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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검찰 옥죄는 규칙, 조국 소환 전 쏟아낸다

중앙일보 2019.11.01 00:07 종합 1면 지면보기
법무부가 31일 제정한 ‘인권보호수사규칙(인권규칙안)’을 두고 졸속 제정 논란이 일고 있다. 법무부가 전날 제정한 훈령인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 이어서다.
 

법무부 “검·언 접촉금지” 다음날
별건·심야조사 제한 규칙 강행
9일간 입법예고 뒤 제정, 졸속 논란
조국일가 관련 수사에 영향 우려

형사사건 공개금지는 국회법 충돌

인권규칙안은 법에 ‘40일 이상’으로 규정된 입법예고 기간을 무시하고 두 차례에 걸쳐 단 9일간의 입법예고만 진행됐다. 인권규칙안은 훈령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안에 제정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법무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부당한 별건 수사와 수사 장기화를 금지하고 장시간·심야조사 요건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인권보호수사규칙’을 오는 12월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앞으로 1회 조사 시간은 총 12시간, 식사와 휴식시간을 제외한 실제 조사 시간이 8시간을 넘길 수 없게 됐다.
 
조서 열람시간을 제외하곤 밤 9시부터 오전 6시 사이에 이뤄지는 심야조사도 제한된다. 수사 중인 사건의 범죄 혐의를 밝히기 위해 관련 없는 사건을 수사하며 피해자를 압박하는 소위 ‘압박수사’, 새로운 범죄 혐의를 찾기 위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한 수사 기간을 부당하게 지연하는 ‘먼지털기식 장기간 수사’도 금지한다.
 
사회적 이목을 끄는 중대한 사건 등을 수사·처분하는 경우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및 관할 고등검찰청 검사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당초 법무부는 인권규칙안을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4일간 한 차례 입법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살다 살다 이렇게 기본도 안 돼 있는 규칙안을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 “검사들끼리 재미 삼아 만드는 동아리 운영안도 이보다는 정제돼 있다” 등 비판 의견이 쏟아지자 법무부가 대검과 협의해 수정안을 내놓았다. 법무부는 수정안을 지난 25일부터 29일까지 5일간 재입법예고했다. 하지만 수정안의 재입법예고에도 졸속 논란은 가시지 않았다.
 
이프로스의 검사 게시판에 인권규칙안 수정안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글이 올라오자 한 검사는 “같은 취지의 법령을 두 번이나 입안하면서도 입법예고 기간은 법령상 기간인 40일에 한참 미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법치주의 사회에서 법 집행을 담당하는 법무부에 법에 규정된 절차를 제대로 지켜 달라는 요청이 그렇게 부당한 것이냐”며 “중요한 법령인 만큼 사후 시비가 없게 적법한 절차와 깊은 숙고가 있길 희망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당 “언론 통제와 국민 눈가리기, 여권 검찰개혁 민낯”
 
인권규칙안은 당장 조국(54) 전 법무부 장관 일가 관련 수사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40일 이상 입법예고를 하지 못하는 ‘특별한 사정’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 외엔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 인권과 검찰 수사에 직접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을 이렇게 졸속으로 처리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법무부가 전날 발표한 ‘형사사건 공개 금지’ 훈령도 당장 기존 국회법 및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과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오며 졸속 논란이 일고 있다. 법무부의 새 훈령에 따르면 기소된 피고인의 경우 공소장 공개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국회의 자료제출 관련 법률에 따라 법무부에 특정인에 대한 공소장을 요구할 경우 법무부가 법률이 아닌 훈령으론 이를 거절할 수가 없다. 법무부의 이번 조치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한규 전 서울변협 회장은 “훈령보다 상위에 놓인 법률이 있는 상황에서 법무부가 훈령을 제정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회 법사위 소속 여야 관계자는 “법무부의 새 훈령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며 “다만 검찰과 법무부가 자료 제출을 거절할 핑계가 생긴 것 같아 법률에 따라 철저히 자료를 요구할 것”이라 말했다.
 
법조계에선 효력 논란뿐 아니라 법무부가 ‘훈령 개정’을 통해 제도를 변경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상당하다. 피의사실 공표의 문제점엔 동감하지만 국민의 알권리 등 다양한 사회적 가치와 결부된 문제를 법무부가 관계 기관 및 언론, 시민 단체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국민의 알권리 등 다양한 가치가 결부된 문제를 다룰 때는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 입법을 거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야권에서도 ‘언론 탄압’이라며 비판했다. 김성원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조국 일가 수사와 때를 같이해 정부와 여당이 그토록 강력하게 추진하려는 검찰 개혁의 민낯이 바로 언론 통제와 국민 눈가리기인가”라며 “이미 제정 과정에서 드러난 법무부의 거짓말과 은폐 행적만 보더라도 훈령이 내재한 문제점이 현실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주장했다.
 
김기정·박태인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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