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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40대서도 급증했는데…비정규직 증가, 나쁜 일 아니다?

중앙일보 2019.10.31 18:47
학교 비정규직 총파업이 있었던 지난 7월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학교 비정규직 총파업이 있었던 지난 7월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김도년의 썸타는 경제]비정규직 최소 37만 증가, 왜? 

정부는 최근 국내 비정규직이 최소 36만7000명 증가한 통계 결과(발표 자료 상으로는 86만7000명)와 관련, "(시간제 증가 등은) 반드시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노인 일자리 확대 등 재정 사업과 일과 삶 균형을 위해 시간제를 선호하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확대되다 보니 비정규직이 늘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도 있다는 것이다. 통계상 비정규직이 '급증'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곧바로 '고용의 질 악화'로 해석해선 곤란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통계를 뜯어보면 주력 산업인 제조업 침체로 고용의 질이 나빠지는 문제도 명확히 드러난다. 제조업 분야와 함께 경제 허리인 40대, 가계 경제 중심축인 남성의 비정규직 증가 속도가 상대적으로 가파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31일 중앙일보는 통계청 '근로형태별 부가조사(2019년 8월)'를 바탕으로 올해 늘어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부의 주장에 맞춰 36만7000명으로 가정하고, 집계된 성·연령·산업별 구성비를 대입해 통계 원자료를 분석했다. 지난해 기준 비정규직 증가 규모가 3만6000명에 그쳤던 것으로 볼 때 이 역시 10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비정규직 36만7000명 증가 가정.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비정규직 36만7000명 증가 가정.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비정규직 증가 규모·속도, 주력 산업 제조업이 1위 

분석 결과 '기타'를 제외한 모든 산업을 통틀어 비정규직 증가 규모가 가장 크고 증가 속도도 빠른 분야는 제조업이었다. 제조업에서만 비정규직이 12만7000명 늘어 증감률은 25.7%를 기록했다. 이는 전체 비정규직 증가율(5.5%)의 5배에 육박한다. 제조업은 지난달까지 역대 최장(14개월) 기간 생산능력이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설비투자도 11개월째 감소 중이다. 경기 부진으로 제조업 전반의 취업자 수는 감소하는 상황(8월 -2만4000명)에서 비정규직만 가파르게 늘어나는 모습이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비정규직 증감률은 '불황형', 남성>여성 40대≒60대 

한국 사회 특성상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은 남성이 여성보다 비정규직이 더 빠르게 늘기도 했다. 남성은 6.7%, 여성은 4.6% 늘었다. 시간제로 일하는 비정규직 증감률은 여성(9.3%)이 남성(7.2%)보다 높아 가사와 일을 병행하려는 여성들의 '파트타임' 선호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전반적인 비정규직 증감률 면에선 가계의 주 수입원 역할을 하는 남성이 여성보다 더 높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특히 한창 왕성하게 경제활동을 할 나이인 40대의 시간제 비정규직 증감률은 11.4%에 달했다. 이는 재정 지원 사업으로 단기 일자리가 급격히 늘어난 60세 이상의 시간제 증가율(11.6%)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또 시간제 비정규직 중 폐업·구조조정 등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계속 직장에 다닐 수 있는 근로자 증감률은 전체 시간제 비정규직(8.7%)보다 낮은 4.5%에 그쳤다. 시간제 근로자의 고용안정성은 2017년 이후로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제조업, 40대 연령층 등에서 비정규직이 빠르게 증가하는 현상은 노인 일자리 확대,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트랜드 변화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고 '불황형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36만7000명 증가 가정.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비정규직 36만7000명 증가 가정.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자발적' 비정규직 는 건 노인 일자리·단기 알바 증가로 설명

정부는 이번 비정규직 통계에서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선택한 비중(55.2%)이 지난해보다 2.2%포인트 높아진 데 주목한다. 실제 자발적 사유로 비정규직을 선택한 근로자 증감률(10%)은 어쩔 수 없이(비자발적) 비정규직을 선택한 근로자 증감률(0.6%)보다 월등히 높았다. 이는 최근 고용동향에서 나타난 특징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올해 8월 기준 정부 노인 일자리 참여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만7000명 늘었고 외국인 관광객 증가에 따른 음식·숙박업종에서의 단기 아르바이트 증가도 눈에 띄었다. 이들 일자리는 생계형이라기보다는 부수입을 추구하는 일자리이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선택한 비정규직일 확률이 높다.
 

"정부·민간 기여도 나눠서 통계 봐야 경기 부진 여파 보일 것" 

이번 통계에서는 비정규직의 근로계약서 서면 작성 비율과 국민연금·고용보험 등 사회보험 가입률이 높아지는 등 긍정적인 모습도 나타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는 통계의 '긍정적' 측면만을 부각하기보다는 경기 부진으로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정부 재정 사업 등으로 비정규직이 늘어난 것과 시장 경기 부진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비정규직으로 대체된 부분을 제대로 구분할 수 있도록 통계 재구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렇게 해야 나빠진 시장 역동성이 고용 통계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조사 방법이 달라지면서 과거의 포착되지 않았던 35만~50만명이 새로 포착돼 비정규직 증가 규모가 과장되게 나왔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 “정부와 청와대의 거짓말이 계속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야권의 대표적인 경제통이다. 유 의원은 “지난해와 올해의 질문들이 똑같은데, ‘병행효과’ ‘환기효과’ ‘심리작용’ ‘시계열 단절’ 등 애매하기 짝이 없는 말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김도년의 썸타는 경제
액수ㆍ합계를 뜻하는 썸(SUM)에서 따온 ‘썸타는 경제’는 회계ㆍ통계 분석을 통해 한국 경제를 파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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