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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왔다갔다 대입…학부모 “아이에게 미안”

중앙일보 2019.10.31 00:06 종합 20면 지면보기
전민희 교육팀 기자

전민희 교육팀 기자

“이럴 줄 알았으면 자사고에 보낼 걸 그랬다.” 서울의 일반고 1학년에 재학하는 아들을 둔 이모(44·서울 양천구)씨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시 확대’ 발언을 보면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부터 들었다고 했다. 아이는 중3 때 자사고에 진학하길 원했지만,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늘어날 것으로 믿은 이씨가 내신에 유리한 일반고에 진학시켰다. 이씨는 “정부가 갑자기 고1부터 서울 상위권 대학의 정시를 늘리겠다고 하는데, 아이가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했던 동아리 활동이나 수행평가는 쓸모없어 질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의 정시 확대 방침에 학생·학부모의 혼란과 교사단체의 반발이 커지자 교육계에선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가 돼야 할 교육정책이 ‘일일지소계(一日之小計)’가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21일 국회 교육위 국감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정시 확대 여부를 묻는 의원에게 “학종 개선이 우선”이라고 답변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대통령이 국회 연설(22일)에서 “정시 확대”를 밝힌 것을 빗대 나온 말이다.
 
대입의 급격한 ‘유턴’은 정부를 믿고 대입 로드맵을 짰던 학생·학부모의 혼란, 정시 확대에 반대하는 교원단체의 반발을 촉발했다. 지지층이던 전교조와 진보교육감까지 돌아섰다. 28일 이광호 청와대 교육비서관이 “(대통령은) 학종 비중이 높은 서울 일부 대학을 못 박아서 언급한 것” “모든 대학에 적용된다는 것은 오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후폭풍은 여전하다.
 
교육학자 사이에선 “대통령의 교육철학을 모르겠다”란 지적이 이어졌다. 서울 사립대의 한 교육학과 교수는 “정시 확대는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정책과 앞뒤가 안 맞는 면이 많다”고 꼬집었다.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공교육 정상화와 창의·융합교육을 명목으로 수능절대평가와 고교학점제를 공약했다. 수능절대평가는 수능의 변별력을 약화해 대학 지원 자격 여부만을 가리는 자격고사로 만들자는 논의다. 고교학점제는 학교 수업과 평가를 강조하는 학종과 어울린다.
 
정부의 교육철학이 의심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수능 절대평가 방안을 내놨을 때도 여론이 나빠지자 갑자기 1년 유예를 결정했다. 지난해에는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교육부 차관이 몇몇 대학에 전화를 걸어 “정시를 늘려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
 
서울 사립대의 한 입학처장은 “교육제도의 예측가능성, 대학 자율성 같은 가치는 정부의 교육철학에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대학가에서 “조국 사태를 무마시키려는 국면전환용”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면서 방향과 속도를 조정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논의 과정이 투명해야 하고, 국민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한다. 파급력이 큰 대입정책의 변경을 대통령이 직접 공언했다면, 그만큼 명확한 설명이 따라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학생·학부모·고교·대학 모두 뚜렷한 교육철학 없이 정치적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고 의심할 게 뻔해서다.
 
전민희 교육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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