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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국의 한반도평화워치] 한·미 동맹과 국가 자존심 균형있게 고려해야

중앙일보 2019.11.01 00:28 종합 30면 지면보기

한·미 방위비 협상,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로 가야 하나

2020년에 적용할 방위비 분담금을 결정하기 위한 한·미 협의가 10월 23일(현지시각)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렸다. 한국 측 정은보 수석대표와 미국 측 제임스 드하트 국무부 정치군사국 선임보좌관이 마주 보고 절충안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 한국 외교부]

2020년에 적용할 방위비 분담금을 결정하기 위한 한·미 협의가 10월 23일(현지시각)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렸다. 한국 측 정은보 수석대표와 미국 측 제임스 드하트 국무부 정치군사국 선임보좌관이 마주 보고 절충안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 한국 외교부]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시작됐다. 1991년부터 시작된 이 협상은 이번이 11차 협상이다. 2019년도에는 1조 389억원이었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례 없이  비싼 청구서를 내밀었다. 불행히도 안정적인 미군 주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방위비 협상이 오히려 과격한 반미·친북 단체가 목소리를 높일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어수선한 대내외 정세에서 반미 감정까지 확산할까 걱정된다. 국민 대다수는 최고의 안보, 경제 자산인 한·미 동맹이 온전히 유지되기를 바란다. 방위비 협상도 합리적으로 타결되기를 원할 것이다.
 

전략자산 전개와 훈련 비용 등
새 항목은 점진적 증액이 타당
미군 철수론에 위축되지 말고
성숙한 주권국가 자세로 응해야

이 협상과 관련된 오해부터 풀어보자. 필자는 제9차 협상 수석대표로 임명돼 2013년부터 1년간 미국과 협상했다. 협상은 ▶주한미군 시설에서 일하는 한국 근로자의 인건비 ▶군수 지원비 ▶미군 시설 건설비 등 세 항목이었다. 한국이 지불하는 액수의 90% 이상은 한국인 근로자와 기업들에 돌아온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 협정’의 영문 명칭은 ‘SOFA 협정 제5조(시설과 구역 -경비와 유지)에 관한 SMA(Special Measures Agreement·특별 조치 협정)’이다. 미국은 이를 줄여서 SMA라 부른다. 방위비라는 단어는 영문 명칭 어디에도 없다. 누군가가 한글 이름을 잘못 지은 탓인지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이 방위비, 즉 국방비 분담 협상을 하는 것으로 오해해왔다.
  
한국도 컸고, 미국도 달라져
 
경기도 평택의 미군 캠프 험프리스에서 10월 8일 열린 ‘미 8군 사령부 부대 창설 75주년 기념행사’에서 미군 장병들이 전술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뉴시스]

경기도 평택의 미군 캠프 험프리스에서 10월 8일 열린 ‘미 8군 사령부 부대 창설 75주년 기념행사’에서 미군 장병들이 전술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뉴시스]

한·미 SMA와 유사한 협상을 하는 일본과 독일은 실무선에서 기술적 협의를 하고 언론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유독 한국만 국민적 관심 대상이 됐다. 실제로 이 협상은 주한 미군의 ‘시설과 구역’에 국한된 것이며 한국 국방비(약 50조원)의 50분의 1 에 해당하는 액수를 다뤘다. 올 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방위비 협상에서 유럽 국가들이 트럼프의 압력에 굴복해 연간 110조 원이라는 엄청난 액수를 추가 부담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한국에 별로 참고가 되지 않는다. NATO는 국방비 전체를 협상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미 SMA 협상은 실체보다 과도하게 포장돼 반미 캠페인에 이용되기도 하고, 미군 주둔 자체와 북한 비핵화 협상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확대 해석되기도 했다.
 
이제 트럼프 행정부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협상을 제안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도 많이 컸고 미국도 달라졌다.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미국 국민도 세계의 보안관 역할을 더는 자임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미국은 리더십을 유지하면서도 재정 부담은 줄이고자 한다. 그래서 상당한 비용이 수반되는 항공모함·전폭기 등 전략자산 전개 비용과 같이 ‘시설 및 구역’ 과는 무관한 아이템들이 거론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번 협상이 기존의 SMA 협상과 어떻게 다른지를 국회와 언론에 분명히 설명하고, 그것에 맞게 이름부터 바로 잡고 협상 전략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기존 SMA 협상팀과 새로운 ‘작전 지원 및 훈련’ 관련 협상팀을 별도로 운영하는 것이 전문성과 협상 전술뿐 아니라 대국민 설명 측면에서도 이로울 수 있다. 미국이 SMA 협정의 단순 연장선에서 터무니없이 지나친 요구를 한다고 하면 국민이 납득하기 어렵고 반미 감정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과거의 과대 포장과 유사한 과소 포장의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개념을 정리하고 나서 미국이 요구하는 새로운 항목들에 대해 성숙한 주권 국가의 자세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나 연합 훈련은 한·미 공동의 안보이익에 부합한다. 그에 따른 재정적 부담은 합리적 선에서 분담을 검토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와 관련, 다음 몇 가지를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분담 원칙 정해 단계적 이행
 
첫째, 새로운 항목이 비용 분담에 적절한지 논의하고 분담 원칙을 정한 뒤 수년간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합리적인 내용이라도 한꺼번에 많은 예산을 배정하는 것은 무리다. 기존 SMA에 해당하는 부분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지출하더라도, 새로운 항목은 목표 분담비율을 정해놓고 점진적으로 증액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지난 수년간 국내총생산(GDP)의 2% 국방비 지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안보 무임승차 비판을 받아 온 유럽의 경우와 한국은 완전히 다르다. 한국에는 미국의 갑작스러운 일방적인 요구를 받아들여야만 할 귀책사유가 없다.
 
둘째, 유럽과는 달리 한국은 미군 지원 카투사(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 운영, 평택 미군기지 건설 등 안보 행정 비용을 상당히 많이 지불해 왔다. 특히 중국 코앞에 위치한 평택에 세계 최대 규모의 미 육군기지를 건설하는데 한국민의 세금 10조원 이상이 들어갔다. 전체 건설 비용의 95%에 육박한다. 이런 사실을 미국 조야에 더 널리 알리고 행정부가 정식으로 미국 의회에 상세하게 보고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일부 보도대로 만일 미국이 주한미군 급여의 성격을 띤 지원까지 포함해 협상하려 한다면 그 부분은 별개의 협상 트랙으로 떼어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설 및 구역’ 관련 경비를 제외하고는 미국 정부가 “미국 군대의 유지에 따르는 모든 경비를 부담한다”는 SOFA 협정에 배치되고, 주한 미군 감축 협상으로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분담금 규모에 따라서 주둔 병력 규모가 정해지는 협상이 테이블 위에 오른다 해도 놀랍지만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다. 중장기 관점에서 보면 미국은 해외 군사기지를 일부 통합하고 붙박이로 주둔해 인계철선(Tripwire) 역할을 하는 미군의 규모는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군사 기술과 정치의 변화 때문이다.
 
어차피 해외 미군 전력의 주축은 해군과 공군 그리고 미사일과 미사일 방어(MD)다. 해외 전장에서 뛰는 육군의 대부분은 그 지역 군인이 될 것이다. 전작권 전환 추이와도 관련이 있다. 그러한 협상이 시작된다고 해서 꼭 한·미 동맹 약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안의 성격상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전략적 논의를 해야 한다. 엉거주춤 SMA 협상의 언저리에서 논의할 사안이 아니다. 협상 대표단도 달라야 한다.
 
넷째, 협상 시한을 사안의 내용에 따라 다르게 설정해야 할 것이다. 미군 부대 내 한국 근로자의 월급을 주기 위해서라도 전통적인 SMA 협상은 연말까지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작전 지원과 훈련’ 비용과 관련된 새로운 협상, 더구나 주한 미군 규모와 관련된 국가 안보상 중대한 협상을 하게 된다면 시간에 쫓기면서 해서는 곤란하다. 선례가 없는 새로운 협상 영역으로 들어갈 때는 생각을 잘 정리해야 할 것이다.
  
미, 쿠르드 버리듯 하지 못해
 
덧붙이자면 SMA 비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가 담당하고 비준 후 이행을 감시하는 역할은 국회 국방위원회가 담당하는 이중구조도 개선 방안이 마련되면 좋을 것이다. 2014년 협상 결과 채택된 ‘제도 개선 교환 각서’는 10년 이상 SMA 최대 쟁점이었던 주한 미군의 방위비 분담금 사용 투명성 문제를 개선한 중요 성과물이었다. 그런데 비준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던 이 각서는 그 후 거론된 적이 없고 한국에 유리한 내용인데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한·미동맹의 유지와 국가 자존심 유지를 균형 있게 고려하며 꼼꼼히 따져야 한다. 미국 정부가 국민 세금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한국도 국민 세금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는 결연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그래야 동맹국으로부터도 존중받을 수 있다.
 
우리 협상팀은 협상이 잘못되면 미군이 떠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위축될 필요는 없다. 철군은 감축과는 전략적 의미가 다르다. 미·중 간 패권 경쟁의 와중에 중국에 붙어 있는 북한의 핵이 미국 본토를 겨냥하는 현실에서 미국이 쿠르드족 버리듯이 여기를 떠나기는 어렵다. 북한의 변화와 비핵화가 진행돼 미군 철수를 실제 고려할만한 분위기가 형성될 가능성은 더더욱 낮다.
 
평택 기지의 위치나 규모도 중요 요소다. 많은 사람이 트럼프의 성향 때문에 불안해하지만, 라이벌 중국에 결정적인 승리를 안겨주는 결정은 어느 미국 대통령도 내리기 어렵다고 본다. 한·미 동맹을 더욱 견고히 하고 현대화한다는 목표 아래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합리적이면서도 당당하게 임해야 할 것이다.
 
황준국 한림대 객원교수,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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