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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의 시시각각] 허경영의 데스노트

중앙일보 2019.10.31 00:41 종합 30면 지면보기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삶의 긍정적 요소와 부정적 요소 비율이 2.9대 1 이상은 돼야 행복감을 느낀다는 게 바버라 프레드릭슨 미 UNC 교수가 만든 행복 방정식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한 번 질책할 때마다 적어도 세 번은 칭찬할 필요가 있다는 예로도 거론된다. 하지만 칭찬 받을 일과는 담을 쌓고 사는 게 우리 국회다. 9선 의원으로 평생을 국회서 보낸 김종필 전 총재마저 ‘힘은 좋은데 일은 안 하는 머슴 같다’고 평가에 박했다.
 

스멀스멀 커가는 의원 늘리기
노골적 야합 발상도 문제지만
‘증원 불가’ 민심 외면한 폭주

그래도 우린 바둑이건 벤처건 자기 분야서 ‘뜨기만 하면’ 누구든지 종착역이 정치판이다. 이들 전설급 영웅들이 어떤 존재감을 보이거나 정치판을 확 바꿨느냐 하면 그런 건 아니다. 한 때 인기를 자신의 선거나 당의 총선전에 활용한 게 전부다. 배부를 정도로 욕 먹는 걸 아는데도 꾸역꾸역 몰려가는 건 주로 끗발 좋은 국회서 신나게 호통 칠 수 있어서다. 국민 이익엔 등신, 자기 이익엔 귀신이다. 심지어 자기들이 만든 법도 담합해서 안 지킨다.
 
이번 정기국회 역시 그런 기록 하나를 보태고 있다. 도무지 안 지키는 선거법 말이다. 법에 따르면 선거구 인구수 확정 기준일이 다가왔다. 국외 부재자 신고, 예비후보자 등록이 줄줄이 이어진다. 하지만 유권자든 출마자든 지금으로선 아무도 선거구를 모른다. 사실은 선거법을 고치겠다는 여야당과 국회의원도 모른다. 지역구 줄여 비례대표 늘리겠다는 게 개정안인데 슬금슬금 산으로 가고 있다. 의원 정수 늘리자는 말이 나오더니 맞장구가 커간다. 뭐, 개정안을 개정 못한다는 법은 없다.
 
문제는 개정안도, 개정안의 개정안도 정치 개혁과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선거는 선거다워야 한다. 무엇보다 선거 과정이 정상적이어야 선거 결과도 정상적이 된다. 선수끼리 합의한 경기 규칙이 첫 단추다. 그런데 지금 개정안은 한마디로 한국당에만 불리하다는 게 여러 시뮬레이션 결과다. 그런데도 한 쪽 마음대로 바꾸겠다고 한다. 민주당은 지금의 소선거구제를 무조건 바꾸는 게 마치 정치개혁인양 말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소선거구제 도입 당시 야당 대표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여야 동반 당선을 막는 정치 개혁”이라고 했었다.
 
의원 정원을 늘리는 짬짜미 야합이어도 문제다. 대신 특권과 보수를 줄이겠다지만 일단 등가성이 없는 데다 현실화 될 가능성은 더 없다. 선거 때마다 나왔다가 곧 사라지는 유행가 가락이다. 당장 지난 총선에서도 여야 모두 한 목소리로 다짐했었다. 하지만 보좌관도, 세비도 늘리고 올렸다. 대놓고 속아달라는 거다. 의원직을 출세용 벼슬쯤으로 여기니 나오는 국민 무시 발상이다.
 
정치 리스크로 골머리를 앓는 게 우리만은 아니다. 민주주의 본산인 영국마저 그렇다. 영국병을 고친 대처 전 총리는 물러난 뒤 ‘우린 뭔가를 하려고 애썼는데 요즘은 권력에만 관심이 있다’고 줄곧 혀를 찼다. 그래도 어느 나라든 유권자를 의식은 한다. 특혜와 갑질, 무책임과 불신의 대명사란 점에서 이탈리아 국회는 우리와 환경이 비슷하다. 의회 비효율에 대한 비난이 차고 넘친다. 그런 이탈리아 국회마저 국회의원 숫자를 3분의 1 줄이는 법안을 최근 통과시켰다.
 
우린 전세계 최악으로 꼽히는 이탈리아보다 엉터리 싸움이다. 2007년 대선 때 허경영의 황당 공약은 허무맹랑하다는 놀림을 받았다. 잘 봐줘야 기이한 행보로 취급 받았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상당수가 현실화됐다. 노인수당과 출산 장려금이 그렇다. 2022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그의 1호 공약이 국회의원을 100명으로 줄이고, 일단 정신교육대에 집어 넣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게 먹힌다.
 
300명도 많다는 게 국민 공감대다. 모두가 안다. 그런데도 개혁인 양 포장해 늘리자고 고집하면 한방에 훅 갈 수 있다. 허경영 데스노트가 이탈리아선 먹혔다. 그냥 지금 법대로 선거 치르면 최소한 ‘국해의원(國害議員)이란 욕은 안 먹는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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