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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文 정부 ‘부동산 정치’

중앙일보 2019.10.30 00:03
집값 안정보다 증세와 총선 승리가 정책의 종착역?
 

특별기획 - 총력분석

■ 10·1 부동산 대책에도 전국 집값 상승… 경제 심리 위축될수록 서울 아파트 인기
■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 갱신제에 시장은 선제 대응, 10년 장기 전세도
■ 집 소유 여부에 따라 좌우 정치이념 투영돼… 한국당은 주택담보 대출을 집권 플랜으로
 
‘평당 1억’ 시대를 연 서초구 잠원동 신축 아파트 아크로리버파크. 그 앞에 재건축 시 분양가 상한제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는 반포주공 1단지가 보인다.

‘평당 1억’ 시대를 연 서초구 잠원동 신축 아파트 아크로리버파크. 그 앞에 재건축 시 분양가 상한제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는 반포주공 1단지가 보인다.

부동산에는 중도가 없다. 유주택자, 무주택자 둘 중 하나다. 집을 사들이지 않는 행위도 투자다. “매입할 의사는 있지만 너무 올라서 관망 중”이라는 사람은 엄밀히 말해 중간층이 아니다. ‘부동산 대신 현금에 베팅 중’인 부류다. 집의 소유 여부는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재료로 작용한다. 소유냐, 전·월세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frame)이 달라질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저서 [부동산은 끝났다]에서 ‘부동산 정책은 정치, 사회 쟁점’이라고 단언했다. “집값이 올라도 걱정, 내려도 걱정이다. 국민은 부동산에 인질로 잡힌 형국이다. 지난 40년간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반복했다. 정부 정책은 언제나 도마 위에 오른다.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크게 보자면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을, 그에 필요한 규제는 다 풀 것’을 강조하는 그룹이 있고, ‘싸고 좋은 집(반값 또는 반의반값)을 대량으로 공급’할 것을 주장하는 그룹이 있으며, ‘불로소득을 원천적으로 없애면 저절로 해결된다’고 주장하는 그룹이 있다.”
 
이렇듯 도시계획, 세금, 대출, 공공임대주택, 분양가, 전·월세 제도 등의 부동산 정책은 정치적 이념에 따라 해법이 뚜렷하게 갈린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 문재인 등 진보 성향 정부에서 서울 집값은 급등했다.
 
한국감정원은 9월 26일 ‘서울 아파트 주간 상승률이 최근 50주 만에 최대 상승 폭을 나타냈다’고 발표했다. 10월 10일 기준 15주 연속 올랐다. 기세는 지방으로 퍼져 전국 아파트값도 2018년 10월 마지막 주 이후 47주 만에 오름세로 전환했다. 재건축 대장주로 꼽히는 서울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는 역대 최고인 22억원(82.61㎡)에 거래됐다.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가 재개발·재건축을 겨냥한 분양가 상한제를 예고했음에도 위축되지 않았다.
 

‘평당 1억’ 시대 앞당긴 규제의 역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의 평당 1억원 거래가 등장했다. 24평형(59㎡)이 8월 14일 23억9800만원에 팔린 것으로 확인됐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를 8월 12일 예고했다. 불과 이틀 후, 시장은 갈 길을 간 것이다.
 
이 여파로 김 장관은 10월 2일 국정감사에서 “(분양가 상한제 도입 명분으로) 내가 말한 평당 1억원은 아파트 시세가 아니라 분양가였다”라고 해명해야 했다. 8월 13일 김 장관은 “과천에서 (평당 분양가가) 4000만원까지 나왔다는 것은 강남에서 6000만원, 8000만원이 나온다는 것이고, 시세가 1억원이 된다는 것인 만큼 이런 시그널을 막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분양가 상한제를 확대한다”고 말한 바 있었다.
 
정부가 규제하면 할수록 집값이 올라가자 시장 기능을 중시하는 전문가들은 “재개발·재건축만 풀어줘도, 정부는 돈 들이지 않고 서울 요지에 공급을 확대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경제통인 최운열 민주당 의원은 “양도세를 일시적으로 완화하면 매물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공급 확대에 주력하는 제안들이다.
 
그러나 정책 전환 가능성을 희박하게 보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신념’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부터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설계자라 할 김수현 전 실장은 개발 이익환수와 흔들려서는 안 되는 세금 등을 ‘주택 정책에서 꼭 지켜야 할 원칙’으로 꼽았다.
 
양도세를 완화한다는 것은 곧 양도차익을 인정해 준다는 의미다. ‘미래의 신축’인 재개발·재건축을 촉진한다는 말은 기대이익의 실현을 앞당겨 준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면 문 정부 핵심 지지층의 비판과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 지지층을 붙잡아 두면서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정부 방안은 ▷3기 신도시(서울 외곽 수도권에 공급 확대) ▷분양가 상한제(서울 재건축·재개발 억제) ▷전·월세 계약 갱신제와 상한제(전·월세 가격 통제) ▷보유세 인상(신축과 구축 집값 상승 응징) 등이다.
 
정책 이기는 투자자가 없다지만 시장 이기는 정부도 없다. 2018년 9·13대책은 ‘역사상 최강의 부동산 규제책’으로 불렸다. ‘국토부의 최종병기’라 할 분양가 상한제는 이때에도 남겨 뒀다. 이를 10·1대책으로 칼집에서 뽑아낸 것이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부동산연구소장(필명 빠숑)은 “(분양가 상한제는) 자유 시장경제에서 내놓을 수 있는 규제 정책의 임계점”이라며 “여기서 또 무언가가 나온다면 사회주의적 정책뿐”이라고 예상했다.
 
최후의 카드를 꺼냈음에도 집값은 정부 의도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쯤 되자 그동안 국토부의 ‘무능’을 질타했던 전문가 중 “헷갈린다”고 갸우뚱하는 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출신인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도 그중 한명이다. 그는 “국토부의 똑똑한 공무원들이 몰라서 저렇게 정책을 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셈법이 있어서 저러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담은 발언이다.
 

“경제는 X판인데 집값은 오른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0월 8일 국정감사에서 완화적 통화정책을 시사했다. / 사진:연합뉴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0월 8일 국정감사에서 완화적 통화정책을 시사했다. / 사진:연합뉴스

8월 ‘R(recession, 경기침체)의 공포’에 이어 9월 ‘D(deflation, 디플레이션)의 공포’가 대한민국을 배회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9월 26일 ‘9월 소비자 동향조사 결과’를 내놨다. 9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1.8%를 기록했다. 향후 1년 간의 소비자물가상승률에 관한 전망치다. 이 수치가 사상 첫 1%대로 찍혔다.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였던 2% 아래로 내려간 것이다.
 
통계청이 10월 1일 공표한 ‘9월 소비자물가 동향’ 역시 전 년 동월 대비 0.4% 떨어졌다. 1965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54년 만에 최저치였다. 최근 두 달 연속 물가상승률은 마이너스였다. 기획재정부는 “디플레이션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글로벌 위기가 없음에도 이런 숫자가 나온 상황을 심상찮게 보고 있다. 비관론자들은 경기 침체 중에 물가상승이 수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경고한다. 이들은 “서울에서 밥 한 끼만 사 먹어도 체감할 수 있다. 명목물가가 아니라 실질 생활물가는 오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경기가 안 좋아도 집값이 오르는 현상은 스태그플레이션을 대입하면 이해할 수 있다.
 
수출마저 10개월 연속 감소세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0월 1일 발표한 ‘9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전년 동월 대비 11.7% 줄었다. 최근 4개월 연속 두 자릿수 하락 중이다. 수입이 더 줄어든 덕분에 흑자가 유지되는 ‘불황형 흑자’ 상태다. 한마디로 국가 경제가 수축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흔들리면, 부동산이라고 무사할 리 없다는 것이 통념이다. 게다가 서울 집값은 6년 연속 상승이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2018년 상승 5년 주기가 끝났다. 전례에 비춰 보면, 2019년 서울 집값은 하락세로 바뀌어야 했다. 그러나 경제가 호황이 아님에도, 사상 초유의 6년 연속 상승이 확정적이다.
 
경제가 좋아도 부동산은 오른다. 경제가 나빠도 부동산은 오른다. 집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면 허탈할 법하다. 물론 세상에 상승만 하는 투자상품은 없다. 부동산도 조정은 받는다. 다만 큰 폭으로 오른 뒤, 소폭으로 조정받고, 다시 상승하는 패턴을 그려 왔다는 점이다. 이 사이클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집 살 타이밍을 놓쳤다. 어느덧 서울 요지의 집값은 저 멀리 가 버렸다.
 
‘경제가 나빠도 부동산은 오른다’는 명제는 ‘한국 경제가 성장하는 한’이라는 전제에서 성립한다. ‘한국 경제가 폭망하지 않는 한, 부동산은 꺼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경제 기초체력이 감당할 만큼인 상황에서의 침체라면, 시장 참여자들은 안전자산으로 쏠리기 때문이다. 지방의 현금 부자들이 강남 등 서울 요지의 아파트를 사들이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합리적’이다.
 
예금·채권·주식·달러·엔·금 등 투자 상품은 다양하다. 이중 부동산은 독특한 재화다. 투자 상품이면서 당장 활용(거주)할 수도 있다. 안 오르면 오를 때까지 눌러앉아 살면 된다. 게다가 부동산은 고급 차, 명품가방처럼 사치재의 효능도 갖는다. 어느 동(洞), 어느 브랜드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만으로도 신분 상승의 기분을 누린다. 문 정부 들어 강화된 다주택자 ‘세금폭탄’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대세가 된 ‘똘똘한 한 채’ 투자는 서울 요지 신축아파트의 가치를 천정부지로 끌어올렸다.
 
한국 경제가 지지부진할수록 ‘비싸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부동산이 더 돋보이는 상황이 심화하고 있다. 거의 전 재산을 집 한 채에 밀어 넣는 현실은 한국인들이 욕망 덩어리여서가 아니라 “내 집밖에 믿을 것 없다”는 불안 심리의 표출인 셈이다.
 

나오자마자 약효 끝난 10·1 부동산 대책

10월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박선호 국토부 1차관(오른쪽부터),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이 부동산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10월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박선호 국토부 1차관(오른쪽부터),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이 부동산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 부동산 역사에서 집값이 크게 떨어진 적은 딱 두 번뿐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였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오지 않는 한, 폭락은 없다는 얘기다. 미국과 중국 경제가 무너지면 수출국가인 한국은 직격탄을 맞는다. 다만 글로벌 거품이 언제 터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계속 돈을 풀고 있다. 저(低)금리, 유동성 공급은 세계적 현상이다.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중국 정부는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다. 전 세계가 돈을 푸는데, 한국만 예외일 순 없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0월 16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25% 인하했다. 1.25%는 역대 최저금리에 해당한다. 이 총재는 10월 8일 국정감사에서 “통화정책의 파급경로가 과거와 같지 않아 효과가 제한적이다”라며 “이럴 때일수록 재정정책 효과가 더 크다”고 밝혔다.
 
실제 정부는 2020년 530조원 초(超)수퍼예산안을 짜고 있다. 문제는 아무리 돈을 풀어도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난감한 현실이다. 한국은행은 10월 3일 ‘화폐 유통 속도가 사상 최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돈을 풀어 봤자 소비와 투자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칫 돈이 휴지 조각이 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번질 수도 있다.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개혁) 괴담도 이런 맥락에서 시중에 전파됐다.
 
이런 심리가 강화될수록 풀린 돈은 서울, 특히 강남 아파트로 집중될 수 있다. 넘치는 유동성과 서울 신축 아파트의 희소성이 집값 상승의 엔진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대출 억제(유동성에 대응)와 수요 누르기(공급 부족에 대응)로 시장을 압박 중이다. 문 정부 들어 부동산 대책이 15번에 걸쳐 나온 배경이다.
 
이렇다 보니 시장에 ‘내성’이 생겼다. 정부는 그 반작용으로 더 강한 규제를 내놓고, 시장은 다시 ‘그러려니’ 하는 상황이 됐다. “정부가 규제하는 지역에 투자해야 가장 안전하다”는 말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실정이다.
 
10월 1일 국토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정부부처는 ‘부동산 시장 점검 결과 및 보완방안’을 발표했다. 시장 안정 대책으로 ▷자금 출처가 의심되는 거래나 허위 계약을 잡아내겠다 ▷개인 사업자와 법인에도 LTV(주택담보대출비율) 규제를 확대하겠다 ▷전세 대출을 이용한 갭투자 축소를 유도하겠다 ▷분양가 상한제를 ‘핀셋’으로 시행하겠다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재건축·재개발 단지는 6개월 이내에 입주자모집공고를 신청하면 (소급하지 않고) 분양가 상한제 적용에서 제외하겠다는 내용 등을 내놨다.
 
분양가 상한제 6개월 유예로 관리처분인가를 이미 받은 서울 61개 단지, 6만8000가구의 재건축에 숨통이 트인 것처럼 일견 보인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아무리 HUG(주택도시보증공사)의 분양가 규제를 받아도, 분양가 상한제보다는 가격이 높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중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재건축으로 꼽히는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는 이미 철거까지 마쳤다. 1만2000가구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계획이다. 이 가운데 약 4800가구가 일반 분양 물량이다. 둔촌주공 등 재건축 예정 아파트들이 속도전으로 6개월 내 일반분양을 한다면, 일시적으로 서울에 물량이 쏟아지는 듯 비칠 수 있다. 절묘하게도 6개월 후 시점은 내년 4월 15일 총선과 겹친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는 이런 시나리오에 대해 “착시”라고 일축했다. 일단 둔촌주공 등 61개 단지의 재건축 절차가 6개월 이내에 일사천리로 진행될 확률부터 희박하다. 한 부동산 투자자문회사 대표는 “둔촌주공부터 총선 전 일반분양 단계에 이르지 못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둔촌주공처럼 이미 철거가 완료된 곳은 선택의 여지 없이 ‘HUG의 후려치기 분양가’나 분양가 상한제 중 하나를 받아야 한다.
 
이와 달리 아직 철거하지 않은 단지들은 ‘버티기’로 선회할 수도 있다. 이럴수록 서울 주택 신축 공급은 씨가 말라 간다. 최환석 KEB하나은행 부동산자문센터 팀장은 “내년 4월 전에 분양이 쏟아진다고 가정해도 실제 서울에 살고 싶은 수요에 비해 물량은 여전히 부족하다”며 “청약발 집값 열기가 기존 신축, 구축으로 퍼져 나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조국 전 장관은 왜 전·월세 계약 갱신제부터 발표했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왼쪽)은 전·월세 계약 갱신제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분양가 상한제를 내놓았다. / 사진: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왼쪽)은 전·월세 계약 갱신제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분양가 상한제를 내놓았다. / 사진:연합뉴스

분양가 상한제는 재건축·재개발 단지 조합원들의 이익 일부를 일반 분양자에게 떼어주는 구조다. 아무리 일반 분양 당첨자들에게 일정 기간 매매 금지 등 제재를 부과해도 로또는 로또다. 서울에 새 아파트 분양 공고만 뜨면 100:1 경쟁률은 무난히 넘긴다. 서초구 반포센트레빌은 일반 분양 10가구 모집에 5700명이 몰렸다.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면 발생할 신축 일반 분양은 얼핏 서민들에게 인생역전의 꿈을 이뤄줄 희망사다리처럼 다가온다. 집 없는 서민들이 현 정부를 계속 지지해야 할 필연성이 생긴다. 그러나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깔려 있다. 분양가 상한제가 되면 재건축은 사실상 중단된다고 봐야 한다. 조합원은 죽 쒀서 남 좋은 일 시킬 리가 없다. 건설사는 이윤 남길 게 거의 없다.
 
어쩌다 재건축이 진행되고, 일반 분양이 이뤄져도 웬만한 서울 신축은 분양가 9억원을 가뿐하게 넘길 것이다. 9억 이상 주택 구매는 은행 대출이 안 된다. 이는 ‘로또 당첨의 기쁨은 극소수 청약가점 높은 현금부자 무주택자들에게나 돌아가는’ 불편한 현실을 내포한다. ‘서민을 위한 서울 아파트’는 없는 것이다.
 
갭투자 규제도 “최근 서울 집값 상승 원인을 헛짚은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투기꾼이 아니라 실수요자가 주도하는 장(場)이란 현실을 읽지 못한 포석”이라는 지적이다. A씨는 최근 강북에 전세 낀 신축 아파트(9억원 이상)를 매입했다. 돈을 더 모아서 세입자를 내보내고 입성할 생각이다. 그때까지 A씨 가족도 어딘가에서 살아야 한다. 과거에는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해결할 수 있었다. 이번에 바뀐 규정은 이를 차단했다. A씨가 고민 끝에 새 아파트를 산 이유는 집값 튀기기가 아니었다. 가족들과 보다 나은 장소에서 살고 싶은 간절함이었다. 갭투자는 당장 돈이 부족한 데 따른 고육지책이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신축 집값 상승을 따라잡을 재간이 없었다.
 
그러나 10·1 부동산 대책은 ‘갭투자=투기’라는 등식을 일괄 적용했다. 시중은행 PB는 “투자와 투기는 리스크 관리의 차이”라며 “자기가 감당할 수 있으면 투자”라고 정의했다. 그는 “그러나 이 정부는 부동산에 관해선 전부 투기라고 여기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렇게 주택 매매를 옥죄는 규제는 전·월세 거주를 권장하는 방향성으로 볼 여지가 있다. 실제 정부는 전·월세 세입자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예고했다. 전·월세 계약 갱신제와 상한제가 그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9월 18일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당정 협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상가 임차인에게 보장된 임대차 계약 갱신 청구권(최장 10년)을 주택 임차인에게도 보장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통상 2년인 전·월세 계약 기간을 ‘2+2년’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복안이다. 세입자만 원하면 집주인 의사와 무관하게 더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국가가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계약 갱신제는 전·월세 상한제와 패키지 시행이 유력하다. 전·월세 상한제는 집주인이 5%(추정) 넘게 전·월세를 올리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제도다.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 갱신제는 문 정부의 공약이었다. 무주택 서민들을 보호하려는 발상이다. 여론 악화에 직면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직접 나서 이를 발표한 것도 정치적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조 전 장관이 전면에 나선 사안인지라 국토부의 존재감은 없었다. 이렇다 보니 구체적 방안과 실행 시점이 빠졌다. 기습 발표 직후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세입자가 안 나간다면 집주인도 자기 집에 못 들어간다는 말인가?”라는 기초적 질문에도 분명한 답변을 주지 못하고 있다.
 

“목표는 집값 안정 아니다. 증세다”

지난 8월 열었던 서울의 한 신축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8월 열었던 서울의 한 신축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 사진:연합뉴스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 갱신제가 실행되면 집값은 잡히고, 무주택 세입자들은 주거 안정을 이룰까. 이렇게 생각하는 여론이 많을수록 정부·여당을 지지할 필연성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두 가지 뉴스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 듯한’ 시장의 반격을 암시하고 있다. 하나는 10월 10일 KB주택시장 동향에 나온 13주 연속 전셋값 상승이다. 또 하나는 강동구 신축 고덕그라시움의 장기전세 등장이다. 원래 59㎡ 기준 전세(2년 기준)는 4억~4억5000만원이었다. 그런데 집주인들이 계약 기간 6년 5억6000만원, 8년 6억원, 10년 7억원 등의 전세 매물을 내놓고 있다. 이 뉴스들은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 갱신제를 일정 부분 선반영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다.
 
전·월세 가격이 올라가는 데 따른 어려움은 고스란히 세입자들의 몫이다. ‘시장 가격이라는 것이 있으니 선반영에도 한도가 있다’는 반론은 성립한다. 그러나 이 제도들이 본격 시행될 때 발생할 부작용에도 전문가들은 거의 일치된 견해를 밝혔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서울 요지의 아파트 전세 세입자인 60대 B씨는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 갱신제를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제도가 존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여당을 지지했다. 그런데 B씨의 30대 아들 C씨가 결혼을 했다. C씨는 전세를 얻어 분가하고 싶었다. 전문직인 C씨는 자금력도 있었다. 문제는 돈이 있음에도 바라던 직장 근처 아파트에 집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C씨가 원하는 아파트에는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 갱신제를 피해 대부분 집주인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나머지 몇 집도 기존 세입자들이 C씨보다 적은 전세금만 냈음에도 국가가 보장해 준 권리를 행사해 나가지 않고 있었다. 결국 C씨는 훨씬 떨어진 곳을 찾아 헤매야 했다. 자식의 곤경을 본 뒤에도 B씨는 이 제도를 계속 지지할 수 있을까. 가상의 사례지만 시장경제 논리가 사라진 공간에서 기존 세입자가 신규 세입자의 사다리를 끊는 또 하나의 양극화가 똬리를 틀고 있다.
 
또 전·월세 상한제는 현 정부가 그토록 죄악시하는 갭투자의 개연성을 더 키우는 역설을 낳는다. 집주인들이 계약 만료 때마다 전·월세 가격을 상한선까지 올려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적 관점에서 이 제도들은 재산권 침해 위험성을 안고 있다. 세입자들을 보호하려다 집주인들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 세입자가 한번 들어와 집을 함부로 써도, 집주인은 최소 4년은 속수무책이다. 이와 비슷한 제도를 운용하는 독일에선 집주인이 세입자 면접을 본다.
 

소급은 재산권 침해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 갱신제에 대해 상당수 전문가는 ‘소급’에 관한 우려를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제기했다. 어떤 법이 시행되면, 그 이전 시점으로 되돌려 적용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소급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선 안 되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미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를 소급 적용하려던 전력을 갖고 있다. 결국 6개월 유예로 물러서며 체면만 구겼다. 남은 것은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었다. 한 대학 교수는 “이 정부는 법, 원칙을 떠나 표에 도움만 된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을 주는 것이 근본적 문제”라고 일갈했다.
 
익명의 부동산 투자자문회사 대표는 “이 정부는 집값을 잡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며 “목표는 증세 같다”고 단언했다. 재정은 필요한데 돈을 더 걷을 데는 부동산만 한 곳이 없다. 이를 두고 “집값을 올려놓은 뒤 세금으로 두들기는 가두리 양식”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소위 ‘부자 증세’를 강화하면 적잖은 서민들이 호응할 것이고, 지지율에도 도움 되니 집권세력에 일거양득이라는 비판이다.
 
그 핵심이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인상론이다. 보유세는 공시가격 현실화에 맞춰 꽤 무서운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 이 틀을 깨고 확 올린다면 초법적이다. 특히 1가구 1주택자들 사이에서 조세 저항이라도 일어나면 민심에 역풍이 불 수 있다.
 
근본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서 집값을 잡는다는 말 자체가 난센스다. 최저임금 인상은 곧 인건비 상승을 의미한다. 건설업이라고 예외일 리 없다. 그만큼 집값과 땅값이 올라가는 것은 정상적이다. ‘내 소득은 올려놓되 집값은 못 오르게 하라’는 일부 무주택자들의 요구는 이율배반적이다. 실제 문 정부 부동산 정책도 완만한 상승을 유도하려는 것이지, 결코 집값 하락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보는 편이 상식적이다.
 

부동산은 끝났다 vs 빚내서 집 사라

한 세무사는 “집 한번 매매하기가 고시 공부보다 더 어렵다”고 꼬집었다. “양도세만큼 정치적인 세금이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세법은 누더기가 된다. 나도 못 따라갈 만큼 법은 자꾸 바뀌는데 일 처리 하나 잘못했다가 몇십억원이 오가는 거래에서 큰일이 날까 봐 조마조마하다”고 토로했다.
 
회원 수 70만 명에 달하는 네이버 부동산 카페에서는 최근 “다주택자 세금을 낮추기 위해 혼인신고를 늦게 하겠다”는 사연이 등장했다. 이 커플은 최근 아기까지 낳았다. 아이의 출생신고마저 늦출 만큼 집에 대한 열망은 간절하다. 퇴직연금을 헐어서 집을 사고, 30억짜리 대치동 타워팰리스를 대출로만 구매한 사람도 출현했다.
 
부동산 상승기에는 ‘수십 년 월급 모아도 서울 집 사기 어려워’ 같은 기사가 곧잘 화제를 모은다. 전문용어로 PIR(소득 대비 집값 비율)이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시점인 2017년 2분기 16.4였던 PIR은 2019년 2분기 21.1로 올라갔다. 이상우 익스포넨셜 대표는 강남이나 마포·용산·성동 등 고가주택을 PIR로 재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다. 이런 집을 사는 계층은 ‘클래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사람들이 대한민국에는 생각보다 많다”며 “지금의 상승은 실수요자가 이끄는 장세”라고 설명했다.
 
집값이 오르면 유주택자들은 행복하기만 할까? 강남 아파트 보유자들은 세금과 증여 걱정이다. 강남 부자들 사이에서 법인 설립이 활성화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강남 아닌 곳의 유주택자들은 집값이 올라도 강남이 더 오르니 갈아탈 수 없어 허탈해한다. 그나마 내 집 한 채 없는 무주택자는 더 막막하다. 정부를 믿고 전·월세 살겠다는 ‘순진한’ 사람은 거의 없다. 청약 광풍만 봐도 알 수 있다. 9·13대책 이후 강남 거주 공직자와 여당 국회의원 중 집을 판 사람은 거의 없다. 집값이 안 내려가리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를 믿고 집 구매를 뒤로 미뤘거나, 하나 있던 집마저 판 시민들만 힘겨워졌다.
 
김수현 전 정책실장의 [부동산은 끝났다]는 2011년 책이지만 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지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집을 가진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은 투표 성향에도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대형 아파트가 밀집된 고소득층은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에 주로 투표했다. 그 반대의 경우는 민주당이다. 이 때문에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재개발돼 아파트로 바뀌면 투표 성향도 확 달라진다.”
 
이에 맞서는 ‘안티테제’가 박근혜 정부 당시 최경환 경제 부총리가 외쳐 댄 “빚내서 집 사라”였다. 황교안 대표 체제의 자유한국당이 내놓은 ‘민부론(民富論)’의 부동산 대책도 ‘대출을 풀겠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고 했다. 그러나 부동산은 태생적으로 정치적, 이념적으로 첨예하다. 부동산은 본래 수요·공급의 법칙이 지배하는 경제의 영역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표에 도움 될지를 계산하는 정치논리가 개입하는 순간, 선동과 분열이 시작된다. 영화 [조커]에 나오는 계단은 내가 다 짊어지고 묵묵히 올라가긴 버겁지만, 세상 탓으로 돌리고 미끄러져 내려가기란 너무나 가볍고 쉽다. 내 집 마련의 꿈이 그렇다.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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