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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약속에 9일만 입법예고…법무부 ‘인권규칙안’ 졸속 제정 논란

중앙일보 2019.10.31 15:35
법무부가 31일 제정한 '인권보호수사규칙(인권규칙안)'을 두고 졸속 제정 논란이 일고 있다. 법에 '40일 이상'으로 규정된 입법예고 기간을 무시하고 두 차례에 걸쳐 단 9일간의 입법예고만 진행됐기 때문이다. 인권규칙안은 법무부가 전날 제정한 훈령인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안에 제정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인권규칙안 제정…"부당한 별건 수사 금지"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법무부는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부당한 별건 수사와 수사 장기화를 금지하고 장시간·심야조사 요건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인권보호수사규칙'을 오는 12월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장시간조사와 심야조사가 엄격히 제한된다. 1회 조사 시간은 총 12시간, 식사와 휴식시간을 제외한 실제 조사 시간이 8시간을 넘길 수 없게 됐다.
 
조서 열람시간을 제외하곤 밤 9시부터 오전 6시 사이에 이뤄지는 심야조사도 제한된다. 다만 조사 대상자가 출국 등을 이유로 서면으로 요청하거나 공소시효, 또는 체포시한이 임박한 경우는 예외다. 수사 중인 사건의 범죄 혐의를 밝히기 위해 관련 없는 사건을 수사하며 피해자를 압박하는 소위 '압박수사', 새로운 범죄 혐의를 찾기 위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한 수사 기간을 부당하게 지연하는 '먼지털기식 장기간 수사'도 금지한다.
 
사회적 이목을 끄는 중대한 사건 등을 수사·처분하는 경우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및 관할 고등검찰청 검사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검사나 검찰 수사관이 이 규칙을 위반해 사건 관계인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적법한 절차를 위반한 경우에는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檢 비판…"절차 무시 이유, 감히 입 밖에 내진 않겠지만"

김오수 법무부 차관이 3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 참석해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오수 법무부 차관이 31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 참석해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초 법무부는 인권규칙안을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4일간 한차례 입법예고 한 바 있다. 하지만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살다 살다 이렇게 기본도 안 돼 있는 규칙안을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 "검사들끼리 재미 삼아 만드는 동아리 운영안도 이보다는 정제돼 있다" 등 비판 의견이 쏟아지자 법무부가 대검과 협의해 수정안을 내놨다.
 
법무부는 수정안을 지난 25일부터 29일까지 5일간 재입법 예고했다. 하지만 수정안의 재입법예고에도 졸속 논란은 가시지 않았다.
 
이프로스의 검사 게시판에 인권규칙안 수정안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글이 올라오자 한 검사는 댓글을 달아 "같은 취지의 법령을 2번이나 입안하면서도 입법예고 기간은 법령상 기간인 40일에 한참 미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법치주의 사회에서 법 집행을 담당하는 법무부에 법에 규정된 절차를 제대로 지켜달라는 요청이 그렇게 부당한 것이냐"며 "중요한 법령인 만큼 사후 시비가 없게 적법한 절차와 깊은 숙고가 있길 희망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방의 한 부장검사도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법무부령(인권규칙안)에 선언문과 차별금지법과 대원칙과 형사소송법까지 차곡차곡 욱여넣어 참 알뜰하게 만들었다"며 "헌법도 좀 넣고 세계인권선언이나 국제인권규약 같은 것도 좀 넣었으면 범 우주적이고 국제적인 법무부령이 됐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시행규칙을 굳이 절차까지 무시해가면서 밀어붙여 만들겠다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사실 누구도 감히 입 밖에 내지는 않지만 다 알고 있지 않으냐"고 적었다.

행정절차법에 따르면 입법예고의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40일 이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文 "10월 내 제정하라"…졸속 처리 논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8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외출하고 있다.[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8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외출하고 있다.[연합뉴스]

인권규칙안은 문 대통령이 지난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검찰개혁 방안을 조속히 이행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10월 내 제정을 약속한 바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최근 다양한 의견 속에서도 국민의 뜻이 하나로 수렴하는 부분은 검찰개혁이 시급하다는 점"이라며 "심야 조사와 부당한 별건 수사 금지 등을 포함한 '인권보호수사규칙'과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형사사건 공개금지에 관한 규정'도 10월 안에 제정하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검찰 안팎에선 10월 내 제정을 목표로 한 법무부가 졸속으로 인권규칙안을 공포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인권규칙안은 당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관련 수사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40일 이상 입법예고를 하지 못하는 '특별한 사정'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 외엔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 인권과 검찰 수사에 직접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을 이렇게 졸속으로 처리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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