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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된 日오키나와 슈리성 전소…"신과 같은 존재" 망연자실

중앙일보 2019.10.31 11:45
31일 새벽 화염에 휩싸인 오키나와 나하시에 있는 슈리성 정전의 모습. [EPA=연합뉴스]

31일 새벽 화염에 휩싸인 오키나와 나하시에 있는 슈리성 정전의 모습. [EPA=연합뉴스]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시 대표 관광지 슈리성(首里城)에서 31일 새벽 화재가 발생해 주요 건물들이 모두 불에 탔다고 NHK, 아사히신문 등이 전했다. 슈리성은 옛 류큐(琉球) 왕국의 상징으로 매년 약 280만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방문하는 오키나와의 주요 관광지다.
 
NHK에 따르면 오키나와 소방당국은 이날 새벽 2시 40분쯤 '슈리성 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는 119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화재진압에 참여한 한 소방당국 관계자는 "정전(正殿)에서 난 불이 북전(北殿)과 남전(南殿)으로 번졌다"고 말했다.
 
소방차 30여대와 소방대원 100여명이 화재 진압에 나섰지만 정전, 북전, 남전 등 주요 건물이 모두 불에 타는 등 큰 피해를 남겼다. 큰 불은 꺼졌으나 소방당국은 아직까지 잔불을 제거하고 있다고 NHK는 전했다. 인명피해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인근 초등학교에 한때 주민 100여명 대피하는 등 큰 혼란이 빚어졌다.
 
31일 새벽 화염에 휩싸인 오키나와 나하시에 있는 슈리성 정전의 모습. [EPA=연합뉴스]

31일 새벽 화염에 휩싸인 오키나와 나하시에 있는 슈리성 정전의 모습. [EPA=연합뉴스]

이날 호외를 발행하고 슈리성 전소 소식을 전하고 있는 지역 신문 오키나와타임즈. [오키나와타임즈 홈페이지 캡처]

이날 호외를 발행하고 슈리성 전소 소식을 전하고 있는 지역 신문 오키나와타임즈. [오키나와타임즈 홈페이지 캡처]

 
붉은색 목조 건축물인 슈리성은 1492년 설립된 옛 류쿠 왕국의 상징이었던 건물이다. 류큐 왕국의 정치·군사·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해온 성으로, 축성 시기는 14세기 중반~14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1879년 마지막 왕 쇼타이(尙泰)를 끝으로 류큐 왕국이 멸망하자 일본 메이지 정부에 넘겨졌다.
 
슈리성은 전쟁 등을 거치며 수차례 소실됐다 복원되는 등 부침을 겪었다. 태평양 전쟁 기간 일본 육군 32부대의 총사령부로 쓰이다가 오키나와 전투 당시 미군에 의해 소실됐다. 이날 화재로 전소된 슈리성은 1945년까지 남아 있던 모습을 바탕으로 1992년에 복원된 것이다. 2000년에는 슈리성 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화재로 전소된 슈리성 정전이 보이는 연못 주변에 취재진과 인근 지역 주민들이 모여들어 안타까운 심정으로 슈리성이 불타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전했다. 인근 지역 주민 미야자토 토요코(84)씨는 아사히신문에 "우리에게 슈리성은 신과 같은 존재였다. 눈물 때문에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역 신문인 오키나와타임스는 이날 호외를 발행하고 슈리성 전소 소식을 전했다.

31일 새벽 오키나와 나하시에 있는 슈리성에서 불이 나 북전 건물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31일 새벽 오키나와 나하시에 있는 슈리성에서 불이 나 북전 건물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복원 직후인 1993년 찍힌 오키나와현 나하시에 있는 슈리성의 모습. [AFP=연합뉴스]

복원 직후인 1993년 찍힌 오키나와현 나하시에 있는 슈리성의 모습. [AFP=연합뉴스]

 
오키나와현 서울사무소에 따르면 최신 통계인 2017년 기준 285만여명이 관광객이 슈리성을 방문했다. 슈리성에서는 지난 27일부터 류큐 왕국 시대의 의식을 재현하는 '슈리성 축제'가 시작됐다. 축제는 내달 3일까지 열릴 계획이지만 이날 화재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NHK에 따르면 오키나와 경찰은 이날 새벽에도 축제 행사를 준비하는 작업이 진행됐다는 내용의 진술을 확보하고 불이 난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슈리성 공원은 내년 7월 24일 개막하는 2020 도쿄올림픽의 성화 봉송 루트이기도 하다.
 
슈리성 복원에 참여한 다나 마사유키(田名真之) 오키나와 현립 박물관·미술관 관장은 "복원의 어려움을 알고 있는 만큼 화재를 믿을 수 없다"며 "자료나 목수가 없는 상황에서 재료인 나무를 대만에서 들여오는 등 (복원에) 많은 사람의 지혜가 담긴 건물"이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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