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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의 시선] 사후 14년 만에 땅에 묻힌 ‘국가의 수인’

중앙일보 2019.10.31 00:24 종합 28면 지면보기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며칠 전 신문 국제면 하단에 실린 짧은 기사 한 꼭지에 눈이 꽂혔다. 베이징 특파원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찬바람이 매섭던 2017년 겨울 아침 푸창후퉁(富强胡同)의 허름한 골목길에 있는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의 옛집을 찾아갔다.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공산당 총서기로 발탁된 개혁파 자오쯔양은 천안문 사태 때 무력진압에 반대하고 민주화 개혁을 요구하는 학생들과의 대화를 시도하다 실각했다.
 

자오쯔양 총서기의 뒤늦은 안장
국장 예우 받은 리펑 장례와 대조
천안문 재평가는 언제 이뤄지나

그의 사후 해외에서 출판된 비밀회고록의 제목은 『국가의 수인(國家的囚徒)』이었다. 16년간의 가택연금에 빗댄 것이다. 그는 2005년 1월 17일 숨을 거둔 뒤에도 수인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의 무덤이 중국 개혁과 민주화를 주장하는 세력의 성지가 될까 우려한 당국이 매장 허가를 해주지 않자 유족은 시신을 자택에 모시고 무언의 항의를 계속했다.
 
필자가 푸창후퉁을 찾은 날은 자오쯔양의 12번째 기일이었다. 경찰과 사복 차림 기관원들이 쫙 깔린 가운데 꽃을 들고 자택 문을 두드리는 추모객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필자도 그 틈에 섞여 들어가려 했으나 사전에 연락받은 소수의 지인이 아니면 입장할 수 없었다. 경비원이 교대한 틈을 타 이번에는 ‘외신 기자’ 신분을 밝히고 들어가려 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중국 매체에는 단 한 줄도 보도되지 않는 그런 일들이 매년 기일마다 반복됐다.
 
자오쯔양의 시신이 지난 18일 ‘드디어’ 쉴 곳을 찾았다고 한다. 그의 출생 100주년에 맞춘 마지막 추모회가 열린 바로 다음 날이었다. 더는 혼백을 떠돌게 할 수 없다는 유족의 뜻에 따라 매장 장소에 대한 절충이 이뤄진 것이라 한다.
 
그보다 석 달 전 또 한 사람의 장례식이 베이징에서 있었다. 1989년 천안문의 그 날, 보수파의 대표로 자오쯔양의 대척점에 있던 리펑(李鵬) 전 총리의 장례식이었다. 두 사람의 운명만큼이나 장례식의 풍경도 달랐다. 인민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사망 사실을 알렸고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수뇌부가 영결식에 총출동했다. 그가 주도한 무력진압으로 희생자가 속출했던 천안문 광장에는 조기가 걸렸다. 국장에 버금가는 예우였다.
 
하지만 리펑에 대한 평가는 중국 내에서도 엇갈린다. 대표적인 게 1998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투표다. 그는 10년간의 총리직을 마친 뒤 전인대 위원장으로 추대됐는데 이때 찬반을 묻는 투표에서 유효투표 11%의 반대·기권표가 나온 것이다. ‘거수기’란 불명예스런 별명이 붙은 전인대 역사상 유례가 없는 반대표였고, 공산당 체제가 유지되는 한 깨어지지 않을 기록이다.
 
자오쯔양의 뒤늦은 안장(安葬)과 리펑 장례가 천안문 사건 30주년인 올해 겹쳤다. 비극을 가슴에 묻고 화해하고 포용하라는 하늘의 계시였을까. 그러나 두 사람의 육신이 땅에 묻힌다고 해서 30년 전의 기억까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천안문 사건은 평가가 미완인 채 봉인되고 말았다.
 
사건 당시 중국 지도부는 천안문 사건을 당과 사회주의에 반기를 든 ‘동란(動亂)’으로 규정했다. 이후 중국에서 천안문 사건에 대한 일체의 언급은 금기가 됐다. 인터넷상에서도 사건 발생일, 즉  ‘6·4’를 입력하면 인공지능(AI) 검열로 모두 삭제된다. 네티즌이 ‘6·4’ 대신 ‘5월 35일’이란 기발한 표현을 개발해 냈지만 지금은 검열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당장 감당할 수 없는 일은 먼 훗날 후대의 몫으로 남겨두자는 게 오랜 중국식 지혜다. 덩샤오핑도 당대에 해결 못 할 과제는 후인에 맡기자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중국의 눈부신 발전을 가능케 한 개혁개방은 역사의 재평가에서부터 시작됐음을 기억해야 한다. 중국 공산당은  1981년 11기 6중전회에서 통과시킨 ‘건국 이래 당(黨)의 약간의 역사문제에 대한 결의’를 통해 문혁을 비판하고 마오쩌둥(毛澤東)의 공과를 평가했다.
 
누구에게나 아픈 기억은 있는 법이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당(黨)이든 국가든 모든 행위가 완전무결할 수는 없다. ‘무오류(無誤謬)’ 신앙은 더 큰 오류를 부르는 화근이 된다. 언젠가는 중국 스스로의 손으로 6·4 천안문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이뤄질 것이다. 그 평가가 외부 세계의 인식과 괴리되지 않는 것일 때 세계는 중국이 지향하는 가치를 인정하고 납득할 것이다. 그 때 비로소 중국은 ‘글로벌 리더’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다. 문득 궁금해진다. 14년 만에 땅에 묻힌 자오쯔양은 편안히 눈을 감았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천안문 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예영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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