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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2035] 조커의 시대

중앙일보 2019.10.30 00:23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가영 사회2팀 기자

이가영 사회2팀 기자

중고가구값을 깎아주지 않아 처음 보는 여성을 죽였다는 뉴스를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한쪽에서는 중학생들의 집단 폭행 기사가, 다른 편에서는 화성 연쇄살인사건 소식이 신문 1면을 장식한다. 영화 속 악당 같은 이들과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들은 왜 악이 되었는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룬 해석은 흥미롭다. 한국을 공포에 빠뜨렸던 연쇄살인범 정두영,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은 공교롭게도 1968~70년에 태어나 1999~2009년 범행을 저질렀다. 박지선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이들의 출생 시기는 한국전쟁 이후 모두가 가난했던 시기를 지나 경제적 수준 등 격차가 크게 벌어지기 시작한 시점”이라며 “범행을 시작한 30대 역시 본인의 또래 집단에서 직업 등 실질적인 격차를 체감하게 된 연령대”라고 말했다. 경쟁에서 뒤처진 이들의 마음속엔 ‘나는 이 사회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 속 조커도 비슷하다. 부자로 대변되는 토마스 웨인은 가난한 이들이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비판한다. 조커는 과연 노력하지 않았을까. 어렸을 때 입양돼 학대를 당하고 홀어머니와 쓰러져가는 아파트에 살면서도 그는 아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실한 코미디언 지망생이었다. 그러나 어릿광대라는 이유로 맞아도 하소연할 곳 없었고, 우러러보던 이에게는 비웃음의 대상이 됐다. 그는 살인을 저지른 후에야 세상에 주목받는다.
 
이 시대의 조커는 개인의 문제인 걸까, 사회의 문제인 걸까. 정남규는 어렸을 때 성폭행을 당했고, 정두영은 친모에게 두 번이나 버려졌다고 한다. 물론 “그런다고 모두가 연쇄살인마가 되지는 않는다. 합리화하지 말라”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분명하다. 개인의 일로만 치부한다면 조커의 탄생을 막을 수 없다. 고담시의 예산 삭감으로 조커는 무료 정신과 상담마저 받지 못하게 된다. 그곳의 상담사 이야기가 귓가를 맴돈다. “아무도 우리 같은 사람은 신경 쓰지 않아요.”
 
이가영 사회2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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