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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검찰 기자는 받아쓰기만 하라”…이것이 민주 정부인가

중앙일보 2019.10.31 00:36 종합 30면 지면보기
1987년 1월 15일 중앙일보에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박종철 사건’ 특종 보도였다. 28년 뒤 공개된 취재 경위에 따르면 법조팀 소속 신성호(현 성균관대 교수) 기자는 당시 서울지검 공안4과장(이홍규)으로부터 “경찰, 큰일 났어”라는 말을 듣고 취재를 시작해 기사를 작성했다. 중앙일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이 고문치사 의혹을 제기했지만, 정부는 “경찰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며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그 뒤 집요한 언론의 추적으로 경찰의 집단 고문과 정권의 조직적 은폐가 확인될 때까지 관련 보도들에는 ‘오보’ 딱지가 붙어 있었다.
 

‘검사 접촉 금지’는 전두환 정권 때도 없던 일
법무부 보도 훈령, 정부의 영원한 오점 될 것

기자가 검사를 만나는 게 원천적으로 차단된 상태였다면, 그리고 언론사가 수사기관이 공식적으로 알려주는 것만 기사로 썼다면 잔인한 물고문으로 숨진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생 박종철의 죽음은 끝내 ‘원인 불명의 심장마비’로 기록됐을 것이다.
 
바로 그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민주화 투쟁 경력을 자랑하는 이들이 만든 문재인 정부가 1980년대보다 더한 ‘언론 탄압’을 시도하고 있다. 법무부가 어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이라는 새 훈령을 공개했는데, 이 정부의 민주성을 심히 의심케 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이 훈령이 그대로 적용되면 기자는 검사·수사관 등의 검찰 관계자를 일절 접촉할 수 없다. 공보 담당으로 지정된 사람만 만나 그가 알려주는 것만 써야 한다. 전두환 정부 때도 없던 일이다. 검찰 수사와 관련해 오보를 낸 언론사의 기자들은 검찰청 출입이 금지된다. 누가 오보 여부를 판단하는지, 무엇이 오보의 기준인지는 이 훈령 내용에 없다. 정부가 자의적으로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에 ‘오보’ 딱지를 붙일 수 있다는 얘기다. 과거 독재 정권이 “틀린 보도”라며 언론사를 압박할 때도 일괄적 출입금지라는 만행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이 훈령은 다음 달에 예비적으로 적용되고, 12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따라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게 될 경우 기자들의 취재가 지금보다 훨씬 더 제한된다. 검사와 수사관 접촉이 차단되니 검찰이 공개하는 것 이상을 알기가 어렵다. 일부 내용이 부정확한 것을 빌미로 삼아 오보 판정을 내린 뒤에 취재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도 있다. 법무부는 조 전 장관 부인 소환 직전에도 공보 규칙을 바꿔 비공개 출석이 이뤄지도록 했다. ‘인권 존중’을 명분으로 내세운 이런 일들의 최초 수혜자가 늘 조 전 장관과 가족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법무부는 훈령을 즉각 철회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라. 그렇지 않으면 이 조치는 문재인 정부의 오점으로 영원히 역사에 새겨질 것이다. 중앙일보는 자유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이 훈령을 거부할 것임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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