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文대통령 친서 등 은밀한 외교정보, 왜 일본언론에만 보도되나

중앙일보 2019.10.31 05:00
"일본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엔 ‘가능하면 빨리 두 사람이 만나 미래지향적인 양국 관계를 향해 논의하고 싶다’고 써 있다고 한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오전 일본 도쿄(東京)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스1]

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오전 일본 도쿄(東京)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뉴스1]

 

트럼프 대통령 한국 비판 등 일본 언론만 보도
"내용 못밝힌다"던 문대통령 친서도 일부 보도
"아베 정권,확실한 우군매체 통해 실적 홍보"
기자들 많은 것도 특징, 총리관저만 12명 담당
의원들에게 많은 정보 제공, 새나갈 구멍 많아

이낙연 총리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회담을 보도한 지난 25일자 일본 요미우리 신문 1면 기사의 일부다.  
 
이 총리가 아베 총리에게 건넨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 내용에 대해 당시 양국 정부는 브리핑에서 “친서를 그대로 공개하는 건 외교 관례가 아니다”(한국),"친서는 친서이기 때문에 내용을 소개하지 않겠다"(일본)고 했다. 
 
한국에선 "양국은 협력해야 할 파트너로, 현안도 조기에 해결하도록 노력하자"는 친서의 ‘취지’만 간단히 소개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베 정권과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의 보수신문엔 브리핑엔 없었던 친서의 일부 내용이 소개됐다. 물론 이 보도에 대해 일본 정부가 공식 확인은 해 주지 않았다.  
  
정상급 외교의 은밀한 내용이 일본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9월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9월 25일 (현지시간)뉴욕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FP=연합뉴스]

지난 9월 25일 (현지시간)뉴욕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FP=연합뉴스]

 
일본 총리관저 측은 당시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일 관계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고, 아베 총리는 일본과 한국이 안고 있는 과제에 대해 일본의 입장을 확실하게 설명했다”고만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묻는 질문에도 “외교상의 대화라 구체적인 대화내용은 설명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 안 지나 산케이 신문 계열의 후지TV 등엔 “최근 한국은 북한으로부터도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정부관계자 발’로 보도됐다. 
 
8월말 프랑스에서 열린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 때는 정상들이 모두 참석한 회담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아베 총리를 쳐다보며 “한국의 태도는 심각하고, 현명하지 않다","김정은에게 우습게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는 내용이 산케이 신문에 보도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27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버지니아주 트럼프 내셔널 클럽에서 골프 라운딩을 한 뒤 사진을 트윗으로 공개했다.[트위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27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버지니아주 트럼프 내셔널 클럽에서 골프 라운딩을 한 뒤 사진을 트윗으로 공개했다.[트위터]

  
특히 지난 4월 아베 총리의 방미 때는 통역 외엔 배석자가 없었던 단독 정상회담과 골프 회동에서 두 정상이 나눈 얘기들이 마치 ‘누군가가 불러 준 듯이’ 산케이 신문에 크게 실렸다. 
 
당연히 미국 언론엔 안 실리는 내용들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지난 5월 26일 골프 라운딩 도중 셀카를 찍었다. [일본 총리관저 트위터]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지난 5월 26일 골프 라운딩 도중 셀카를 찍었다. [일본 총리관저 트위터]

왜 이런 고급 외교 정보들이 일본 언론들에만 자주 보도되는 걸까.
  
일본의 언론계 인사들은 아베 정권과 가까운 확실한 우군 매체의 존재를 먼저 거론한다. 
 
일본 유력 언론의 간부는 "한국의 언론들도 이념적 스펙트럼에 따라 정권과의 거리가 모두 다르지만, 일본만큼 정부발 특종이 특정 매체에 집중되지는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아베 정권이 8년 가깝게 이어지면서, 특히 총리관저발 고급정보가 우호 매체로 쏠리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7월 1일 발표된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특종보도한 것도 산케이 신문이었다. 
 
당시 일본 외무성의 핵심 간부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솔직히 어떤 부품이 규제 강화의 대상인지는 신문을 보고 알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국과 관련된 일본 정부내의 움직임이나 방침은 한국에 비판적인 보수 매체에 집중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특히 미·일 정상회담의 내용이 많이 흘러나오는 것과 관련해선 “미·일 동맹 강화, 트럼프 대통령과의 밀월 관계 등 대미 외교 분야의 성과를 중요한 국정 세일즈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는 아베 정권의 특징과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쿄의 외교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과 나눈 대화를 통해 미·일 동맹의 굳건함을 부각하고, 상대적으로 정체된 듯한 한·미 관계와의 대비 효과를 강조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고 말했다. 
  
이밖에 정치부 기자들의 숫자가 월등히 많다는 점도 무시못할 요인이다. 아사히 신문의 경우 총리관저 담당 기자만 12명이다. 
 
한국의 신문사들의 경우 청와대 담당 기자가 많아야 2명 정도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12명이나 되는 출입기자들이 총리관저 내부의 핵심 취재원들을 새벽부터 밤 늦게 까지 '밀착 마크' 하다보니 고급 정보에의 접근 기회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의원내각제인 만큼 국회의원들이 많은 정보를 쥐고 있다는 점도 일본의 특징이다. 정책과 정무 관련 정보가 국회의원들에게 많이 제공된다는 것은 언론이나 외부로 공개될 여지도 그만큼 커진다는 의미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