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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4호기 전광판에 ‘1400㎿’…부·울·경 전력 12% 만든다

중앙일보 2019.10.31 00:05 경제 2면 지면보기
29일 정부 ‘탈원전’ 정책의 역풍을 온몸으로 맞은 한국수력원자력의 부산·울산 원자력발전(원전) 현장을 둘러봤다. 40년 가동을 마치고 퇴역한 ‘고리 1호기’(과거)와 갓 운전을 시작한 ‘신고리 4호기(현재)’, 건설에 한창인 ‘신고리 5·6호기(미래)’다.
  

한국 원전 과거·현재·미래 가보니
40년 수명 다하고 멈춘 고리 1호
사용후핵연료 485다발만 남아

마지막 원전될 5·6호기 건설 한창
외벽만 137㎝ 항공기 충돌도 견뎌

“원전 잘 관리해 가동수명 늘려야”
탈원전 연착륙할 출구전략 필요

#과거. 해체 앞둔 ‘산업 역군’
 
국내 원전 1호인 고리 1호기에서 사용후 핵연료가 수심 12m 수조에 담겨 있다.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국내 원전 1호인 고리 1호기에서 사용후 핵연료가 수심 12m 수조에 담겨 있다.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높은 철책과 허리춤에 총을 찬 청원경찰, 쓰나미를 막기 위한 10m 높이 차수벽을 거치고서야 고리 1호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퇴역(退役)했지만 이곳이 ‘1급 국가보안시설’ 원전이라는 점이 실감 났다.
 
원자로에서 만든 증기로 발전기를 돌리는 ‘터빈실’에 들어서자 40년 업력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점이 눈에 띄었다. 권양택 한수원 고리1호기 소장은 “원자로는 영구 정지했지만, 시설을 유지하고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냉각·전력·방사선 감시 설비 등을 그대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출력 ‘0’을 가리키는 주 제어실에 들어서자 수백개 스위치마다 ‘플라스틱 커버’가 씌워져 있었다. 권 소장은 “작업자가 당황했을 때 누르거나 물건이 떨어져 스위치를 오작동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푸른빛 물(붕산수)이 가득 담긴 12m 깊이 수조(사용후핵연료저장소)엔 쓰임을 다한 핵연료 485다발이 ‘수장’돼 있었다.
  
#현재. 가동 시작 ‘최신 원전’
 
신고리 3·4호기의 전경. 신고리 4호기는 지난 8월 상업 가동을 시작했다.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신고리 3·4호기의 전경. 신고리 4호기는 지난 8월 상업 가동을 시작했다.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원전 ‘신생아’인 신고리 4호기는 지난 8월 상업 가동을 시작했다. 향후 60년 가동할 토종 원전(APR1400 노형)이다. 아랍에미리트(UAE)에도 수출했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이라 숨을 멈춘 고리 1호기와 달랐다. 터빈실에 들어서자 ‘웅’하는 굉음으로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원자로에서 내뿜는 열기로 훈훈했다. 반대로 수조는 아직 쓰고 난 핵연료가 들어차지 않아 푸른 빛 물만 비쳤다.
 
‘무균실’을 연상시키는 주 제어실로 들어서자 출력 전광판에 ‘1400㎿(메가와트)’가 깜빡거렸다. 부산·울산·경남 전력소비량의 12%(2017년 기준)를 이곳에서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숫자였다. 하훈권 4호기 운영실장은 “주 제어실이 화재 등으로 상주하기 어려울 경우 아래층에서 원격 조종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래. ‘마지막 원전’ 될 운명
 
공사가 진행 중인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의 모습.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공사가 진행 중인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의 모습.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인근엔 2024년 완공 예정인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한창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하고 원전 수명을 연장하지 않기로 하면서 국내 ‘마지막 원전’으로 남을 운명에 처한 현장이다.
 
아파트 24층 높이 ‘돔형’ 격납 건물을 짓느라 크레인 수십 대가 바삐 움직였다. 콘크리트 외벽 두께만 137㎝, 안에 들어가는 철근은 직경 57㎜다. ‘9·11테러’처럼 외부에서 항공기가 충돌하더라도 견딜 수 있다고 했다.
 
일반 건설 현장과 달리 맨땅에 기반을 다지는 게 아니라 두꺼운 화강암층이 있는 곳을 찾아 위에 콘크리트를 붓는 식으로 기초 공사를 한다. 강영철 신고리 5·6호기 건설소장은 “진도 7 규모 지진에 ‘견디는 게’ 아니라 ‘제 기능을 하는’ 정도 수준으로 짓고 있다”며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원전”이라고 소개했다.
 
정부는 고리 1호기 해체를 계기로 ‘장밋빛 미래’를 그린다. ‘블루오션’인 원전 해체 시장을 새로운 먹거리로 키우겠다고 강조한다. 한수원은 향후 100년간 세계 원전 해체시장 규모가 549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하지만 의욕과 달리 실제 원전을 해체한 경험이 없어 기술·인력·제도가 모두 달린다. 곽대훈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원전 해체 상용화 기술 58개 중 13개(22.4%)를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 성풍현 KAIST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국내 원전해체 기술은 미국 대비 80% 수준”이라며 “원전 건설·수출과 달리 해체 기술이 선진국 수준에 올라서려면 최소 6~7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체 시장을 한국이 가져간다 하더라도 원전 건설·수출과 비교하면 덩치가 작다. 2017년 기준 원자력 관련 분야 기업 총매출액은 80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해체 분야 매출은 3600억원(0.45%)에 불과하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에선 원전 문을 닫으면서 해체 산업을 키우는 건 손발이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물론 현실적으로 원전을 늘리는 건 쉽지 않다. 중국·러시아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원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는 추세다. 국내 탈원전 반대론자조차 ‘속도 조절’을 주문하는 수준이다. 다만 뛰어난 원전 기술을 갖춘 반면 신재생에너지 발전은 유독 불리한 국내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에너지업계 전문가는 “현재 운영하는 원전을 잘 관리해 최대한 가동 수명을 늘리는 게 우선”이라며 “원전 해체산업 기술력과 신재생에너지 효율성을 높여 국제사회 흐름에 발맞추는 게 탈원전을 연착륙시키는 ‘출구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울산=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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