려 했지만 북아프리카와 몽골 등으로 사업 범위를 넓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는 점에서다. 정 교수는 "EBRD가 몽골에 간다는 건 북한도 갈 수 있다는 얘기”라며 "북한 인프라를 빠르고 많이 건설하려면 가급적 많은 국제 금융기구들이 참여하는 게 좋고 EBRD도 당연히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중 관계를 고려할 때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의 경우도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이 가입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가 따를 것으로 정 교수는 진단했다. 북한 스스로 AIIB에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란 말이다. 정 교수는 "AIIB를 잘 들여다보면 공적 기능이 거의 없는 게 확인된다”며 "말 그대로 투자은행인데, 인프라에 주로 투자하는 은행”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인프라 투자 사업 마저 여의치 않아 다른 투자은행과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런 점은 공적 펀드를 조성하고 있는 ADB와 비교된다. ADB는 사업추진이나 자금운용 과정에서 생기는 이윤을 아시아개발펀드(ADF)에 적립해 저개발 및 극빈국가에 지원하고 있다. 북한도 이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게 정 교수의 분석이다.
  
북한 눈높이에 맞춘 개발협력
 
정 교수는 북한의 눈높이에 맞춘 개발협력 프로그램이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좋은 아이템이라고 판단해 자금이나 자원·지식을 지원해주었지만 수원국(受援國, 도움을 받는 국가)의 입장이나 생각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실패를 통해 얻게 된 교훈이나 타산지석으로 삼을 내용을 알려줘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이 개발독재 형태의 빠른 산업화를 이루긴 했지만 환경이나 노동인권 문제 등을 등한시했다가 지금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는 점은 북한에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남북관계나 북·미 협상의 속도가 나지 않는데 대북투자와 인프라 건설 등 장밋빛 구상에 치중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하지만 북한 개발협력이나 개혁·개방 문제는 지나치게 조급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정 교수의 조언이다. 한 국가체제의 전환이나 인프라 구축 등에는 적어도 한 세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북관계나 국제정세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다음 세대를 위해 조건을 갖춰준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 교수는 "베트남이 1986년 취한 도이모이(doimoi, 쇄신) 정책도 시행 초기 10년간 외국 민간업체가 들어가지 않았다”면서 “북한은 베트남보다 더딘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중국식이다 베트남식이다 하면서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결국 북한은 그들만 독특한 방식을 택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19명의 전문가가 진단한 김정은 체제의 북한 경제
 『가보지 않은 길, 가야 할 길』

『가보지 않은 길, 가야 할 길』

평양의 고층빌딩 숲과 화려한 조명. 그와 대비되는 ‘주민 40% 영양부족’ UN 보고서와 대북 제재. 어느 것이 김정은 체제 북한 경제의 진짜 모습일까.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북한은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경제·농업·임학·도시설계·환경 분야 등 19명의 전문가로 짜인 집필진은 “북한이 현재와 같은 폐쇄적인 계획경제에서는 경제발전을 달성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 국제 무역에 의한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 저자인 강성진 고려대 교수는 북한이 직면한 정치·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동아시아형 체제전환’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 체제를 유지하며 계획경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가격 기능을 중심으로 하는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전략이다. 강 교수는 “북한이 지난해 4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베트남식 개혁·개방에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보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에너지·기후변화 대응 전략과 관련해 정태용 연대 교수는 “북한이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동참하기 위해 유엔 기후변화사무국에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안(INDC: Intended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을 제출한 것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집필진은 “북한이 경제발전 장애물을 스스로 해결할 역량을 키우고 국제사회의 다양한 활동에 동참해야 장기적 경제발전 계획을 실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경제개발을 위한 재원조달, 산업발전, 인력 활용, 농업개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그리고 도시개발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도 담았다.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배너

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이메일 받기를 하시면 기사 업데이트 시
메일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