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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9.10.31 00:05 종합 23면 지면보기
29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원제 스님. "수행이 재미나면 뭐가 문제인가"라고 했다. [사진 불광출판사]

29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원제 스님. "수행이 재미나면 뭐가 문제인가"라고 했다. [사진 불광출판사]

“자신이 가지고 지탱해온 등불을 꺼버릴 때, 비로소 원래 있던 환한 달빛이 나온다.”
 

『질문이 멈춰지면…』저자 원제 스님
“우리 삶이 일종의 게임이지 않나”
2년간 세계 45개국 돌며 수행도

29일 서울 인사동 밥집에서 원제(40) 스님을 만났다. 그는 최근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불광출판사)를 출간했다. 13년째 출가 수행자로 살고 있는 그의 마음공부 속살림이 편편이 녹아 있다. 그는 솔직하고, 무겁지 않으면서도, 유쾌하고, 진지했다.
 
그는 원래 서강대 종교학과 00학번이었다. 서울대에 갈 요량으로 재수를 택했으나, 수능 점수가 모자랐다. 우여곡절 끝에 종교학을 하다가 ‘불교’를 만났다. 2학년 때 길희성 교수의 수업 ‘불교의 이해’를 들으면서다. 줄곧 헛돌기만 하던 그의 삶은 비로소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정작 이 과목의 성적은 D를 받았다. 기말고사 때 백지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왜 백지를 제출했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다.”
 
무엇을 다시 시작하고 싶었나.
“늘 고민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그걸 한 단어로 정리하고 싶었다. 당시 내가 정리한 단어는 ‘진리’였다. 나의 20대는 혼란과 방황의 세월이었다. 삶의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게 왜 불교였나.
“불교 초기경전을 읽다가 ‘이 사람, 진짜를 이야기하고 있네’란 생각이 들었다. 불경스럽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 사람’은 부처님이다. ‘이 사람, 진짜네’싶더라. 그러니까 자꾸 찾아보게 되더라. 3학년 때는 서명원(서강대 종교학과 교수) 신부님의 ‘참선과 삶’이란 수업을 들었다. 그때 난생 처음 좌선을 해봤다. ‘아, 여기에 뭔가 있다’싶더라.”
 
2006년에 그는 결국 출가를 했다. 홍대 앞에서 여자 친구에게 출가와 이별을 통보한 뒤 하이힐로 실컷 두들겨 맞고서야 머리를 깎았다. “군기가 가장 빡세다”는 말을 듣고 경남 합천의 해인사로 찾아갔다. 당시 방장이던 법전 스님의 상좌가 됐다. 전국 각지의 선방을 찾아다니며 6년간 수행을 했지만 공부는 생각만큼 쭉쭉 나가지 않았다. 답답하던 차에 2012년 가을, 만행기간에 세계일주를 떠났다. 두루마기 승복을 입고 삿갓을 쓴 채 2년간 5대륙 45개국을 돌아다녔다.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하루 15달러 이하의 숙소에서 자는 게 원칙이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스위스로 갈 때는 짐을 모두 도둑맞았다. 세계일주를 마쳤을 때는 ‘다시는 안 한다’가 최종 결론이었다. 그런데 여행으로 인해 내가 변했더라. 돌아보면 세계일주라는 게 공부가 안될 수가 없는 조건이더라.”
 
원제 스님은 지금껏 20안거를 지냈다. 올해 초 선방에서 수행하다가 까마귀가 “까악! 까악!”하는 소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신도분들이 찾아와서 이런저런 고민을 이야기한다. 나는 ‘개인으로만 살지 말고, 전체로 사세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람들은 ‘나’를 확립하고 세우는 게 수행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 ‘전체’를 인식하는 게 수행이더라. 내가 ‘원제’로 산다고 생각하면 뭔가 확립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그런데 ‘원제 노릇’을 할 뿐이라고 생각하면 사는 게 즐겁다. 그럼 ‘무엇이든 와라’라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런 생각이 드나.
“무엇이든 상대하고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니다. 아무 것도 가질 게 없으니, 무엇이든 잘 보내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원제 스님은 컴퓨터 게임도 즐겨 한다. 네이버의 게임카페 ‘문명 메트로폴리스’에서 그의 닉네임은 ‘몽크 원제’다. 승복에 삿갓 쓴 사진도 올라가 있다. “도시를 건설하는 게임 ‘문명’을 좋아한다. 세계일주를 할 때 스톤헨지나 타지마할 등에 가서 게임에 등장하는 현장의 실제 견문록을 써서 카페에 올렸다. 성실하고 알차게 썼다. 아니나다를까. 게임 카페에서 추천을 엄청나게 받았다. 결국 글 쓰는 코너를 따로 하나 받았다. 거기서 젊은이들과 게임을 통해 소통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일종의 게임이지 않나.”
 
인터뷰 말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선방’이나 ‘수행’ 하면 사람들은 고통을 참고, 견디고, 인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수행이 즐겁고 유쾌하면 뭐가 문제인가. 수행은 수행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진리에는 승속이 따로 없다.” 원제 스님이 처음에 생각했던 책 제목은 ‘부처님은 놀지 못하지만, 스님은 놀 수 있다’였다. 그가 말하는 ‘놀이의 삶’은 장자가 설한 ‘노닐 유(遊)’와도 통하는 삶이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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